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를 읽고
이승우 작가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를 읽고 낚아 올린 의미와 충격을 나누고자 한다. 180쪽 남짓되는 작고 얇은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대목이 너무나 많은 책이었다. 다른 글에서도 필시 다시 언급하게 될 것 같지만 이 글에서는 다음 세 가지를 추려보았다.
첫째,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읽어야 하고, 소설을 잘 쓰려면 소설을 잘 읽어야 한다. 소설을 잘 읽는다는 것에 대해 이승우 작가는 느리게 읽기를 추천한다. 천천히 읽을 때 문장들은 사고를 자극하고 상상력을 추동한다는 것이다. 소설을 천천히 꼼꼼하게 읽고 있는 사람은 (흥미로운 책 제목대로)이미 소설 쓰기를 시작한 사람이며, 소설을 천천히 꼼꼼하게 읽지 않는 사람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더라도 아직 소설 쓰기를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둘째, 소설은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편집하고 의도에 따라 가공하여 만들어내는 인공적 조형물이다. 이 책에서 이승우 작가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를 반복해서 든다. 그 말 자체가 사람들은 자신의 살아온 경험이 소설의 중요한 소재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점을 동시에 고백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삶의 경험이라는 소재를 효과적으로 편집, 가공한다는 것은 소설의 작위적 성격을 설명한다. 꾸준한 독서와 학습을 통함으로써만이 누구나 그토록 쓰고 싶어 하는 자신의 삶의 소설을 탄생시킬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소설을 탄생시키는 것은 그가 한 경험이 아니라 그가 읽은 소설이라는 단언은 비싼 유료 강의에서 얻은듯한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셋째,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생명력 있는 작품이 된다. 이승우 작가는 소설가가 자신의 글을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일을 신이 흙으로 사람의 형체를 만들고 숨결을 불어넣음으로써 인간이 된 창세기 사건에 비유한다. 잘 만들어진 사람의 형체일지라도 숨결을 불어넣기 전에는 생명이 없는 모형에 불과하듯이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작가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글은 생명력이 없다는 말이다. 작가의 숨결이란, 자신만의 시각, 욕망, 해석이다. 그런 것들에 의해서 익숙하고 낯익은 일상이 낯설어지고 돌연 빛을 발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강단 있게 말하는 작가가 좋다. 위로와 공감을 주면서 '그래도 돼. 괜찮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뭐라도 되겠지.'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절대로 안된다'라고 말해주는 단호함이 좋다. 절실하게 구해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친절하고 인간적인 조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김영하 작가의 소설 쓰기에 대한 온라인 유료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다소 비싼듯한 그 강의가 돈이 아깝지 않게 좋았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영하 작가는 '끝까지 쓴 글이 잘 쓴 글이다'. '무조건 첫 문장을 써라'. '끝까지 쓰지 못하고 쓰다가 말기가 습관화된다면 끝까지 못쓸 가능성이 많다'. '차라리 소설 쓰기를 포기하라!'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 쓰기를 연극 연출에 비유한다. 작가는 감독이다. 출연 배우들을 뽑고 대본을 쓰고 하나하나 결정하고 준비할 것이 많다. 연습을 하자고 배우들을 불러 모아놓고 정작 감독이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배우들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하나둘씩 무대를 떠난다. 소설을 쓰고 싶어 하면서 글감만 가지고 있거나, 쓰다가 마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촌철살인이다.
서랍 속에 수년째 잠들어 있는 쓰다만 소설들을 깨워내어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으로 뭔가 '이거구나!' 하는 팁이라도 있나? 하고 신청한 유료 강의에서 '그러려면 그만두라!'는 일갈만 들었다. 심지어 김영하 작가는 마지막 퇴고에 대한 강의 전에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자기 앞에 프린트된 초고가 없는 사람은 이 강의를 듣지 마세요!' 그때 내 앞에 프린트된 초고가 없었고, 슬그머니 강의 창을 닫았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마음에는 안 들지만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은 초고를 출력해서 마지막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퇴고에 대한 강의 내용은 그동안 다른 소설 쓰기 책에서 이미 보았던 평범한 내용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수많은 갈등과 선택을 헤쳐나가며 끝까지 쓴다는 사실이다. 그 경험은 잘 쓰는 사람, 잘 팔리는 사람을 꿈꾼다면 먼저 끝내 쓰는 사람, 끝까지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대기에는 사물들과 현상들과 사건들과 사람들이 보낸 신호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 신호들 가운데 어떤 것에 어떤 동기에 의해 어떤 식의 반응을 한다. 그러면 관계가 이루어진다. 발상을 얻는다는 것은 이를테면 떠도는 신호들 가운데 어떤 것을 포착하는 일이다.' (54쪽)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착상의 단서를 잡아내는 일이다. 거미줄을 친 거미만이 잠자리를 잡는다. 사물과 현상에 깊은 관심과 호기심, 그것들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을 꿰뚫어 보는 상상력, 그리고 지속적인 독서와 사유(나는 그것을 문학적 자장이라고 표현하는데)를 유지하는 사람이 소설의 씨앗을 찾아낸다. 좋은 소설을 얻기 위해서는 소설의 자장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자장 안에서 놀아야 한다.' (55-56쪽)
'참담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설을 생각하고 소설을 읽고 소설 쓰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소설을 생각하고 읽고 쓰다 보면 어느새 소설거리가 나를 찾아온다. 소설 쓰기를 계속하는 한 소설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