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이야기를 듣다가, 여행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읽은 기사에서, 영화를 보는 중에, 음악을 듣다가, 그림을 보다가, 화장실에서, 만원 버스 속에서, 꿈에서 깨어난 직후에, 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낚시를 하듯이 삶 속에서 건져 올린 글감을, 그중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써 모아두었다가 한 쪽씩 나누려고 합니다. 세상사 덧없는 희노애락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아 이야기로 행복해지려고 합니다. 바로 시작하지요.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카모메 식당이 새로 생겼다. 어느 날 홀연히 일본에서 헬싱키로 날아와 조그만 식당을 차린 것이다. (카모메는 일본어로 갈매기란 뜻이다)
영화에서는 이 작은 여성이 왜 홀로 이곳에 왔는지,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일본식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놓고 손님을 기다릴 뿐이다. 한 달째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다.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장바구니를 들고 재래시장에 나가 신선한 재료를 사고 음식을 준비한다. 퇴근 후에는 아무도 없는 넓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집에서 일본 무술 같은 동작을 매일 반복적으로 한다.
서서히 그녀의 주변에 나름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사연들과 함께 손님들이 하나, 둘씩 늘어간다. 그녀가 만든 시나몬 롤 향을 맡고 손님들이 부쩍 늘기 시작해서 결국 한 달 동안 아무도 오지 않던 식당 테이블이 손님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 과정을 보는 것은 관객으로서도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나타나는 주인공 사치에의 환상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갈매기 식당이 드디어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짝짝 짝짝~“
환상 속 독백과 함께 지금껏 홀로 수영하던 수영장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특별할 것 없는 잔잔한 흐름이지만 주인공 사치에가 흔들림 없이 확고한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단단하고 야무진 힘을 보여준다.
<카모메 식당>이 개봉하고 나서 이런 류의 일본식 힐링 음식점에 대한 책과 영화, 드라마 등이 대거 등장했고, 음식으로 소박하고 단단한 삶의 구심점을 만들어내고 행복을 이루어가는 소시민의 모습에 감흥을 받아 카모메 식당 유형의 자영업이 선풍적인 유행을 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말이야 쉽게들 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을 때, 그 시간이 길어질 때, 사람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뭐가 부족한 걸까', 원인 분석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하고 그 결과, 차분하게 일상을 밀고 나갈 힘을 잃는다.
실제로 현실적인 준비가 부족한 경우도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잘 안될 수도 있는 게 세상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과 세상을 향한 실망이나 무기력, 죄책감이나 원망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와 동일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영화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어쩌면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카모메 식당의 사장, 사치에와 같은 차분하고 담대한 힘, 누가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자신을 믿는 힘이 아닐까.
<카모메 식당> 후기를 쓰면서 4년 전, 문학 공모전 여기저기에 글을 투고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심경은 이러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의식적으로 떠 올리면서 마음이 조급해져 있었다. 경제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6개월의 시간을 정해놓고 오롯이 하루 24시간을 '작가의 삶 살아보기' 놀이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나에게 주는 선물의 기분으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목표했던 시간이 다가오면서 조급해진 마음이 보고 듣는 눈과 귀를 멀게 했다. 맑은 감각의 창으로 글을 써야하는 것이 작가의 본분일진데, 초조한 마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배운 귀한 경험이었다.
너무 많은 공모전에 응모를 하면서 마감날짜에 맞춰서 원고를 던지다시피 급박하게 써 내다보니 수상 소식을 접하고 나서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언제 쓴 건지', '이런 문장을 내가 썼나?' 헷갈릴 정도였다.
때로는 퇴고를 많이 한 글이 탄탄한 구조를 갖기도 하지만, 때때로 초능력을 발휘해서 긴박함 속에서 쓴 글에서 원시적인 감정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시간이 많으면 좋은 글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에 대한 두려움, 결핍을 느끼는 것이지, 실제로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확보한다고 해서 좋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그토록 간절했던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진짜 가능할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 따위 부질없는 망상에 빠져있는 시간들이 어쩌면 더 많았다는 생각이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만 하지 않아도,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 같은 소박하고 담담한 기백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누구나 자신의 뿌리에서 난 에너지로 살 수 있게 되어있다. 두려워하는 것도 지겨울 때가 되었건만 두려움 때문에 뒷걸음치느라 정작 원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꼴이다.
할 수 있는 것도 나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다. 상위 1%도, 하위 1%도 내가 만든다.
오늘의 읽을거리를 읽고, 오늘의 쓸거리를 쓰고, 걸을 만큼의 길을 걷고, 잘만큼의 잠을 자고.....
김영하 작가가 강조하는 말 중 '이미 작가로 살아야 작가가 된다.'는 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본질이라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것이 글을 잘 쓰는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배웠다. 정답이 없는 일, 쉽게 이룰 수 없는 일,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일, 수많은 삶의 지층을 통과해서 만들어진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12월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