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사소한 상식 -05-
35mm 필름 카메라가 발명된 지 100년이 넘었다. 작고 가벼운 35mm 시스템은 전체 카메라 시장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요소들 중에는 35mm 시스템과 함께 발생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교환렌즈다.
대형, 중형 카메라와 비교해 필름 면적이 매우 좁았던 35mm 카메라는 필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교환렌즈’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에는 필름 자체의 면적이 넓었기 때문에 망원렌즈를 사용하는 대신 일부분을 크게 확대 인화했다. 반면 35mm 시스템은 필름의 일부분을 잘라내거나 확대할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렌즈 자체의 화각에 변화를 주는 방법을 택했다.
이후 렌즈의 화각과 동일한 화면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SLR 시스템이 35mm 필름 카메라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개성 있는 렌즈들이 등장했다. 그 중 세계 최고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몇몇 렌즈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상에서 초점거리가 가장 긴 35mm 카메라용 렌즈는 캐논이 만든 FD 5200mm F/14 Prime 이다. 이 렌즈의 최단촬영거리는 무려 120m로 웬만큼 먼 거리에 있지 않으면 초점이 맞지 않는다. 무게는 약 100kg. 굉장히 특별한 렌즈이지만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한계가 있어 그리 인기가 있지는 않다. 몇 년 전 온라인 경매 사이트 eBay에 올라왔지만 가격은 5만 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세상에서 초점거리가 가장 짧은 35mm 카메라용 렌즈는 최근에 등장했다. 2016년 출시된 보이그랜더(Voigtlander) Heliar-hyper wide 10mm F5.6 Aspherical은 어안렌즈를 제외한 광각렌즈 중 가장 넓은 130° 화각을 갖췄다. 라이카 M 마운트와 소니 E 마운트 두 종류로 출시했고 국내 공식 판매가격은 147만 5000원(VM 기준)이다. 최신 렌즈답게 비구면 유리와 투과율이 높은 코팅을 적용했고 왜곡이 무척 적다.
세계에서 가장 밝은 35mm 렌즈 타이틀은 자이스(Zeiss)가 차지했다. 1960년대 나사(NASA)를 위해 만든 Planar 50mm F0.7은 달 촬영에 활용됐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도 이 렌즈를 사용했다. 영화 베리 린든(Barry Lyndon)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이 렌즈를 활용해 촛불만 켜놓은 채로 영화를 촬영했다. 생산된 10개 렌즈는 자이스가 1개를 소장하고 6개는 나사, 3개는 스탠리 큐브릭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자이스 Super Q Gigantar 40mm F0.33 이란 렌즈도 있지만 실제 판매용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35mm 렌즈다. 이 타이틀은 라이카의 몫으로 돌아갔다. 카타르의 셰이크 사우드 빈 모하메드 알사니 왕자를 위해 만든 Leica APO-Telyt 1600mm F5.6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렌즈다. 당시 그가 이 렌즈를 의뢰하며 라이카 카메라에 보낸 액수는 206만 4500달러. 우리돈으로 약 23억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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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사소한 상식>은 사진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글입니다. 관련된 일러스트와 약 한 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글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기사는 디지털카메라매거진에 지난 2017년 9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연재했으며 추후 브런치에서 비정기적으로 지속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