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도넛을 판다

아득하도록 번쩍이는 서울의 맛

by 귀리밥

가끔 도넛이 되게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미국에서는 아침 주식으로 도넛을 먹는다고도 하던데, 그 정도로 먹고 싶진 않고 어쩌다 한 번이다. 어릴 적 내게 도넛은 엄마가 튀겨주는 음식이었다. 물론 커가면서 그것이 꼭 엄마의 손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고, 세상엔 정말 다양한 도넛이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이었다.


내 경험의 폭은 살았던 지역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가끔 내가 살던 인천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신기해하며 듣는다. 수도권이긴 하되 항구도시다 보니 지역 특유의 경험이 있고, 서울과 가깝지만 옆 동네처럼 다닐 거리는 아니었다. 내가 처음 전철을 타고 서울에 가 본 것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과제 때문이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와 같은 조였던 친구와 가야 할 곳은 경복궁이었다. 우리 집에서 1호선 주안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전철을 탔다. 역무원에게 돈을 내고 행선지를 말하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종이표를 준다. 가운데 마그네틱이 그어져 있는 그 표를 기계 안에 밀어 넣으면 통과된 표가 아주 냉정한 몸짓으로 튕겨 나온다.


내가 주안역에서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 가서 동암역에 내리면 친구와 그곳에서 만나 다시 전철을 타면 된다고 했다. 핸드폰은 상상 속의 물건이요, 우린 아직 호출기(삐삐)도 없을 때였다. 여기서 친구를 어떻게 만날 수 있나, 걱정 때문에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한 채 동암역에 내렸다. 다행히 친구는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안도하며 친구를 만났고, 다음 관문을 향해 긴장을 시작했다.

다음 관문은 나보다 전철을 많이 타봤던 친구도 한 번도 못해본 것이었다. 바로 환승. 경복궁에 가려면 종로 어딘가에 내려서 3호선을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종이로 만들어진 전철 노선도를 하나 챙겨두긴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노선도에서 색이 다른 두 개의 선이 교차를 하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방학 전 친구들과 모여 나름의 머리를 굴리긴 했다.

“너네 전철 갈아타는 거 어떻게 하는 줄 알아?”

“그러게. 전철은 어떻게 갈아타는 거야?”

“나는 제물포에서 동암역만 다녀봐서 모르겠는데.”

“나는 주안에서 제물포만 타봤어.”


순간 내게 떠오른 게 있었다.

“야, 나는 알겠다!”

친구들이 내게 주목했다.

“선이 두 개가 교차하잖냐. 그러니까 전철 두 개가 포개지는 거야. 그럼 환승할 때 문이 열리고 그때 옆에 전철로 뛰어 넘어가는 거 아닐까?”


친구들이 감탄했다.

“와, 그렇네! 니 진짜 똑똑하다.”

“그래, 환승은 그렇게 하는가 보다.”

내 기괴한 상상력은 친구들에게 꽤나 신뢰감을 얻었다. 나는 더욱 현명한 자의 표정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건너뛰어야 하니까 니들 과제 가는 날 바지 입어라.”


나의 조언이 힘을 얻었고, 과제 가는 친구와 나는 그날 청바지를 입었다. 엄마를 졸라서 당시 유행하던 NIX 청바지를 어렵게 얻어 입고 나선 날이었다. 속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서울 갔는데 인천 사람인 거 티가 나려나 싶고, 어리바리해서 납치라도 낭하면 어쩌나 싶었다. 누가 나를 따라오면 112에 신고하려고 동전도 넉넉히 챙겼다. 공중전화에서 112에 신고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의 터무니없는 환승법은 종로에 도착하자마자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는 바지를 입을 필요도 없었다. 그 와중에 친구와 나는 도대체 환승을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3호선을 갈아탔다.


그리고 도착한 경복궁역에서는 출구를 찾아 한참 헤맸고, 광화문을 보자마자 광명을 찾은 듯 기뻤다. 우리는 난생처음 본 경복궁을 구경했다. 과제였던 사진도 찍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궁을 실감나게 감상했다. 아마 당시 선생님은 좁은 동네에서만 부대끼며 살던 우리에게 넓은 경험을 선물하고자 그런 고단한 과제를 내준 게 아닌가 싶다.

그날 처음 본 서울은 높은 빌딩과 옛 건축물이 어우러진 너무나 멋진 곳이었다. 인천에서는 고작 해야 우리 학교 건물이 제일 높고, 동네 병원 건물이 제일 큰 줄 알았다. 전철을 타고 한두 시간 오면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가게도 차도 왜 이리 많은지 혼이 쏙 빠지는 곳이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봐도 될 것을 친구와 나는 겁을 잔뜩 먹고 과제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함께 주안역에 내려 익숙한 분식집에 들어가 선풍기 아래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영영 먼 곳이자 멋진 서울을 고3 무렵까지 갈 일이 없었다. 그랬던 내게 또 한 번 놀랄 일이 생겼는데, 그 포문은 둘째 언니가 열었다.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둘째 언니는 서울로 학교를 다녔다. 어느 날 늦은 시간 삼화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 언니가 엄청 뽐내는 얼굴로 무슨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야.”

“뭐? 무슨 도넛?”


나와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도넛은 집에서 만드는 그것 아닌가? 엄마가 반죽을 밀어 주전자 뚜껑으로 눌러 찍으면 내가 소주잔으로 가운데를 찍고 그 동그란 원형의 반죽을 기름에 튀겨 설탕을 뿌린 그것. 튀긴 직후 먹으면 보드랍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살짝 딱딱해져 더 맛있는 그게 도넛 아닌가.

그런데 언니가 가져온 그 도넛이란 것은 조금 달랐다. 몸이 퉁퉁한 데 허연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하나씩 먹어봤다. 그리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흥분을 터뜨렸다. 이렇게 맛있는 도넛이 세상에 있구나! 이 달근한 것은 설탕 같은데 어쩜 이렇게 사르르 녹아버리는 걸까? 이 집 도넛은 하나도 딱딱하지가 않구나!

언니는 더욱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사느라 신촌에서 엄청 줄 서다 왔어. 다들 한 더즌씩 사가기에 나도 그렇게 사 왔어.”

“뭐, 한 뭐?”

“이건 더즌으로 판다고.”


더즌이 뭔지도 몰라서 그냥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그때만 해도 인천에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 매장이 없었다. 중학교 때 갔던 그 멋진 건물들 사이에 이런 도넛 가게가 있다는 건 내게 서울을 더욱 크고 대단한 도시로 부풀렸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나도 어른이니까 서울 구경을 많이 가야겠다고.


서울은 마음먹고 구경 갈 필요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웬만한 일자리들이 서울에 몰려 있어서 나는 언니처럼 서울에 취직을 해야 했다. 최소한 편도 한 시간 반의 거리로 일을 다녔다. 야근이라도 있는 날이면 예전 언니처럼 삼화고속을 기다리며 서있었다.


다 자라서 나온 서울은 예전보다 크고 웅장한 건물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군데군데 그 환상의 도넛 가게도 있었고, 그 도넛이 아니더라도 맛있고 신기한 음식 가게가 얼마든지 있었다. 한 번씩 빵이나 도넛을 집에 사가긴 했는데, 자주는 못했다. 퇴근하고 녹초가 돼 전철이든 버스든 내 몸 하나 구겨 넣고 가는 마당에 빵 봉지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웠는지 모른다. 특히 신촌에서 오는 삼화고속에는 취객도 적지 않은데, 그 사이를 뚫고 도넛 상자를 들고 온 언니는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걸까.

졸업 후 몇 해 지나서 내가 스물일곱쯤 먹었을 때, 인천에도 크리스피 크림 도넛 매장이 생겼다. 매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시내를 나갔더니 그 줄이 엄청 길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 시간은 기다려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유명한 도넛 가게가 인천에 생겼다 하니 다들 몰려오고 얼마나 설레고 있을지 짐작이 갔다. 시간이 지나니 인천에도 고층 건물이 제법 들어서고 이런 가게도 들어오는구나, 하고 헛헛한 웃음을 지고 말았다.


그래도 한 개 먹고 싶었다. 긴 행렬에 나도 한 자리 들어가 한 시간 조금 덜 되게 기다려 도넛 한 더즌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고등학생 시절 먹었던 도넛만큼 설레지 않고, 엄마가 만들어준 도넛보다 덜 뜨거운 스물일곱의 도넛. 아득하도록 번쩍이는 서울의 맛이 엄지와 검지에 끈적한 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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