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베를 미워해

아빠는 꼭 혼자서 센베를 드셨다.

by 귀리밥

좋아하는 작가가 참 많은데 일본 작가 중에는 만화가를 겸한 마스다 미리가 있다. 언젠가 이사를 앞두고 금방 읽기 좋은 책을 찾다가 알게 된 마스다 미리다. 이후 신작이 나올 때마다 보면서 웃는 날이 많았는데, 그의 작품인 <영원한 외출>을 읽던 중 이런 구절을 만났다.

“고인과 사연이 있는 음식에 반응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확실히 살아있다. 살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분인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을 읽으며 허, 하고 헛기침과 코웃음 비슷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음식이 왜 없겠는가.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음식, 거기엔 대개 애잔하고 따스한 사연이 깃들게 마련이다. 마스다 미리 역시 돌아가신 아버지와 삼촌을 생각하며 추억에 젖은 음식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sakuramochi-2110491_960_720.jpg 센베 과자 이미지를 찾을 수 없어 일본의 화과자 이미지를 찾아봤어요.

고인과 사연이 있는 음식이라. 코웃음이 냉소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나 역시 고인과 사연이 있는 음식을 상기시켰다. 내게 고인과 사연이 있는 음식은 단연 ‘센베’다. 센베이라고도 한다. 어감으로 알겠지만 본래 일본 과자다. 센베이는 밀가루에 달걀과 설탕을 넣어 만든 반죽을 틀에 넣고 굽거나, 쌀가루를 쪄서 만든 반죽을 넓게 펴서 굽거나 튀겨 만든 일본의 전통 과자라고 한다.


어릴 적 웬만한 동네 슈퍼나 제과점의 문간에는 투명한 센베과자 쇼케이스가 있었다. 투명한 아크릴과 뼈대로 이루어진 쇼케이스 안에는 여러 종류의 센베가 보였고, 재고까지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구조였다.


김 가루가 붙은 과자, 구슬처럼 생긴 과자 알갱이가 물엿으로 딱딱하게 붙은 강정, 생강 맛이 진한 하얀 전병과 땅콩 조각이 들어간 과자 등 4종류가 생각난다. 한 근에 이천 원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값을 치르고 가게에서 센베를 담아줄 때 먹고픈 종류를 말하면 그 비중을 높여 담아줬다.


흰 종이봉투에 담긴 센베는 어린 내 두 손에 묵직하도록 양이 많았다. 그랬던 동네 슈퍼들이 자취를 감추고 대형마트가 주를 이루면서 센베를 파는 가게는 희귀해졌고, 아마 근래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 존재를 모르거나 비슷한 모양새로 파는 ‘전병’ 정도나 알고 있을 터다.


기억 속 센베가 있다면 이 기억을 피워 올리는 고인을 소개할 차례다. 그는 바로 나의 아빠다. 아빠가 어린 내 손을 잡고 센베를 사주는 훈훈한 모습이라던가, 술에 취해 집에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센베를 한아름 사다줬다던가 그런 아리따운 풍경은 결코 없었다. 아빠와 센베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아빠가 꼭 혼자서 센베를 드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센베를 부를 때 ‘부채과자’라고 하셨다. 오후 4시면 재깍 퇴근하시던 아빠는 퇴근길에 슈퍼에 들러 센베를 종종 사오셨다. 그때마다 흰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그 과자를 검은 비닐봉지에 한 번 더 담아달라고 요청하는 듯했다. 내가 슈퍼에 가면 종이봉투에만 담아주는데 아빠가 사오는 센베는 꼭 종이봉투 겉에 검은 비닐봉지로 한 겹 더 싸여있었다. 사실 그 검은 비닐봉지의 역할은 실로 대단했다. 그 역할은 잠시 후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아빠는 그 과자를 꼭 혼자 드셨다. 앞에 내가 왔다갔다 움직이고, 언니들이며 엄마가 같은 방에 있을 때도 벽에 머리를 기대고 베게를 끼고 누워 텔레비전을 보시며 꼭 혼자 드셨다. 절대 가족 누구에게 먹어보라거나, 같이 먹자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가족들이 투명인간도 아닌데 그러셨다. 어린 내 눈에도 그런 아빠가 좋은 사람으로 뵈진 않았다.

‘원래 음식은 나눠먹는 거랬는데 아빠는 왜 센베를 혼자 드시지?’


더 기이한 행동은 센베를 드신 후에 벌어졌다. 양껏 센베를 드실 때까지 가족 누구에게도 권해보지 않은 채 남은 과자를 검은 비닐봉지에 넣고 탁! 소리 나도록 묶는다. 그것을 아빠 머리맡에 있던 옷걸이에 대롱대롱 걸어두셨다. 비닐봉지를 묶을 때 어찌나 힘줘서 단호하게 묶는지, 그 모습과 소리에서 ‘내 과자 먹지마!’라는 무언의 경고가 느껴졌다. 이렇게 묶어 자신만의 센베를 보호하기 위해 슈퍼에서 굳이 검은 비닐봉지로 한 번 더 포장해온 걸까. 그 기막힌 행동은 수없이 반복됐다.


이쯤 설명하면 읽는 이들도 의문이 생길 것이다. 먹고 싶다면 아빠에게 달라고 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그게 당연한 처사다. 아빠의 치사한 행태에 반기를 든 적이 있긴 하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날 날, 집에 돌아오니 아빠는 퇴근 전이었고 옷걸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센베 봉지를 발견한 적 있다. 그땐 먹을 수만 있다면 종이를 씹어도 맛있을 나이였다. 아빠가 바삭거리며 씹어 드시던 센베가 눈앞에 있었다.


나는 봉지를 풀어 남은 센베를 먹었다. 학교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지만 출출한 시간이어서 그런지 꽤 맛있었던 기억이다. 그 얇은 과자가 입안에서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생강맛 과자는 썩 별로였지만, 알갱이가 붙은 강정이나 땅콩 과자는 나름 괜찮은 맛이었다.


내가 먹기 시작할 무렵의 센베는 종이봉투에 절반쯤 남아있었는데 종류별로 몇 개 집어먹었더니 남은 것의 절반쯤 남았던 것 같다. 검은 비닐봉지를 탁! 소리나게 묶는 아빠얼굴이 종종 센베에 겹쳐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난 아빠의 자식이니, 자식이 먹는 것이 뭐가 문제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에겐 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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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에 재깍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엄마가 퇴근해 저녁상을 차리기 전 센베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본인이 남겨둔 것의 절반쯤 남은 센베를 보고 기함을 했고, 집에 있는 자식이라곤 일찍 끝나고 돌아온 나뿐이니 먹을 사람이야 뻔했다. 내가 있던 방문을 거칠게 연 아빠는 고함을 쳤다.

“부채과자 니가 먹었냐?”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본인의 부채과자에 왜 손을 대냐고 고함을 치셨다. 그걸 네가 왜 먹냐며 자식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 내 부실한 믿음도 갈갈이 찢어놓으셨다. 그 모습은 무섭기도 했지만 열 살 남짓의 내 시선에 도무지 어른답게 보이진 않았다. 손찌검도 숱하게 하던 아빠이기에 말대답이라도 했다간 얻어터질 상황 같아 별 수 없이 죄송하다고 했다.


씩씩대며 안방으로 돌아간 아빠는 센베를 보호하기 위해 더 강력한 방법을 쓰셨다. 남은 센베를 봉지에 넣고 묶은 다음, 장롱에 넣고 장롱 문을 열쇠로 잠가버린 거였다. 아빠는 그 열쇠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셨다. 기가 차고 혀를 자동으로 차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처사였다.


이후 장롱은 아빠의 간식창고이자 안전지대가 됐다. 본인이 사오는 센베를 비롯한 과자종류는 항상 혼자 드신 다음 장롱에 넣어 잠그셨다. 가끔은 엄마가 온 가족 먹이려 사온 땅콩이며 과자까지 몽땅 장롱에 넣고 혼자 드셔서 엄마도 포기하고 더 이상 간식을 사오지 않으셨다.


굳이 꼽아보자면 당시 아빠 나이가 고작해야 지금의 나보다 서너 살 더 많은 정도인데, 그 나이에 그런 행동이라니 기함하고도 남을 수준이다. 이런 사연이 있다 보니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센베가 겹치고, 그 징글맞은 행동에 몸서리가 쳐지고 만다.


스물아홉 먹을 적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한창 여름휴가 철이었고, 찜통더위 속 장례를 치르느라 나는 골병이 들 정도였다. 돌아가신 아빠를 안타까워하고 통곡하느라 병이 난 건 아니었고, 생각보다 손님을 많이 치르고 할 일이 태산 같은 며칠을 보내느라 몸 구석구석 염증이 도져 밤잠을 못 이뤄서 그랬다.


장례를 마치고 엄마 곁에서 한숨 자고 다음날 서울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려던 길이었다. 여전히 녹초인 상태로 터덜터덜 큰 길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당시 우리 동네에 오래된 슈퍼가 몇 있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그 앞에 센베가 보였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부아가 치미는 센베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채 진열돼 있었다. 평소 잘 이용하지 않던 그 슈퍼에 들어갔다.

“밖에 센베 과자 얼마에요?”


세상에, 한 근에 오천 원이란다. 별로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오천 원이나 내자니 아까웠지만, 일단 달라한 뒤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조금씩 입에 넣었다.

‘참내, 대단치도 않은 맛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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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난리법석 피울 맛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러셨을까. 장례를 마치고서야 아빠와의 완전한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며 사먹은 센베는 실로 대단치 않은 맛으로 날 실망시켰고, 고작 이 과자를 혼자 먹겠다고 자식한테 그리 박하게 굴었나 싶어 가슴이 멨다. 고깟 과자 때문에 고함을 질러가며 치사스러웠던 아빠의 옛 모습과 암 투병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 생을 마감한 아빠의 모습은 오래 돼 눅눅해진 센베처럼 그만 잊고 싶은 존재들이었다.


돌아가신 아빠는 이제 센베로 자식을 괴롭히거나 윽박지르지 못한다. 대신 살아있는 나는 센베 한 조각 먹는 데 겁먹지 않아도 된다. 또한 먹던 것을 그만두고 센베를 통째로 버릴 수도 있었다. 나는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고스란히 남은 센베 봉투를 쓰레기통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고인과 사연이 있는 음식이라면 물론 내게도 따스한 게 조금 있긴 하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상투과자나 할머니가 드라마를 보실 때 드시던 믹스커피는 기억 속에 뜨끈하게 제 자리를 여미고 있다. 하지만 아빠의 센베 만큼 강렬하고 진저리치게 만드는 음식은 더 없다. 아빠 덕에 나는 어느 나라의 전통과자를 한없이 맛없고 징글맞은 음식으로 마음속에 꿍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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