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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ug 31. 2020

그렇고 그런 프레임의 실수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 나만 고생해!

이별 노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헤어지고 술 마시는 노래, 울부짖는 듯 부르는 이별 노래는 딱, 꺼버린다. 그런 노래가 절절한 호소력으로 공감을 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별 노래를 들으면 다들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슬퍼! 슬퍼서 죽을 것 같아!”


만약 슬픔경연대회가 있다면 이별 노래들이 메달권이겠지. 그리고 헤어지고 술 마시면 전화 실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술이 아니라 비싼 밥을 먹고 속 차리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이 누구보다 압권이라고 주장하는 노래, 작품을 비롯해 일상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고, 내 감정이 무엇보다도 강하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는 안쓰럽기도 하다.


며칠 전 SNS에서 젊은 여성이 작성한 이런 투의 글을 읽은 적 있다.

“맘카페 보면 진짜 웃겨요. 애 엄마들이 자기는 힘들어 죽겠다면서 남편은 안 힘든 것처럼 말해요. 남편들도 회사 가면 상사한테 깨지고 눈치 보고 엄청 힘들잖아요. 남자 편드는 게 아니라 둘 다 힘들다는 거예요. 회사 가서 꿀만 빨다가 집에 오는 사람이 솔직히 몇이나 되겠어요?”

아, 젊은 친구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솔직히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남자든 여자든 직장 생활해보면 알만한 고통들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지하철과 버스에서 숨 막히도록 압축되는 과정, 화장실에 가거나 잠시 돌아다니기만 해도 눈치를 주는 통에 의자에 접착되듯 앉아 일만 해야 하는 생활, 서로 안 맞는 사람들끼리 어느 정도의 친분을 유지하는 데는 튼튼한 비위가 필요하며, 아무리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다고는 하나 6시에 벌떡 일어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힘들어 죽을 듯 말하는 전업주부나 엄마들의 말도 틀린 것은 없다.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 휴식이나 쉼이 있기는 할까? 게다가 퇴근도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몸을 깎아내는 노동이라 몸도 쉽게 상한다.


나는 큰 조카가 어릴 적 종종 언니의 집에 들러 조카를 돌본 적이 있었다. 안아주는 걸 몹시 좋아하던 조카는 하도 무거워서 허리에 받침대를 차고 안아줘도 5분만 지나면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5분이 지나 내려주면 조카는 다시 두 팔 벌려 안아달라고 칭얼댔다. 아이의 잠투정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며 영영 퇴근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게 엄살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결혼한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고, 맞벌이든 외벌이든 각자의 영역이 분명한 부부 사이에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남편은 지긋지긋한 사회생활과 경제적인 부담을, 아내는 쉼 없이 감당해야 하는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토로한다. 그리고 서로 똑같이 말한다.

“내가 제일 힘들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피곤해!”


이때 자신만 가장 힘들고 상대의 힘듦을 가볍게 넘겨버리면 이별노래와 같은 처절한 프레임이 생성된다. 세상에서 자신만 힘들고 불쌍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절망의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 갇히면 상대에게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분명 사랑하고 항상 손잡고 같이 살고 싶어서 결혼한 사이면서 자신에게 비참한 대우를 받아 마땅한 존재로 만든다.


SNS에서 젊은 여성의 글을 보고 얼마 뒤 나는 그 절망의 프레임을 하나 목격한 적 있다. 마치 SNS 속 젊은 여성이 예언이라도 한 마냥 ‘맘카페’에서였다. 글은 저녁밥상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었다.

“이렇게 밥 차려줬는데 남편이 비꼬듯이 정말 맛있다고 하네요. 주는 대로 처먹을 것이지.”


처먹으라는 말에 내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반찬 투정하는 배우자에게 주는 대로 처먹으라고 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사이가 나쁜 걸까? 하지만 댓글은 더 가관이다. 글쓴이에게 유머가 넘친다며, 처먹으라는 말에 폭소했다는 댓글이 수십 개가 달린 것을 보고 말았다.


물론 남편의 반찬 투정이 고까울 수는 있다. 나 역시 기껏 저녁 준비했는데 치킨 시켜먹자는 남편이 미울 때가 있고, 다이어트 하자기에 채식으로 차렸더니 고기가 없다고 징징대는 남편에게 짜증이 난 적 있다. 하지만 남편은 주는 대로 처먹을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함께 식사를 하는 가족 구성원이고, 상대의 성의를 무시하고 투정하는 자세만 짚어 말하면 될 일이었다.


주는 대로 처먹어야 한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보다 밑의 존재의 관계 아닐까? 어렵사리 가사를 전담하고 아이를 키우며 성의껏 밥상을 차렸는데 남편이 빈정거렸다는 이유로 주는 대로 처먹으라고 말하는 아내와 그 살벌한 말을 유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나만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 프레임에 단단히 빠져든 게 분명하다.

이와 반대로 남편들 사이에서 빠져드는 프레임을 목격한 적도 있다. 남편의 회사에서 인센티브가 나왔을 무렵이다. 통장에 찍힌 액수를 공유했는데 남편이 자랑스레 이런 말을 했다.

“회사 사람들이 다들 나보고 착하대. 다들 인센티브는 개인 통장으로 변경해서 아내 몰래 따로 받아서 비상금으로 갖고 있거나 쓴대. 나는 그렇게 안 하고 우리 공유 통장에 바로 받았잖아. 나 착하지?”


남편은 칭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칭찬에 앞서 몇 가지를 물었다.

“그럼 회사 사람들은 인센티브 따로 챙겨서 뭐 하는데?”

“그냥 친구들 만나면 술 한 번씩 사고, 갖고 싶은 거 사고 그러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여보도 그렇게 해. 대신 앞으로 통장 따로 관리해. 나도 내 비상금 통장 따로 만들어서 임의대로 돈 관리할게.”


갑자기 남편은 사색이 됐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왜? 다른 남편들이 비상금 통장 당연하다시피 갖고 인센티브 따로 챙기는데 아내는 그렇게 하면 안 되나? 서로 경제상황을 투명하게 아는 게 경제공동체로서 부부인데 딴 주머니로 누리는 즐거움을 아내 쪽은 하면 안 되나?”

“그게 그런 말이 아닌데….”

고작 술 한 잔, 갖고 싶은 물건 갖는 게 부부간의 신뢰보다 중요하다면 여보도 그렇게 해. 존중할게. 배우자 몰래 돈 몇 푼 모아두는 게 그리 중요하다면 그것도 하나의 사는 방식이겠지.”


결국 남편은 자기는 그러지 않겠다며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그들이 가진 프레임을 난 명확히 읽었다. 아내는 자신이 벌어온 돈을 가져가기만 하는 존재, 잔소리만 하는 존재로 보는 어리석은 프레임. 부부간의 신뢰를 잃더라도 돈 몇 푼을 쥐고 있어야 기세가 등등해진다는 유치한 프레임. 친구들에게 술 한 잔 사고 취미활동을 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데 제약이 없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비단 결혼한 이들에게만 존재하는 프레임일까? 학생들은 나름의 고충으로 만들어내는 프레임이 있고, 이성 간에 빚어지는 프레임은 연령을 불문하고 벌어지며, 직장인들은 생존을 좌우하는 ‘회사 살이’에 관한 프레임이 굳어진다. 종교와 정치적인 견해로 인한 프레임은 말할 것도 없고, 세대마다 갖고 있는 프레임은 ‘세대차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상처 입히는 데 유용하다.


나 역시 인지하는 프레임과 인지하지 못한 채 얽혀있는 프레임이 있다. 단지 앞에 예를 든 바와 같이 보기 흉할 정도로 프레임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단할 뿐이다. 물론 나 또한 어느 지점에서는 프레임에 젖어 타인에게 상처 입히고 실수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프레임의 실상은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단단해지기도 유약해지기도 한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허상인 ‘프레임’에 망가지지 않으려면 나 외의 존재에 마음을 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은 아내는 ‘나는 몹시 힘들지만 배우자의 생활은 어떠한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남편을 주는 대로 처먹는 존재로 추락시키지 않는다. ‘아내는 내가 번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만드는 악독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집의 재정 상태와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리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나 외의 존재를 상상하고 마음 쓰지 않으면 우리는 ‘그렇고 그런’ 프레임의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내가 제일 힘들고, 나만 고생하고, 내가 제일 대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프레임. 이런 글을 읽고도 ‘나는 그럴 일 없다.’고 말한다면 그 역시 프레임의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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