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부추 전을 부쳤다. 늘 생각하기에 부침개만큼 쉽고 간단한 요리가 또 있을까, 싶다. 먹고 싶은 푸른 야채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부침가루와 계란, 소금 살짝 넣어 프라이팬에 구우면 끝이다. 설거지거리도 얼마 안 나오고 조리방법도 쉽다.
어제 부추 전을 만들 때 부추를 잘 씻은 다음 짤막하게 썰어 넣었다. 약간 시들한 깻잎도 썰어 넣었다. 오징어는 다리 쪽만 썰어 넣고 계란을 두 알 풀어 넣었다. 부침가루는 많이 넣지 않는다. 부추 전의 주재료가 부추가 되도록 부추를 가득 넣되 그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역할로 부침가루 반죽이 등장할 정도만 넣는다.
바삭하게 한 장 구워 맥주와 함께 먹었다. 한 장 먹는 동안 다른 한 장이 프라이팬 안에서 몸을 익히고 있었다. 별다른 반찬 없이 마늘종 절임만 조금 꺼내 두었다. 마침 비가 와서 선선하고 습한 기운이 꽉 찬 밤이라 즐거운 저녁이 됐다.
어릴 적에도 부침개를 종종 먹었다. 우리 집에서 주로 먹었던 부침개는 김치 부침개였다. 김장김치가 무르익은 한겨울부터 다음 해 봄까지 반찬이 없는 날, 별미를 요구하는 가족들에게 엄마가 한가득 부쳐주는 김치부침개였다.
먹성 좋은 식구들 덕에 엄마가 부치는 김치 부침개 반죽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큰 대야로 가득했다. 보통은 김치에 밀가루와 물이 들어가는 게 전부지만, 엄마의 생활비 주머니가 조금 여유 있는 날엔 오징어도 들어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 두 개를 올리고 식용유를 스윽 두른 다음 계속 부쳐나간다.
엄마는 얼마나 부침개를 많이 하셨는지 뒷면을 들어보지 않고도 적당히 익은 시점을 알고 계셨다. 적당한 타이밍에 뒤집으면 가장자리가 엷은 카멜색이고 고루 익은 김치부침개가 얼굴을 드러냈다. 어린 나에겐 그게 참 맛이 좋고, 특별한 메뉴였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아니 이것보다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몇 개나 될까? 천진한 생각을 하며 김치 부침개를 먹곤 했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 들어간 뒤의 일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 도덕이 있었다. 아마 큰 변화가 없지 않는 이상 지금도 도덕은 학교에 존재할 것이다. 입학 전 유치원에 1년쯤 다니긴 했지만, 갓 학교에 입학하면 오만 것들이 재밌고 가르치는 모든 지식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마련이다. 또한 그것이 무조건 참이어야 했다.
선생님은 도덕 시간에 교과서를 통해 ‘이웃사촌’을 가르쳐 주셨다. 부침개를 하나 부쳐도 이웃과 나눠먹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부분을 배우며 속으로 계속 딴생각을 했다. 엄마가 부쳐주는 김치 부침개 생각이었다.
‘아, 그 맛있는 부침개를 나눠먹어야 하는구나.’
아쉬우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깨달아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곰곰이 지난날을 돌이켜보자니 집에서 그 많은 부침개를 부치는 동안 엄마가 다른 집에 나눠준 적은 없는 것 같았다.다른 집에서도 부침개를 가져온 기억은 흐릿하다 못해 없다고 느껴졌다.
‘선생님이 부침개도 나눠먹어야 이웃사촌 이랬는데, 어떡하지?’
그렇게 장황한 부침개 걱정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은 저녁이면 싸늘한 기운이 팽팽한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다짜고짜 엄마를 졸랐다.
“엄마, 김치 부침개 해줘!”
엄마 입장에서 뜬금없는 주문이긴 해도 집에 김장김치가 넘쳐나는 시기라서 마다할 것도 없었다. 엄마는 또 거대한 스테인리스 대야에 반죽을 만들어 김치 부침개를 부치기 시작하셨다.
이윽고 그 맛있는 것이 달력을 깔아 둔 채반에 한 장 두 장 쌓여갈 때 나는 본심을 꺼냈다.
“엄마, 이거 이웃에 갖다 줘야 해.”
“뭐?”
기껏 뜨거운 불 앞에서 부침질을 하던 엄마의 손이 공중에 딱 멈췄다.
“엄마, 학교에서 그랬는데 부침개 같은 거 이웃이랑 나눠먹어야 한 대. 그래야 이웃사촌이래.”
학교에서 뭣 좀 배웠다고 알은체하고 싶은 막내딸이니 한번쯤 들어주거나 귀여워해 줘도 될 법한데, 엄마는 냉정하게 잘라 말하셨다.
“쓸 데 없는 소리 하고 있어.”
으악! 쓸 데 없는 소리라니! 나는 깜짝 놀라 따져댔다.
“선생님이 그러셨단 말이야. 부침개는 이웃이랑 나눠먹는 거라고!”
“얼씨구?”
“그렇게 지내야 이웃사촌 이랬는데, 엄마가 부침개 안 줘서 우리는 이웃사촌이 없을 거야!”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앉아서 부침개 먹어!”
나름의 근거를 들어 주장했음에도 자꾸 내 말이 쓸 데 없다고 하시니 더 할 말이 없었다. 거의 울상이 되어 식탁에 앉아 엄마가 만든 김치 부침개를 먹었다. 억울하긴 되게 억울한데 맛은 또 기가 막혔다.
‘엄만 정말 너무해. 부침개를 나눠먹지 않다니.’
무서워서 겉으론 드러내지 못하면서 속으로는 엄청 궁시렁대고 있었다. 쓸 데 없는 소리라고 야단은 맞았지만 바삭하고 맛있는 김치 부침개를 먹으면서 이웃사촌을 만들어야 한다는 불타는 투지는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었다.
그 시절엔 몰랐지만 삼십 대 후반의 내가 되니 조금씩 보이는 게 있다. 당시 엄마는 맞벌이를 했다. 매일 인천항에 가서 배를 타고 섬에 가서 양궁장과 사격장을 청소하고, 휴식공간도 없이 벤치 하나에 의지해 지내던 엄마였다. 낮에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 김치 부침개를 해주는데 딸내미가 그걸 이웃에 갖다 주자니 얼마나 허탈했을까.
게다가 김치 부침개가 어린 나에겐 귀하고 맛있었지만, 그건 집마다 반찬 없는 날 해 먹는 간단 요리였으니 갖다 주는 자체가 무안했을 것이다. 이웃사촌 타령을 하며 졸라대는 딸에게 이런 자잘한 배경을 설명할 수 없으니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먹어!”라는 말밖에 못 하셨으리라.
이제 부침개를 어려움 없이 뚝딱 해내는 막내딸의 나이가 벌써 서른일곱이다. 내가 학교를 들어갔을 무렵의 엄마보다도 여섯 살이 많은 나이다. 지금의 내게 만약 자식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상해봤다. 내 딸아이가 학교에서 이런 것을 배워왔다며 이웃에 부침개를 주고 싶다 조르면, 정말 부끄러운 솜씨지만 접시에 담아 함께 옆집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옆집에 부침개 접시를 들어가는 건 불편하거나 의심스러운 행동일 수도 있다. 옆집과 어른 어깨만 한 높이의 담장 정도만 두르고 살던 내 어릴 적과 달리 이제는 승강기에서 마주쳐도 옆집 사람인지 못 알아채는 이 시대에 옆집에 부침개라니.
설령 귀한 음식을 갖다 주더라도 무슨 속내일지 우리 집에 무슨 의도로 왔을지 의심이 이는 건 당연하다. 일단 나부터 그러하니까. 하지만 음식 좀 나눠먹는다 해서 의심부터 하게 되는 시대는 확실히 슬프다. 명찰이라도 달고 다니고 싶다. 당신을 해치지 않는 이웃이라고, 당신도 그런 이웃인지 확인도 하고 싶다.
당시 내 나이에서 삼십 년쯤 더 살고 나니 이제 이웃에 전을 갖다 주는 게 무안한 시대가 됐다. 이런 얄팍한 부추 전 하나 갖다 주기 어려운 시대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도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넉넉히 내린다. 밀가루 생각이 난 게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래간만에 시원해 창문을 열어두니 아랫집인지 윗집인지 알 수 없는 어느 집에서 부쳐대는 부침개의 기름 냄새가 창가로 넘실거린다. 먹구름처럼 어두운 시대를 살며 우리는 비슷한 식성과 욕구를 드러내며 이웃 없는 집에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