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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r 02. 2018

우울증을 치료해야 하는 이유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며, 당연히 치료해야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한다면 우울증을 심하게 겪어본 적이 없거나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우울증의 세계에 발을 딛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이해되지 않겠지만, 중증 우울증 환자들은 뜻밖에 우울증을 치료해야 되는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처럼 10년 이상 장기간의 우울증에 시달린 사람에게 우울증은 자기 자신과도 같다.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우울한 사고 및 감정 회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과 집중력 부족으로 하루 일과를 달성하는데 실패해서 장기적으로는 낙오자가 되며, 결과적으로 자신을 지독하게 혐오하게 되어버린다.      


  나는 못생겼다.  나는 뚱뚱하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자살해서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나는 남들이 다 하는 일을 해낼 능력조차 없다.  나는 아무 의욕도 없다.  나는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해나갈 능력이 없다.  나는 친구가 없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버림받았다.  나도 내가 싫다.


우울증 환자가 보는 자기 자신은 대충 이런 기분이랄까...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다.


  우울증 환자가 우울증으로 인해 겪는 모든 고통은 '나'와 관련되어 있다.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저런 말을 전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저렇게 형편없고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인게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뭘 치료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내가 실직자라고 치자.  나는 실직이라는 상태를 치료받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실직자라는 것은 나의 현실일 뿐이지 어떤 병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가 우울증을 치료해야 한다고 느끼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현재의 자기 자신의 모습이 현실일 뿐이지 병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실제로 우울증을 10년 쯤 앓고 나면 저런 말들 중 상당수는 현실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 때문에 친구관계도 끊기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보니 살도 찌고, 항상 찌푸린 얼굴로 살다보니 못생겨지고, 일이나 공부도 하기 어려워 중도에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집안에서도 짜증을 내고 부정적인 말들을 하다보면 가족한테도 외면받기 쉽다.  이런 상황은 우울증 환자들의 우울증적 사고를 더 강화시키게 된다.



우울증이라는 마음 속 필터가 있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우울증 환자과 보는 시각과 일반인이 보는 시각은 이렇게나 다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우울증이라는 병 때문에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객관적인 현실은 우울증 환자가 느끼는 것보다 항상 더 낫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일단 내가 나 자신을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우울증때문이다.  위의 그림처럼, 우울증 환자와 일반인은 보는 시각부터가 다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보면 다양한 필터를 선택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우중충한 분위기, 새벽 느낌, 흑백 사진, 캐리커쳐 등등...  우울증은 그런 필터 중 하나와도 같다.  우울증에 한창 빠져있을 때는 우울증이라는 필터로 본 나 자신, 세상이 현실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건 허상이다.  일반인의 필터로 본 나 자신과 내 인생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내가 진짜 이렇게 생겼나...?


  내가 뚱뚱하다고 느껴지면 정상체중이 몇 킬로그램인지 표를 찾아서 봐라.  그래도 비만이라고 느껴지면 유튜브에서 뚱뚱한 사람들을 검색해서 진짜 뚱뚱한 사람들의 모습을 한번 찾아봐라.  내가 그들을 다 제치고 동영상을 하나 찍어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만큼 진짜 뚱뚱한 사람일까?  


  내가 못생겼다고 느껴지면 똑같이 유튜브를 뒤져봐라.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동영상을 보고 다시 한번 거울을 봐라.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


  아니, 뚱뚱하고 못생기면 또 어떠랴.  뚱뚱하거나 못생긴, 혹은 둘 다 갖춘 수많은 사람들이 인기를 얻겠다고, 같이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유튜브에 자기 얼굴과 몸매를 공개하는 동영상을 당당하게 올리는 세상인데 말이다.  내가 그렇게 못났으면 나도 한번 유튜브에서 자기자랑을 해볼까?


  내가 사회적으로 이룬 게 없다고 느껴지면 네이버에서 내가 나온 대학 이름과 '가고 싶어요'를 검색해봐라.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내 모교에 가고 싶어서 지식인에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는 고등학생들, 블로그에 내 모교에 합격해서 기쁘다고 인증샷을 올리는 수많은 수험생들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내가 정말 가진 게 없는걸까?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나는 객관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누군가가 지금 내 몸 속에 들어와서 인생을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어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우울증이라는 병 때문에 오직 나만이 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울증에서 낫고 싶지 않은 마음


  우울증이 병이라는 걸 자각하더라도, 뜻밖에 우울증 환자들은 본인이 병에서 회복되기를 바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왜 병에서 회복되려는 열망보다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될까?  우울증에서 회복된 이후의 현실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우울증적 사고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울증 환자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  내가 못생기고, 무능하고, 내 인생이 망쳐졌다고 생각하면, 나는 현실을 피해갈 수 있다.  낙제생의 자유랄까.  우울증이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실패가 별로 아프지 않게 된다.  '그래, 나는 원래 무능해서 시험에 떨어진거야. 내가 그런 놈인걸 나더러 어쩌라고?' , '그래, 이번 직장에서도 적응 못할 줄 알았어. 나는 원래 개차반인데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어? 잠이나 자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우울증 속으로 깊게 침잠해버리면, 신기하게 아프지 않다.  우울증이라는 고통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 고통의 바다에 잠기면 일상의 세세한 아픔은 쉽게 묻힌다.  


  우울증 환자의 일상은 이렇게 24시간 격렬하게 고통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요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환자들은 뭔가 노력하면서 현실에 부딪히느니, 나 자신을 포기하고 우울증으로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울증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막상 우울증이 다 낫는다면?  나는 우울증때문에 방기해두었던 공부나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몸도 관리하고 연애도 다시 해야하고, 사람들도 다시 만나야 한다.  우울증때문에 생긴 인생의 공백을 메꾸느라 진땀을 흘려야 한다.  더이상 핑계댈 거리가 없게 된다.  


  현실 속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했을 때도 따라잡기 힘들었던 세상인데 한참을 뒤떨어진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건 얼마나 힘들까?  그러느니 인생을 망쳤다고 포기해버리는게 더 쉽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럼에도 우울증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이유는,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죽는다?  자살을 선택해서 성공한다면, 일단 몸이 아픈 걸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게 아니고 살 거라면, 어떻게든 우울증에서 회복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이 계속되면 매일 24시간,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스트레스는 전부 몸에 칼날처럼 꽂힌다.  그러다 어느날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기로 결정했다면, 사는 동안은 병들지 않고, 장애도 없이 사는게 좋지 않을까?  병이 좋고 장애가 생기는게 좋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우울증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울증을 치료할 의욕조차 없던 환자였다.  그러던 내가 우울증에서 반드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몸이 아프고 난 이후였다.  



  어느날 갑자기 한쪽 귀가 잘 안 들렸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돌발성 난청이라고 했다.  큰 소음에 노출된 것도 아니고 귀에 해가 될 만한 아무런 사건도 없었다.  돌발성 난청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도 없다고 했다.  의사는 골든 타임 내에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는데, 완치될 확률이 1/3, 그대로 유지될 확률이 1/3, 더 악화될 확률이 1/3이라고 했다.  아직 어린데 난청이라니...  그것도 약을 먹는다고 다 낫는 것도 아니고 완치될 확률은 고작 1/3밖에 안 된다니...  의사는 절대안정해야 된다며, 무조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다.  가장 해로운게 스트레스라고.


  그때 알았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장애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돌발성 난청의 원인이 어떤 건지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나는 내가 아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 학업과 떨어지는 성적, 원하던 직장에 불합격했다는 것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아프기 1년 전쯤에는 실제로 자살을 계획하고 거의 시도에 근접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통학길 내내 울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내가 원하던 직장에 취직한 친구들, 면접을 위해 정장을 입고 수업을 들으러 온 친구들의 모습만 봐도 목 뒤쪽부터 열이 확 올라와 귀가 아프고 눈물이 났었다.  한번은 견디다 못해 수업 중에 뛰쳐나와 차에 치어 죽으려고 도로를 무단횡단했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중증 우울증으로 인한 마음의 광란이었지만, 그때는 진지했고 심각했고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런 스트레스가 2년 간 지속되던 중 갑자기 난청이 온 것이다.  의사가 절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할 때 나는 알았다.  나를 괴롭히는 이 우울증때문에 이 병이 왔다는 것을.  그때부터 우울증이 무서워졌다.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 아니라 신체의 병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관련없는 일부 음역대의 청력 손실만 후유증으로 남았을 뿐 정상적으로 들을 수 있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돌발성 난청의 사례들을 찾아보면 나처럼 운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다.  청력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많고, 차라리 귀가 안들리는게 낫겠다고 느낄 정도로 심한 이명이 후유증으로 남는 사람도 많다.  돌발성 난청이 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매년 약 5만 명 정도가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고 있다.  


  돌발성 난청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스트레스', '병' 이 두 가지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스트레스때문에 얼마나 많은 병이 생길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도 돌발성 난청을 겪은 이후에도 계속된 스트레스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통, 시력저하 등의 병을 차례로 겪었다. 


  우울증때문에 귀를 잃게 된다면 어떨까?  우울증때문에 매일 귀에서 전기톱의 지잉거리는 소리가 24시간 들려서 잠도 못 자게 된다면 어떨까?  더 나아가 우울증때문에 암에 걸리게 된다면?  


  이게 현실이다.  우울증이 낫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런저런 병에 걸리게 되고 삶의 질은 갈수록 낮아지게 된다.  흔히 지옥에는 바닥이 없다고 한다.  살아있는 한, 고통에는 밑바닥이 없다.  지금은 중증 우울증이 바닥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우울증때문에 귀가 먹고 대학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를 다 받아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 통증으로 고통을 받다 보면 그게 바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 우울증을 치료할 걸.  그랬으면 이런 병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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