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은 언제나 뭉클하게

세상 끝까지 끓어올랐던 과일의 열기

by 귀리밥

어릴 적 살던 주택에 처음 발을 딛던 날, 마당은 휑했고 쓴 바람이 가득했다. 대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긴 화단이, 왼쪽으로는 조금 짧은 화단이 있었다. 마당과 동일한 높이의 평평한 화단이었다. 화단 가장자리에는 붉은 벽돌이 박혀있었다.


이후 사교적이지 못해 외부활동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아빠는 밋밋한 마당을 그럴싸한 정원으로 바꾸는 데 열심이었다. 뭔가 손으로 만들고 가꾸는 데 재능이 충만했던 아빠였다. 아빠의 여러 면모를 싫어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손재주는 내가 고이 물려받은 것 같아 헛웃음이 나곤 한다.


아빠는 화단의 가장자리에 풍채 좋은 화단석을 놓고 그 안에 흙을 가득 채웠다. 화단의 높이가 어느 정도 돼야 큰 나무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큼직한 감나무와 대추나무, 향나무, 무화과나무를 심었다. 꽃나무로는 라일락과 장미, 능소화를 심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철쭉, 모란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위한 주목도 심었다. 그 주변으로 내 무릎만큼 오는 얕은 키의 정원수를 빼곡하게 심었다.


하늘로 뻥 뚫려있던 마당 한복판에는 기둥을 덮었고 그 기둥을 타고 올라가도록 포도나무를 심었다. 늘씬한 나무 한두 그루가 겨우 심어져 있던 화단은 풍요로운 정원이 됐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풀 냄새와 꽃향기가 가득했다.


포도나무의 퉁퉁한 오리발처럼 생긴 잎사귀가 기둥을 가득 덮었다. 포도나무의 성장은 굉장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의 초입이면 앙증맞은 열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열매가 어느 정도 포도답게 커지면 엄마와 아빠는 종이로 그 열매를 하나하나 싸 두었다. 어른 주먹만 한 포도는 녹색이었고, 어린 나는 그게 청포도인 줄 알았다.

“엄마, 그 포도 왜 종이에 싸요? 청포도 아니에요? 먹으면 안 돼요?”


그러면 엄마는 아직 먹을 수 없다고 타일렀다. 종이 속에서 다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종이로 싸 두어야 포도가 썩어 무르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기다림이 끝나는 늦여름이면 정말로 검푸르게 익은 포도가 종이 속에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렇게 수확하는 포도는 매년 양이 늘었다. 포도나무는 쑥쑥 자랐고 수확량은 한 번도 우리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포도나무가 제 몸집보다도 많은 포도를 영글어낼 때마다 신기했고, 나무가 힘들게 영글어낸 것을 내가 뺏어먹는 기분도 들었다. 커다란 소쿠리 몇 개가 가득 차도록 늦여름이면 포도가 풍년이었다.


처음엔 마법처럼 생기는 포도가 좋았다. 달콤한 포도는 씨를 뱉지 않은 채 삼키고 껍질을 쪽쪽 빨아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매번 먹을 수는 없는 법. 포도가 많이 열리니 한동안 식사 후 과일은 오로지 포도였다. 엄마는 이웃에 나눠주기도 하고, 친척집에도 보냈지만 포도나무는 흡사 포도 공장과 같았다. 그 많은 포도를 감당하기에 우리 다섯 식구의 양은 한정돼 있었다.


결국 엄마는 들통을 꺼냈다. 어린 내가 쏙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들통을 광에서 꺼내와 씻은 다음 조금 무른 포도들을 쏟아 넣었다. 그리고 끓이기 시작했다. 나는 물도 안 넣고 포도만 넣고 끓이는 엄마의 행동에 기겁을 했다.

“엄마, 포도 타요! 포도 타요!”


하지만 엄마는 그저 웃으며 포도를 젓기만 했다.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슥슥 저으며 포도를 터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타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끓인 포도는 양푼 위에 얹은 채반에 다시 쏟아냈다. 그리고 채반 위에서 다시 주걱으로 포도 알갱이들을 누르고, 쓸고, 밀어가며 껍질과 씨를 발라냈다. 쓱싹쓱싹.


채반 위에는 예쁘고 진한 보라색이 가득했다. 보라색 포스터 칼라 몇 통을 부어놓은 듯 선명했다. 채반에 한참 거른 다음 껍질과 씨는 버리고 남은 것을 다시 들통에 붓는다. 여기에 설탕을 가득 넣고 끓이면 포도 많은 집의 포도잼 완성.

그렇게 만든 포도잼은 식빵에 발라 먹으면 3장이고 4장이고 뚝딱 먹을 수 있었다. 가끔 아주 잘게 느껴지는 포도씨 부스러기는 아작아작 씹는 맛도 있었다. 그렇게 유년기부터 십 년 가까이 우리 집에선 오로지 포도잼만 먹었다. 포도잼이 아닌 다른 잼을 처음 먹은 게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였으니, 어린 시절 내가 보유한 쨈의 세계는 오로지 포도잼이었다.


엄마표 포도잼은 아파트로 이사를 나오면서부터 자취를 감췄다. 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게, 그렇게 사 먹어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잼의 맛을 감내해야 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릴 적부터 먹었던 그 잼에 들어간 노고와 신선한 포도가 조금은 사치스러웠다고 느낀 것도 나중 일이었다.


결혼 후에는 내가 조금씩 잼을 만들었다. 자두를 샀는데 다 먹기 전에 잔뜩 물러버렸을 때, 욕심껏 딸기를 한 박스 샀는데 밑에 깔린 딸기들이 전부 물크러진 속상한 광경을 만났을 때 그 과일들을 허투루 버리는 대신 커다란 냄비를 꺼내 잼을 만들었다.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사용해 열정적으로 과일을 씻어 냄비에 올린다. 설탕을 넣을 때면 늘 망설이지만 저장식품이니까 눈 딱 감고 넉넉히 넣는다. 잼의 종류에 따라 부지런한 자세로 서서히 저어주거나 혹은 젓지 않고 끓인다.


그리고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끓는 잼의 표면이 용암처럼 툭툭 소리를 내며 그 질감을 드러낼 때, 물에 잼 한 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훌훌 녹아버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다. 냄비가 얕으면 잼은 탈출하고 싶은 듯 튀어올라 나를 아프게 할 때도 있다. 긴 기다림을 마치고 완성된 잼은 소독한 유리병에 가득 담아 냉장고에서 잔뜩 오른 열기를 식힌다.

얼마 전 만든 밀크잼과 모닝빵

이렇게 잼을 만든 날이면 남편의 퇴근을 혼자 기다리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잼과 함께 기다리는 것 같다. 아니면 남편에게 직접 만든 잼을 맛보게 해주고 싶은 내 조바심도 함께일지 모른다. 그렇게 잼과 함께 저녁때를 기다렸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갓 구운 식빵에 발라 먹는다.


아, 살찌는 맛.

지독한 당분의 맛.

세상 끝까지 끓어올랐던 과일의 열기.

아삭, 하고 씹는 식빵의 표면에 뭉클하게 올라온 잼의 맛.


간밤에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과일잼이 아닌 밀크잼을 만들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와 설탕을 냄비에 가득 붓고 홍차 티백 하나를 열어 뿌렸다. 그리고 약한 불에 서서히 젓는다. 한 눈 팔면 금방 끓어 넘치니까 계속 젓는다. 그 많은 우유가 하나의 유리병에 응축될 때까지 저으며 내내 서있어야 하는 이 미련한 작업을 “나는 왜 하는 걸까.”하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리고 완성된 밀크잼을 냉장고에 넣을 때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고, 이내 나는 숙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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