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껍질 무침

굳이 미워하지 않아도 됐을 반찬 하나

by 귀리밥

여름에 남편과 수박을 먹을 때였다. 둘이 사는 가구라 수박 한 통을 사면 빨리 먹기에 버겁고, 또 껍질을 버리느라 음식물쓰레기봉투가 헤퍼지지만 여름철 그 빨간 과육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여름철이면 수박 노래를 하는 남편을 위해 수박은 한 달에 두어 번 사는 편이다. 새빨간 과육을 먹고, 껍질 속 하얀 살과 단단한 초록 껍질을 버리며 남편은 옛이야기를 전하듯 한 마디 했다.

“여보, 옛날 사람들은 수박껍질도 먹었대.”

“어?”

“이거 있잖아. 옛날 사람들은 수박껍질을 반찬으로 먹었대. 신기하지?”


남편의 거리낌 없는 옛날이야기에 나는 말끄러미 수박껍질을 바라봤다. 옛날 사람, 옛날이야기라……. 그런데 햇수로 꼽아보자면 내게는 그리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여보, 수박껍질 무침 말이야. 그거 옛날 사람만 먹는 거 아니야. 나도 먹었어.

말 안 하고 넘어가면 왠지 억울할까 봐 입 밖으로 꺼냈지만, 그 순간 내 얼굴엔 부끄러움이 스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의 눈빛도 스쳤다.


나의 엄마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검소했다. 무엇하나 허투루 버리는 게 없었다. 주택에 살 때면 식사 후 남은 음식으로 마당에서 키우던 개의 끼니를 챙겼다. 그렇다고 못 먹을 것을 주진 않았다. 우리가 먹던 찌개와 국에 밥을 말고, 우리가 먹던 두부 부침이나 계란 등의 남은 것을 얹은 게 개의 밥이었다. 사료와 말끔한 간식을 먹이며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입이 떡 벌어지도록 기가 찰 식단일지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마당의 개에게 그렇게 먹이곤 했다. 야채를 다듬고 나온 잎사귀나 야채 껍질은 마당의 화단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흙속에서 그이들이 얼마나 알찬 영양분이 됐을까. 그 정도로 알뜰한 엄마가 수박껍질을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일단 수박을 먹을 땐 빨간 부분이 남지 않을 정도로 알뜰하게 먹어야 했다. 빨간 부분이 좀 남아있다 싶으면 엄마는 마저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셨다. 나와 언니들은 그때마다 투덜거렸다.

“아, 단 부분은 다 먹었단 말이야.”

“여기 이렇게 빨간 게 남아있는데 뭘 다 먹었다는 거야. 이 부분마저 먹어.”

“싫은데.”

“얼른!”


그렇게 빨간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먹고 나면 엄마는 그 수박 껍질을 쟁반에 고이 담아 부엌으로 가져가신다. 그다음엔 빨간 과육을 먹느라 입이 닿았던 부분과 겉면의 초록색 껍질을 칼로 도려내고, 물에 상쾌하게 씻어낸 하얀 껍질 부분을 아주 얇게 썬다. 거기에 고춧가루와 깨, 식초, 간장 등을 넣어 무치셨다. 그게 바로 수박껍질 무침이었다. 물론 도려낸 수박 겉껍질과 안쪽은 화단의 구덩이로 직행이었다.


그러니 수박을 먹은 다음날 아침이면 밥상에 수박껍질 무침이 올라오고, 당연히 도시락 반찬에도 들어있었다. 이제 생각하면 별스럽지 않은 반찬인데 어린 나는 그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도시락 반찬 뚜껑을 열었을 때 수박껍질 무침이 보이면 한숨부터 나왔다. 우리 집만 먹는 반찬인 모양인지, 친구들도 이게 뭐냐고 물어보곤 했다.

“이게 뭐야? 깍두기?”

“오이 아닌가?”


이러면서 한입씩 먹어본 친구들에게 내가 수박껍질 무침이라고 이실직고하면 친구들의 얼굴에는 당황이 묻었다. 한 번은 눈치 없는 친구가 음식물 쓰레기 아니냐고 물은 적도 있다. 그때만큼은 나도 발끈해 몸에 좋은 반찬이니 모르면 가만 좀 있으라며 근거 없이 쏘아붙이긴 했지만, 마음엔 수박껍질 무침에 대한 수모로 가득 찼다.

‘엄마가 수박껍질 무침 좀 안 하셨으면 좋겠다.’

수박껍질 무침이 도시락에 들어있는 날이면 집에 돌아가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검소했던 엄마는 수박을 먹을 때마다 그 반찬을 하셨고, 내가 청소년기를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그 이후로는 점점 횟수가 줄더니 언제부턴가는 아예 하지 않으셨다. 검소함이 사라진 건 아니었는데, 먹성 좋던 딸들이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줄고 하나둘 시집을 보내고 나니 반찬의 가짓수며 양이 확실히 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기 전 약 1년간 자취생활을 할 때였다. 가끔 반찬을 갖다 주던 큰 언니가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은 무언가를 꺼내며 설명을 붙였다.

“이거 수박껍질 무침이야. 입맛 없을 때 밥에 물 말아서 같이 먹음 맛있다.”

“헐, 언니. 수박껍질 무침을 했다고? 대체 왜?”


왜냐고 묻는 내게 언니는 되레 이상하단 표정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 여름에 먹으면 맛있잖아.”

“언닌 그게 맛있어? 나는 그거 싫었는데. 수박 먹고 남은 걸로 반찬 하는 것도 싫고, 그냥 맛도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래? 나는 그냥 옛 생각나서 한 번씩 해 먹으면 좋던데. 엄마가 옛날에 해주던 그 맛 생각나고 좋더라고.


어쨌든 먹으라고 싸준 수박껍질 무침과 반찬 몇 가지를 작은 냉장고에 풀었다. 언니에게 수박껍질 무침은 추억의 맛이었던 것이다. 그저 여름이면 먹던 엄마표 반찬을 추억하는 다 큰 딸의 추억의 맛. 그 맛을 상기하며 수박껍질을 다듬어 반찬을 만들었을 터였다.


언니와 달리 내게 수박껍질 무침은 친구들 앞에서 숨기고 싶은 맛이었고, 어쩌면 잘 알지도 못하는 가난의 맛이었다. 세상에 맛있는 반찬들을 두고 굳이 먹을 필요가 있나 싶었던 미운 반찬의 맛. 십 년 넘게 안 먹었던 수박껍질 무침. 그것을 추억이라며 만든 언니에게 받고나니 헤픈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 딱 한 번 더 수박껍질 무침을 먹은 적 있다. 결혼 후 엄마 집에 갔을 때였다. 엄마 역시 언니처럼 옛 생각에 만드셨다며 밥상을 차리며 수박껍질 무침을 찬기에 꺼내놓으셨다.

“예전에는 우리 이런 거 많이 먹었는데, 그치? 옛날 생각나서 한 번 무쳐봤어.”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수박껍질 무침을 친정 밥상에서 만났을 땐, 미움 대신 미안함이 깃들고 말았다. 굳이 미워하지 않아도 됐을 반찬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됐던 엄마의 검소함, 철없던 내가 친구에게 날을 세워 쏘아붙이던 자격지심. 그런 알갱이들이 넉넉히 뿌린 깨와 버무려져 수박껍질 무침은 여름 별미로 그 자리에 소복이 앉아있었다. 갓 지은 밥에 수박껍질 무침을 함께 먹었다.


물론 미안함이 생겼다고는 하나 수박껍질 무침이 순식간에 별미가 돼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얄팍한 무맛에 새콤한 양념이 무쳐져 있는 평범한 밑반찬일 뿐이었다. 반찬 하나를 두고 세월은 사람의 시선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에 골몰하며 밥그릇을 비운 날이었다.

그랬던 수박껍질 무침을 옛날 사람들이 먹었다며 새로이 알게 된 소식을 알려주듯 말하는 남편에게 무안함을 주려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나도 수박껍질 무침을 먹었다고 말하니 남편은 크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럴 법도 한 게,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다닌 세대였지만, 몇 년 사이에 남편은 급식을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아마 급식 반찬 메뉴에 수박껍질 무침이 올라온다면 생소한 학부모들은 반찬의 출처에 의문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편의 경험에 수박껍질 무침이 없었기에 옛날 사람들이 먹었다는 풍문 속의 반찬이었던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남편은 내게 사과했다.

“여보, 기분 나빴어? 나는 그걸 잘 몰라서, 들어보기만 해서 그랬어. 미안.”

“아냐, 모를 수도 있지. 나도 어릴 때만 자주 먹었어.”

“그런데 여보, 수박껍질로 만든 반찬 맛있어?”


남편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그 반찬의 맛을 물었다. 아마 그의 머릿속엔 초록 바탕에 검은 줄이 들어간 껍질째 만든 반찬이 그려져 있으리라.

“아니, 맛없어.”

“그래? 맛없는데 왜 먹은 거야?”

“글쎄, 예전에는 왜 먹었는지 나도 모르겠어. 내가 좋아서 먹은 건 아니거든. 그런데 지금은 가끔 추억 맛으로 먹는 것 같아.”

“그럼 여보도 수박껍질 반찬 그거 만들 거야?”

우리 앞에 방금 먹은 수박껍질이 가득 쌓여있었다.

“아니, 난 안 할래.”

수박껍질을 모아 종량제 봉투에 탁탁 털어 넣으며 마음을 접었다. 지난 추억의 맛을 되새기는 것까진 내 몫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추억을 되새기느라 수박껍질 무침을 한다면 청소년기의 부끄러움으로 발그레해진 얼굴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예전엔 그런 것도 종종 먹었지, 하며 이야깃거리로 충분한 반찬으로 남겨두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