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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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예정 시간인 20시를 넘긴 지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시계는 21시 20분을 가리켰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에 적힌 배송원 박찬성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오늘까지 마쳐야 할 물량이 많아 분주할 터였다. 정신없이 아파트 단지를 돌고 있는 것이다. 내 조바심이 박찬성을 조바심 나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도착을 기다리는 물건이 급한 것도,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오겠지. 그걸 못 참고 일하는 사람을 재촉하는 건, 아무래도 옳지 않았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시계를 봤다. 30분이 지난 21시 50분이었다. 창밖은 어둠에 잠겼다. 퇴근하기 전에 통화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독촉이 아니라 분명 문의 또는 확인 전화였다. 지친 신호음이 안간힘을 썼다.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사무적인 응대였다. 수십 차례 울린 전화에 무감한, 첫 전화를 받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소란에 휩싸인 나를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8시까지 배달 오신다고 했는데 안 오셔서요.”
“어디세요?”
“여기 정산동 소망 빌라 511동 302호인데요.”
“거기 6시 전에 다 돌고 왔어요.”
“배송완료 문자는 떴는데 물건이 없어요.”
“배달했어요.”
“그래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 일층에 놓인 우편함을 확인했다. 커다란 상자가 우편함에 들어갈 리 없지만 성실하게 우편함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 죄송한데 511동 302호 맞으세요?”
“제가 분명히 그 집 문 앞에 뒀다니까요. 511동 302호요.”
“혹시 그게 봉투였는지 상자였는지 기억나세요?.”
“제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요. 하루에 수십 개씩 배달하는데요.”
남자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네, 알았습니다.”
그의 말에서 나는 어렴풋한 가능성을 보았다.
“제가 분명히 문 앞에 두고 왔다니까요. 511동 302호.”
이 문장 속에 단서가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분명히 문 앞에 두고 왔다니까요.”
맞다. 그는 분명히 302호 문 앞에 배달 물건을 놓았다.
문제는 511동이었다. 앞말과 뒷말 사이에서 뭉그러진 511동, 호흡에 묻혀 흐릿해진 511동. 511동이 파에서 레로 툭 떨어졌다. 숨겨진 낙차였다.
사람들은 511동을 구석에 있는, 안쪽에 있는, 끝에 있는, 같은 수식을 붙여 말했다. 오래 이 지역에서 일한 사람만이 아무런 수식 없이 511동이라고 부를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숙련자의 여유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갔다. 511동에서 벗어나 옆 동 302호로 올라갔다. 510동, 509동, 508동... 엑스를 그으며 나아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단지였다. 302호에 사는 누군가가 배달된 우편물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간다면 상황은 복잡해질 것이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302호에서 302호로, 다시 302호로 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늘 안에 물건을 손에 넣을 가능성 또한 낮아졌다. 문 앞에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이 널브러져 있기를 바라며 속도를 높였다.
건물 입구에 달린 노란 센서등이 후드득 켜졌다 꺼지고 후드득 켜졌다 꺼졌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숨이 거칠어졌다. 놀이터를 가로질렀다. 504동 302호 문 앞, 겹겹이 쌓인 택배상자를 재빨리 훑어봤다. 상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익숙한 주소와 수신인이 적혀있는, 다른 물건에 휩쓸려 들어갔다기엔 그렇게 작지 않은 상자였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누군가의 실수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상대를 늘 어이없게 하고, 도대체 그게 말이 되게 하고, 숨 쉬듯 기막히게 하는 게 나니까. 일상이 그랬으니까. 괜찮다. 상자를 가슴에 안고 놀이터를 가로질러 구석, 안쪽 끝에 있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나 홀로 프로파일링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