진짜 홍해를 맛보게 될 거라고
또 다른 내가 몸 밖으로 튀어나와 휘정대며 쏘다녔다. 무엇인가에 대한 심한 화풀이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자의 주저 없는 선택이었다. 상대가 6큐빗이 넘는 키에 갑옷을 입은 골리앗인지, 내가 찢어진 물매는커녕 물맷돌 한 개 없는 빈털털이인지 상관없었다.
가족을 이끌고 타국에 온 남편은 예상치 못한 변수에 부딪혔다. 딸랑거리는 은행 잔고를 가지고, 어린 두 아이와 속없는 부인을 데리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취업 경쟁은 치열하고, 언어는 나아질 줄을 몰랐다.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들은 자주 아프고 보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갑고 거친 맨땅이었다.
첫째는 한국인이 없는 학교에 배정되었고, 담임교사는 청각 이상이 의심된다며 병원 검사를 권했다, 둘째는 심한 분리불안으로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수다쟁이 첫째가 선생님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 아니,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하는 순간, 쏟아질 언어 폭탄이 두려워 아이는 듣지만 안 들리는 듯, 고개를 돌렸다. 갈 곳을 잃은 아이의 눈동자를 떠올리면 가슴에 쓴 물이 고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침마다 스쿨버스를 타고, 나는 아이의 시선을 비낀 채, 손을 흔들었다.
둘째를 데리고 지역 부설 기관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이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만 보면 울어댔다. 이건 아니지, 엄마도 시간이 필요해, 도와줘. 제발. 그건 어디에도 닿지 않는 바람이었다. 아이 돌보기를 포기한 자원봉사자가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둘째를 내 손에 넘겼다. 무언가의 끝이 훌쩍 다가온 듯했다.
지역 교회와 관공서에 들어가 진열된 주보와 브로셔를 모조리 챙겨 나왔다. 그리고 시간표를 짜기 시작했다. “무료, 아이 돌봄, 셔틀버스 운행”이라는 문구가 필수였다. 각 기관에서 운영하는 정기 프로그램과 날짜별 이벤트를 빼곡히 기록했다.
지역 거주 외국인을 위한 언어프로그램과 주부 독서모임, 각종 성경책 읽기 모임에 모두 참여했다.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놀이프로그램은 내게 더 없는 기회였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자원봉사들의 자원봉사자가 되어 그들을 돕고, 어느새 그들의 친구가 되어 각종 행사에 초대받았다.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은 아이를 데리고, 차량지원을 요청하며, 목소리 톤을 한껏 올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워 죽는 표정을 지으며 뜨거운 허그를 했다. 불안과 두려움에 땀이 흥건한 손으로 사람들의 눈길도, 악수도 피하던 내가 그랬다.
짙은 여름, 교회 안내문에 카약 트립 안내문이 걸렸다. 하얀 물보라를 헤치며 노를 젓는 사진 속 젊은이가 내게 말했다.
“떠나요. 우리.”
“그럴까!”
차로 한두 시간쯤 달렸을까. 울퉁불퉁한 비포장 숲길로 접어들었다. 녹음이 시나브로 짙어졌다. 하늘을 덮은 녹색 숲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졌다. 기온이 툭 떨어지고,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Broad River Outpost에 도착했다. 인원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다. 직원은 카약을 타기 전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했다. 돌출된 바위나 급류, 나뭇가지를 피하는 법, 노를 젓는 요령, 카약이 뒤집혔을 때의 대처법을 배웠다. 목숨과 직결된 일에 막힌 귀가 저절로 열렸다. 안전 교육을 마친 뒤, 구명조끼를 입고 패들을 손에 들었다.
사람들은 노를 젓다 풍덩 빠지고, 다시 올라타고, 또 빠지기를 반복했다. 앞서 가는 카약에 일부러 자신의 카약을 부딪치며 웃고, 거친 파도와 낙차 큰 물길을 찾아가며 또 웃었다. 물살은 쉴 새 없이 흐르고, 나는 그 흐름을 부여잡고 노를 저었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사소한 장애물도 필사적으로 피했다.
계곡 양 옆 빼곡한 나무들이 빛을 타고 물러나면, 처음 보는 나무들이 금빛을 머금은 채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빛의 행렬이었다. 고요한 하늘에 하얀 새 무리가 시끄럽게 울며 날아갔다. 찰나의 장면, 내가 본 전부였다.
그 시간, 나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로 코앞의 안전이 절실했다. 앞사람이 계곡 물살을 즐길 때, 나는 수십 번 노를 저으며 나아가야 했다. 즐겁고 신나는 구간은 알아서 피했다. 익스트림한 도전을 위해 카약을 선택했지만, 즐기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여자에게 찾아오는 매직의 날, 나는 마법에 걸렸다. 내 속에 켜켜이 쌓인 불안과 불만을 풀고, 야생에 휩싸여 정신 줄을 놓고 싶은데, 세상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걸림돌 하나씩을 놓았다.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밤새 뒤척였다. 친구들은 앞 다투어 나를 말렸다. 가지 말라고, 물놀이하면서 물에 빠지지 않는 게 가능하냐고, 벌어질 일을 상상해 보라고, 닥칠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다 맞닥뜨린 홍해를 기대하지 말라고.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땅 위를 건너는 일은 현실에 없다고. 진짜 홍해를 맛보게 될 거라고.
나는 모두가 걱정한 일에 미련을 거두지 못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 세상살이가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는 생각, 아무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 뭐 그런 대책 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목숨처럼 노를 쥐었다. 한 번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다는 것, 어떤 시설물도 없고 누구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어디까지, 얼마나 오래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출발 시간만 알면 출발할 것이고, 출발하면 도착할 것이었다.
즐기는 이들의 흥겨운 비명과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소리 나는 쪽을 살피고, 서서히 방향을 바꿨다. 아무도 가지 않는 지루한 곳으로 애써 돌아갔다. 단조로운 물살에 의지해 나아갔다. 흐르는 물 표면을 눈으로 더듬고, 불어오는 바람결을 다독이며 기우뚱거리는 카약의 중심을 온몸으로 잡았다.
망망대해를 건너듯 노를 저었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을 깨달은 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4시간이 흐른 뒤였다. 종착지를 알리는 “Take-Out” 노란 표지판이 나타났다. 나는 돌아왔다. 생존자의 안도가 온몸에 퍼졌다. 꽉 쥐었던 노를 내려놓는 순간, 열 개 손가락은 굳어져 펴지지 않았다. 가래떡처럼 부어오른 손가락과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오래 앓아누웠다.
극한의 상황에서 나는 온전히 집중했다. 빠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으로 좌우 균형을 맞추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노를 저었다. 시간은 저 혼자 흘러가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몹시 신중하다. 따질 것이 많기 때문이다. 실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과 피로, 건강에 대한 염려가 밤낮없이 돌다리만 두드리게 한다. 쉽게 결정하고, 쉽게 행동하던 때가 아득하다. 겁 없이 도전했던 기억이 바닥에 붙은 껌처럼 납작해진 나를 부풀릴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바람을 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