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전하는 맛
지금이야, 지금. 가장 맛있는 날.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야채, 생선과 곡식은 “세상 참 좋아졌어.”라는 늙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제철음식에 대한 지식이 거의 백지상태였던 나는 한 겨울 야채가게에서 가지를 찾다가 “겨울에 어떻게 가지를 찾느냐.”는 야채가게 아저씨의 핀잔에 마음 상한 적 있고, 단맛이 강한 시금치를 만나서 찬바람에 맛이 좋아진 연유도 모른 채 야채 고르는 내 안목이 높아진 거라 착각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러다 제철음식의 위력에 항복한 날이 있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결혼기념일이라며 보내준 과일바구니가 계기였다. 감사하게도 남편의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결혼기념일에 과일바구니와 카드를 적어 보내주는데, 그 안에는 작은 꽃다발이 끼워져 있고 각양각색의 과일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내가 낑낑거리며 테이블에 올릴 정도로 무거웠던 그 과일바구니에는 내 돈 주고 한 번도 사지 않았던 비싼 과일도 있었다. 퇴근해 돌아온 남편과 과일바구니를 분해하며 다채로운 과일의 종류에 감탄하면서 또 우리의 취향에 맞는 과일들이 등장할 때마다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중 우리 부부가 몹시 애정 하는 과일 멜론이 있었다. 멜론이 등장하는 여름철부터 초가을까지 멜론을 즐겨 먹는다. 커다란 멜론 한 통을 사면 일주일 내내 출출한 시간과 디저트 타임에 향긋하고 달콤한 과육을 네모지게 썰어 먹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한겨울 결혼기념일에 멜론을 받다니 몹시 반갑고 설레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번 멜론 손질은 남편에게 맡겼다. 큼직한 멜론의 겉면을 씻고 슥슥 썰어 껍질과 과육을 분리하고, 씨를 발라냈다. 접시에 네모지게 썬 멜론을 담고 포크 두 개를 꽂아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한 입씩 멜론을 물고 우리는 입 안 가득 퍼지는 당황을 체험했다.
“뭐야, 왜 이렇게 맛없어?”
“이거 멜론이야 무야? 생긴 건 멜론인데 맛은 무맛이네.”
헛웃음이 술술 나오도록 맛없는 멜론이 우리 눈앞에 있었다. 게다가 한 통을 모두 손질했으니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가 먹어야 할 멜론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어쩜 이렇게 맛없는 멜론이 있을 수 있지? 역대급인데?”
“제철이 아니라 그런가? 제철이 아니라도 평타는 칠 줄 알았는데 이게 뭐람.”
우리는 김장철 무를 씹듯 멜론을 먹어야 했다. 나는 이때 왜 어른들이 그토록 제철음식을 먹으라 한 건지 어렴풋이 실감할 수 있었다. 제게 맞는 계절을 타고 태어난 신선한 과일과 채소, 수산물을 획득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바쁜 눈길을 주고받는 어른들의 수고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제철음식이란 그토록 위력이 넘쳤고, 그 시기를 어겨버리면 무를 닮은 멜론을 먹는 일이 무수히 일어날 수 있다는 초보 주부의 깨달음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주부로 산지 고작 5년 차에 들어선 내가 제철음식을 달달 외워가며 꿰차고 있을 리 만무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대표적인 제철음식의 종류를 대강 알 수 있었지만 그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고, 그것을 항시 머릿속에 깨우쳤다가 마트를 찾을 때 풀가동할 재간은 없었다. 대신 제철음식이 주는 유행의 공기 그리고 어릴 적부터 몸이 익힌 제철음식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는 게 실용적이었다.
그렇게 감각으로 일깨워낸 제철음식 중에는 유독 해산물이 많다. 예를 들면 전어가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의 관용어는 몹시 마음에 안 들지만, 가을이면 손바닥 한 뼘 정도 길이의 전어가 매력을 발산함은 분명하다.
내 기억 속 전어는 스무 살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이었던 계절에 있다. 섬에 사는 친구의 집에 여럿이 놀러 갔던 날, 친구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대접하기 위해 인근 시장에서 전어를 한 아름 사 오셨다. 섬에 오래 살다 보니 시장의 모든 가게가 이웃이었다. 만 원어치 전어는 말도 안 되는 한 보따리였고, 덤으로 준 조개도 한 보따리였다.
절반은 번개탄에 구워주셨고, 절반은 직접 세꼬시 회로 썰어주셨다. 번개탄 위 철판에는 덤으로 받아온 조개도 가득 구워지기 시작했다. 푸짐하고 고소한 전어의 맛. 전어의 짤막한 몸에는 신기하리만치 기름진 살이 가득했다. 전어의 등허리에 젓가락을 찔러 넣으면 뼈에서 슥 분리되는 살을 발라먹기도 좋았다. 별다른 양념도 없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굵은소금을 특특 뿌린 게 전부였다.
몇 안 되는 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였다. 어수선한 마당 분위기에 근처 사는 아주머니도 놀러 와 합세하셨고 스무 살이나 먹었으니 다 컸다며 우리에게 소주를 따라주셨다. 어른 흉내 내기에 좋을 소주의 맛이 곁들여졌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아주머니는 과일안주가 필요하다고 하시더니 바로 옆 자신의 과수원에서 배를 따오셨다. 낮부터 술자리가 흥건해졌고, 노을이 질 무렵에는 모두가 거실에 드러누워 늦은 낮잠을 푸지게 잤다. 잠에서 깬 저녁에는 준비해 간 여름옷이 퍽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지냈던 초가을이 있었다.
그 기억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십 수년이 지나 낮에는 땀이 찰방거리다가도 저녁이 싸늘해지는 계절이 오면 전어가 떠오른다. 아직 손질하는 법을 몰라 전어구이를 파는 가게를 찾는 수고 정도가 고작이지만, 이런 감각이 내겐 제철음식을 구별하고 기억하는 감각의 영역이다.
이보다 더 추워지며 동짓날이 가까워올 무렵이면 과메기가 등장한다. 첫 기자생활을 하던 잡지사의 사장님은 이 무렵 포항의 어딘가에 연락해 과메기를 한가득 주문하셨다. 잡지가 나오는 날이면 막걸리 한 잔씩 먹던 회사였다. 과메기가 도착한다는 날은 마침 잡지가 나오는 날이었다. 이날은 아침부터 사장님이 들떠서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오늘 과메기 오는 날이야. 다들 일찍 들어오셔!”
그날까지 과메기를 한 번도 먹어본 적 나는 사무실을 나서며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메기인지, 물메기 같은 건 아닐지 오만 상상을 했다. 취재를 마치고 늦은 오후 도착한 잡지사에는 때맞춰 도착한 과메기와 쌈 채소, 물미역과 초장, 마늘종 등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잡지사 모든 식구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과메기를 들었다. 몸소 먹는 방법의 시범을 보여주신 사장님 덕에 미역과 배춧잎에 초장을 곁들여 먹은 꼬들꼬들한 과메기의 맛을 배웠다.
음식을 즐기는 데 나이는 없겠지만, 어쩐지 과메기는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과메기에 막걸리를 걸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 불던 그윽한 찬바람 덕에 내게 과메기는 지금까지 찬바람의 전령으로 새겨져 있다. 매끈한 굴이나 두툼한 방어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제철음식에 대한 지식이 한없이 낮은 나지만 그래도 온라인 마켓이 발달한 요즘, 제철이면 눈에 띄는 광고 문구에 뭘 먹어야 할지 알아채거나 오래전 새겨진 감각의 음식을 만날 때가 있다.
‘지금이야, 지금. 가장 맛있는 날.’
계절은 가장 맛있는 순간을 알리기 위해 진득하게 여문 결실만 세상에 내보낸다. 가장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햇빛과 기온을 조합하는 장인정신을 발휘하면서 적당한 때까지 맛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때가 아닌 음식을 먹으면 허무맹랑하고 실망하고야 만다.
하지만 계절이 고집스레 붙들었던 제철음식을 제때 만나면 즐거움이 주렁주렁 흔들린다. 그리고 옛일처럼 기억하는 제철음식과의 첫 기억들을 회상하며 잠들 때까지 행복해지고야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