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전성진
우리는 대개 이방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고는 있지만 이 작은 땅 안에서 옮기고 옮기며 살아가기에 늘 이방인의 마음으로 사는 중이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고 이후 서울, 광명, 파주, 고양을 거치며 거주지를 옮겨 살았다. 특히 이방인의 마음이 가장 강력했던 건 파주로 이주할 때였다. 날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마음,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픈 마음으로 충만했던 시절. 나는 자발적인 이방인이었다.
그렇다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사실 파주는 지금도 격주로 방문하며 책모임을 하고 있기에 이방인으로 진입해 방인이 되어 나온 격이다. 그 이유는 책모임을 하며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라는 게, 우정이라는 게 내 주위로 울타리를 쳐준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고픈 마음 없이 온전히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해 사는 말랑한 이방인이 됐다.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는 제목으로 접했을 때 독일에서 요리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반만 맞았다. 저자가 베를린에 살며 플랫메이트 요나스와 우정을 나누고 독일 식문화를 접하는 이야기였다. 식문화는 이야기에 양념과 같은 소재일 뿐, 나이와 국적과 성향이 전혀 다른 요나스와 저자의 우정 이야기가 재치 있고 따뜻했다.
"근데 숭진, 그거 알아? 베를린엔 베를리너가 없어"
"무슨 말이야?"
"진짜 베를리너는 브란덴부르크(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한국의 경기도 같은 지역)에 살아. 베를린에는 외국인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독일인이 산다고."
실제로 '왜 베를린에 왔어?'라는 질문은 내가 독일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인 동시에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외국인에게도 독일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베를린은 그런 곳이다. 찾아와서 터를 잡는 곳. 막상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찾기 어려운 곳. 베를리너조차 외로움을 느끼는 곳.
읽으면서 언제쯤 육개장 이야기가 나올까 싶었다. 요나스와 사는 집 주방에서 육개장이 너무 먹고 싶어 끓여 먹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장례식의 그 육개장이었다. 그 육개장이 그 육개장이었다니. 다소 충격이었다.
식사로는 카프레제 브로첸과 햄과 오이를 올린 브로첸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없이 차갑고 건조해 보이는 브로첸을 본 나는 무턱대고 서운했다. 커다란 솥에 고추기름이 넉넉하게 떠다니는 육개장을 연약한 플라스틱 그릇에 아슬아슬하게 담아서 자리로 가져가고만 싶었다. 얇디얇은 비닐이 깔린 상에 그릇을 올리고 김이 솔솔 올라오는 쌀밥을 냅다 육개장에 넣고 투명하고 물청한 일회용 숟갈로 휘휘 저어서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싶었다.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섭섭하기만 했다. 브로첸 앞에 우뚝 서서 음식을 내려다보는데 나오미가 내 손에 티슈 몇 장을 쥐여줬다. 그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는 걸 알았다.
적게 일하고 충분히 즐기며 살아가는 요나스, 심장마비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어도 늘 발랄하고 긍정적인 요나스, 크리스마스엔 유치원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로 맹활약하는 요나스, 언제나 알레스 굿을 말하는 요나스. 사랑스러운 뚱보 아저씨 요나스. 그런 멋진 친구를 추모하며 저자는 한국의 장례식장에서 먹던 육개장을 떠올린다. 그래서 자신의 진로에 갈팡질팡 살던 저자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처음 쓰기로 한 주제가 요나스와의 이야기였다는 게 뭉클하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다정함이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 있다. 온종일 파김치가 되도록 일하는 워커홀릭 이방인에게,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짐을 풀던 이방인에게,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던 방인에게. 그 모두에게 다정함과 우정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독서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