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케 단상

얇은 튀김옷을 살짝 걸치고 건강한 웃음을 보여주는 고로케

by 귀리밥

고로케를 좋아한다. 크로켓이라고도 부르는 그 음식을, 고로케라고 불러야만 내가 좋아하는 ‘그’ 고로케가 기억에 등장한다. 야채와 감자, 고기 등을 둥글게 빚어 튀김옷을 입혀 바싹 튀겨먹는 그 바삭한 음식 말이다.


어릴 때는 시장에서 파는 고로케를 주로 먹었다. 자주는 아니었고,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한 번씩 먹을 수 있는 도넛 가게에서 파는 고로케였다. 시장의 고로케는 야채빵이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는 모양이었다. 튀김옷을 한입 가득 베어 물면 그 안엔 야채를 마요네즈에 버무린 소가 비집고 나왔다. 푸짐한 시장 고로케였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시장에 고로케를 먹으러 갈 일이 굉장히 드물었는데, 가끔 생각나는 날이면 아쉬운 대로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파는 고로케를 사 먹었다. 그런데 이름은 똑같은 고로케면서 맛이며 수준은 너무 달랐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파는 고로케는 일단 튀김옷이 너무 두꺼웠다. 아주 두꺼운 옷을 꽉 껴입고 소라고 넣은 것은 좋게 말해 무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치사했다. 약간의 마요네즈와 소금, 후추에 버무린 야채를 얄팍하게 넣고 튀김옷만 아주 두껍게 만들어 튀긴 그것은 한입 베어 물면 찍- 소리를 내며 기름이 흘렀다.


내 생각에 진짜 맛있는 고로케는 튀김옷이 얇아야 한다. 속이 꽉 찬 고로케가 매력적이다. 고로케의 소가 고로케의 주인공이 되도록 아주 단단하고 꽉 여문 상태에서 튀김옷은 얇게 덮인 정도여야 한다. 감자 고로케라면 감자, 고구마 고로케라면 고구마 이런 식으로 주재료가 정체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베일을 쓴 것처럼 튀김옷을 엷게 바르고 있는 정도여야 맛있는 고로케 아닐는지.


주재료를 잘 섞어 단단히 빚은 다음 아주 얇게 튀김옷을 입히고 빵가루를 묻혀 순식간에 튀겨낸다. 한입 베어 물고 어금니로 전달해 씹을 때,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서 빵가루가 ‘파삭’ 소리를 내며 으깨진다. 그리고 튀김옷을 입고 있던 소가 입안에서 등장할 때의 그 뜨거움은 맛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식도를 건너고도 남아있는 따끈함, 튀긴 음식임에도 느끼하지 않은 바삭함, 끝 맛의 고소함, 이런 것들이 맛있는 고로케의 조건이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고로케와 내 생각의 맛있는 고로케는 천양지차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고급 호텔의 로비 카페에 두 여인이 앉아있다. 한 명은 아주 두꺼운 갈색 모직코트를 입고 있다. 호텔 로비는 난방이 잘 되니까 코트를 벗어도 충분한데 그 여인은 절대 벗지 않고 오히려 코트 깃을 꼭꼭 여미고 있는 것이다. 코트는 아주 두껍고 뻣뻣해 보인다. 옆 테이블엔 날렵한 몸매의 여인이 단출한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있다. 어쩐지 그 여인은 교양 있고 시공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 같다. 내면과 외면 모두 건강할 것 같고, 그 모습이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나는 그 두 여인 중 후자와 친해지고 싶다. 얇은 카디건을 걸친 여인에게 다가가 하릴없는 말을 건네고 친분을 교류하고 싶다. 이런 느낌인 것이다. 두꺼운 튀김옷을 걸치고 멋없이 앉아있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고로케와 얇은 튀김옷을 살짝 걸치고 건강한 웃음을 보여주는 맛있는 고로케 말이다.


그런 맛있는 고로케를 만난 경험이 몇 번 있는데 인상적이었던 날은 종로에서였다. 그날 나와 남편은 어딘가에 용건이 있어 다녀온 뒤 인사동에 도착했다. 초가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 부부는 몹시 허기진 상태였다. 당장 뭐라도 먹자며 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바로 정면 골목에 구미를 당기는 이름이 보였다. 바로 고로케!


밥을 먹어야 할 순간이었지만 일단 나와 남편은 마음이 동해 고로케집으로 향했다. 좌석이 없는 아주 작은 상점이었다. 매장 밖에 서서 돈을 지불하고 고로케를 샀다. 우린 똑같이 감자 고로케를 샀다. 일단 이것을 먹고 한숨 돌리자며 말을 주고받다가 고로케를 받아 들었다. 골목에서 나와 인사동을 걸으며 우리는 고로케를 물었다. 파삭!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우리는 또 동시에 같은 말을 외쳤다.

“맛있다!”


역대급 고로케였다. 우리가 배고팠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하여간 굉장한 맛이었다. 다음 일정이 있어 되돌아가진 못했지만, 한 개씩 구입한 것을 후회하며 갈 길을 갔다. 오죽 맛있었으면 그날 밤 꿈에 다시 그 가게에 갔을까. 그 뒤로도 남편과 가끔 그 고로케집 이야기를 나눴는데, 얼마 뒤 인사동에 다시 찾았을 때 그 가게는 없었다.


나는 장사가 안 돼 가게를 접었을 거라는 짐작보다 우리 부부의 눈에만 보이는 고로케 가게가 잠시 지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몹시 배고팠던 그 날, 그 시간에 우리 부부 앞에 잠시 등장한 감자 고로케.

글 속에 등장하는 고로케는 아니지만 그 다음쯤으로 맛있었던 금상 고로케.

이렇게 맛있는 고로케 찬양을 하니 읽는 분들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당신이 만들면 되지 않는가?’


빙고. 내가 만들면 된다. 웬만해서 집에서 만든 고로케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고로케 맛을 좌우하는 소의 비율을 맞추는 건 매우 쉽고, 튀김옷도 충분히 얇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이 느끼는 ‘맛있다’의 맛은 대개가 기름 맛이라지 않던가. 가정에서는 당연히 여러 번 재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기름을 쓰니 집에서 만든 고로케는 무조건 맛있다.


결혼 후 딱 한 번 만들어봤다. 감자를 삶아 으깬 것에 양파와 고기를 볶아 넣었다. 그것을 둥글 납작하게 빚어 밀가루를 아주 얇게 입힌 다음 달걀에 담갔다 뺀다. 빵가루는 일부러 식빵을 갈아 굵직하게 만들어 입혔다. 그것을 기름에 튀겨내 금방 접시에 담아 남편과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고로케만큼은 실패 없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자주 하지 않는 이유는 튀김이라는 음식이 얼마나 만드는 이를 지치게 만드는지, 소를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귀찮은지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라 그렇다.


며칠 전 감자 한 상자를 샀다. 이 감자로 무엇을 만들까나 생각하던 중 고로케 생각이 났다. 마침 여름도 끝났고 저녁이면 찬바람이 술술 불어오는 가을이니 고로케를 만들기엔 적당하다. 조금 귀찮고 지치는 음식이지만 어쩌다 한 번이니까.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건강한 자태로 옹크린 고로케 한 번 만들어도 괜찮다 싶다.

일단, 솥에 물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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