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못할 빛나는 세상을 향해.
(제 멋대로의 생각입니다.)
대중가요를 따라가는 일에 어느 순간 지쳐버려서 거의 듣고 있지 않다가 우연히 '비비드라라러브' 무대 영상을 보고 너무 감탄해버렸다. 출퇴근길에 몇 번이고 들으며 가사를 곱씹어 보다가, 앨범 전체를 한 번 해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로스의 종말 이라는 책을 보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책을 읽었다.
책에서 에로스는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내던지고, 상대도 그 자신을 나에게 내던진다.
이 과정에서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신의 자아가 파괴되는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어렵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이를 규격화하고 조건과 최적화 과정으로 종말시켜버린다. 그 이후에는 욕망의 쾌락만이 남는다고 한다.
이를 기준으로 앨범을 해석해본다.
1. SINNY SINNY
첫 곡은 SINNY SINNY로 시작한다. 도시의 누군가의 죽음으로.
Sin은 보통 종교적인 죄악으로 해석된다. SINNY는 없는 단어지만 이에 기반한다면 불경스러움 같은게 아닐까? 누가 떠나갔길래 그는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난 그걸 자신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두가지의 모습이 있었던 거지. 하나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잃어버린 허무와 관조의 자신, 다른 하나는 '사랑'으로 가득찬, 에로스가 존재하는 세상을 믿는 자신. 그런데 허무와 관조의 자신만 남고 후자는 어느 순간 떠나 버렸다고, 그렇기에 '단 하나도 바라는 게 없는 나'였지만 '널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사실은 희망을 갖고 싶었다고.
이찬혁이 개신교도이기에 아마 '태초의 사랑'을 믿지 않게 된 것을 '신'을 믿지 않게 된 것과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2. 돌아버렸어.
그렇기에 이제 반쪽만 남은 '나'는 허무하다. 어떠한 목표와 희망도 없는, 빈 껍데기일뿐. 그럼에도 무대에 서서 춤을 추고 무대를 보여줘야 하는 나.
뮤직비디오를 보면 공작새, 주차장의 보트. 담배를 피는 물고기, 수조속의 나가 등장한다. 공작새는 아름다우나 멀리 날지 못하는 새이고, 보트에서 노를 젓지만 의미가 없다. 작은 수영장에서 분필로 오른쪽 벽에 대고 줄을 긋는 모습은, 미로를 탈출하기 위해 '오른손 법칙'을 사용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줄을 그어도 나갈 수 없는 모습이다. 마지막에는 공작새를 떠올리게 하는 흰 날개를 붙이고 날아보려 하지만 의미없는 몸짓인데, 전부 위의 다른 '나'를 잃고 열심히 노력하려 하지만 아무 의미없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3. 비비드라라러브.
다른 희망을 찾으려는 무의미한 희망은 끝나고, 이제 '나'는 쾌락에 탐닉한다. 음식, 노래, 그림, 화려한 꽃(여색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과 무용, 파괴등. 그러나 쾌락의 끝은 허무하고,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질문한다.
빛나는 눈으로 말하던 VIVID LALA LOVE를. 어디에 있냐고.
lala love는 동화같은 사랑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완벽한 사랑, 즉 에로스이다. 그러나 이 '나'는 허무의 나이기 때문에, 이를 동화속에나 존재하는 사랑이라 생각하고 lala love라고 멸칭한다.
이미 사랑은 타락했다. 세상에 의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노력하려는 치열한 과정이 아니라 편의를 위해 세상이 정해준 기준과 잣대에 감염되어 사랑이 상해버린것이다. 그렇기에 완벽한 사랑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사랑을 꿈꾸는 나는 떠나갔다고 생각하며 이미 없는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러나 허무의 '나' 자신도 결국 더이상 이를 견디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빛나는 세상', 즉 세상의 기준에 타락하지 않고 진심어린 소통과 조건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을 찾아간다.
- 비비드라라러브가 타이틀일 수 밖에 없는게, 비비드라라러브=에로스이기 때문에.
4. TV show
'빛나는 세상'을 찾으려는 마음을 먹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을까?
떠나간 '나'를 생각하며 마음속에는 그 생각뿐이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 웃긴 말에 미소 지었어
맘에도 없는 이야길 했어
화장으로 슬픔을 가리고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를 재단해 현재의 세상이 원하는 모습에 맞춘다. 어차피 아무도 관심없어 하기에.
그 누구도 관심 없는 외로운 이야기
입 밖으로 꺼내지마
바지를 벗는 게 더 나을지 몰라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노력하는 완벽한 사랑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자극과 쾌락에 기반한, 포르노적인 욕망을 보여주는게 차라리 관심을 받을 내용인 것이다.
5. 멸종위기사랑
마음속에서 빛나는 세상, 완벽한 에로스를 찾으려 하지만 그건 '멸종위기'상태다.
보통 반복되는 코러스, 즉 훅 부분은 가스펠이, 바뀌는 벌스는 가수가 부르는게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여기선 코러스가 벌스부분을, 이찬혁이 훅 부분을 맡고 있다.
즉 계속 이찬혁이 부르는 부분은 허무의 '나'기에, 다른 소리가 들려와 사랑을 되살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스펠을 활용하여 노래를 구성한 것은 종교적 색채로도 볼 수 있겠다.
God mercy (God mercy on this ground)
Where the hell (where the hell is EROS going)
신의 은총을 바라며 사라진 에로스, 사랑을 찾는다.
Stop people
Stop letting this world depraved
그리고 이 사랑, '불이 만들어지는' 태초의 사랑은 세상과 사람들의 타락에 의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되살려내겠다는 의지와 함께 노래가 마무리 된다.
6. Eve
결국 타락한 세상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이브를 찾아낸다. 성경속의 아담과 이브(하와)처럼 그들은 '불이 만들어지는' 태초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은 삭막하고 황폐하며, 타락하여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움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세상의 기준과 상관없이 둘만을 마주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7. Andrew
앤드류는 성경의 사도 안드레아를 생각했다. 사도 안드레아는 예수의 첫 제자로써 예수를 섬기다가 순례를 떠나 순교한 성인이다. 이브 다음 노래지만 '너'는 이브가 아니다. 이것처럼 '너'가 떠난 도시의 끝으로 가려한다. 즉 어떻게든 '다른 나'를 찾아 가보려한다는 것이다. 비비드라라러브, 즉 에로스를 구현해 완벽하게 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당연히 세상의 기준과 다르기에 미움과 비난을 받는다. 가시덤불에 찔리고 피투성이 손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럼에도 그는 끝끝내 간다.
8. 꼬리.
이 과정에서 고통과 좌절을 느낀 '나'는 세상을 새장에 비유하며 위로를 찾는다. 인간에게 원래 있었던 꼬리가 잘린 것은 태초의 사랑, 즉 에로스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세상의 퍼즐에 맞춰져 재단된 나와 자본주의적 사랑이 남은 것이다. 여기에 벗어나 빛나는 세상으로 가고 싶지만, 그런 날개조차 잘려서 갈 수가 없다. 원래는 분명의 존재했을 본연의 사랑에 다들 커다란 날개로, 갔었을텐데. 본적없는 꼬리가 달린 본연의 모습으로 훨훨 날개를 펼치며 사랑에 날아갔을 태초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꼬리와 날개가 잘려 세상에 갇혀버린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9. 빛나는 세상
이것을 맞추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해내는 과정이 마지막 트랙. '빛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조이는
내 결핍이
나를 빛나게 해
내가 꿈꾸는 네가 된다면
난 너를 떠나갈지도 몰라
이찬혁 - 빛나는 세상 중
'나'의 아름다움은 나의 결핍에서 기반한 것이다. 빛을 보고 다가왔지만 추악한 모습마저도 바라볼 수 있는 '너'와, 내가 꿈꾸는 네가 있지만 사실 그게 아닌 너 자체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다는 가사처럼 들렸다.
비밀이 있지
밤 없는 하루는
아침의 의미마저 앗을 거란 걸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
이찬혁 - 빛나는 세상 중
그러나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를 빛나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서로가 다르기에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리하면,
SINNY SINNY로 세상의 타락에 의해 에로스를 부정한 자신이, '돌아버렸어'의 허무함을 겪고 '비비드라라러브'로 쾌락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의미없다는 걸 깨달아 에로스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TV SHOW'로 이러한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멸종위기사랑'으로 스스로 이것을 구해내려 애쓴다. 'EVE'를 만나 태초의 사랑, 에로스를 구현하지만 세상의 미움에 쉽지않고, 'Andrew'처럼 미움과 증오를 이겨내며 한발한발 나가겠다고 다짐하지만 '꼬리'와 같이 세상에 의해 재단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한계를 느낀다. 그럼에도 '빛나는 세상'에서, 완벽하게 에로스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계속해서 모습이 의미있다고 이야기하며 노래가 마무리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서로의 다름을 사랑하고 둘 만 존재하는 완벽한 세계의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사회가 정한 여러가지 조건(외모, 경제력, 성격등)을 따지며 갈등과 충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걸 초월해서 서로를 진정으로 마주볼 수 있다면, 아니, 그런 노력이라도 한다면 타락한 세상이 빛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