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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이달고 돈 키호테 데 라만차 02

예술 노마드의 향유 #04 _ 돈키호테 02

by 딸리아

제1권의 길고 늘어지는 이야기와 사건 속에서 작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우선, 16-17C 스페인 사람들의 여성관이다.


여성을 아이, 노인과 한데 묶어 대적할 힘을 가지지 못한 나약한 존재, 굴욕을 당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편력기사는 세상의 여성, 아이, 노인의 부당함을 지켜주는 자로서 특히 여성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상태, 그 순결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자를 일컫고 있다.


한 켠으로는 '둘시네아'를 통해 편력기사의 공적에 대해 치하를 하고, 싸움과 전쟁에 앞서 그대를 위해 싸우러 나간다며 둘시네아를 대상화 한다.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둘시네아지만 돈키호테의 둘시네아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각자의 둘시네아를 서로 아는 듯 인정하며 알게 모르게 묵과한다.


둘시네아가 ‘여성’을 지칭하든 ‘정의’를 가리키든지 남성의 존재를 마치 아름다운 여성(정의)을 쟁취하기 위해 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나약한 자(여성)를 보호하기 위해 태어난 양 소명화 하고 있다. 여자 때문에 미친 짓을 하고 죽음을 불사하는 남자들의 세상, ‘사랑이란 아름다움과 좋은 평판에 의해 만들어진다’며 둘시네아는 여전히 처녀이기 때문에 굳이 편력기사들이 ‘미친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한다.


16-17C 스페인의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18-19C 배경인 영국의 ‘브리저튼(넥플릭스)’이 떠올랐고, 20C 한국의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 TV 뉴스에도 나왔던 담임선생님의 자살 사건’이 떠올랐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그 역시 자기를 사랑하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저를 아름답게 태어나게 해주신 대신 혹시 못생긴 여자로 만들어 주셨더라면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도 되는 건가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늘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교육을 받아 그게 습관이 되어 온 아가씨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제1권 p. 404)


세르반테스가 이 글을 썼던 16-17세기나 작금의 시대나 정도의 차이일 뿐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여전히 이런 종류의 사고/사상, 틀 속에 살고 있다. 만인에게 합리적이어야 할 사회통념(합리)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아 누군가는 고통을 받는다. 만인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역시 기득권 무리에 의해 만들어진 rule을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로 나뉘고, 지키지 않으면 또 다른 기득권 무리가 심판을 내린다.


두 번째, 기독교인과 무어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느껴진다.


무어인(Moor)이란 이슬람계인으로서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1492년에 800년 동안 지배했던 스페인의 이슬람공동체가 멸망했다. 이후 16-17C 기독교인의 지식과 고상함에 대한 찬사는 무어인의 잔인함과 무식함으로 대비된다.


비록 객줏집에서 일하고 있기 하지만 바탕은 선한 기독교인이었던 것이다. (제1권 p. 247)

이야기의 작가는 산초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적어도 오랜 전통을 가진 기독교인이라 생각했다. (제1권 p. 284)

제가 꼭 터키 사람인 것 같습니다요. (제1권 p. 321)

나의 둘시네아 델 토보소는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무어인을 본 적이 없고 그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도 본 일이 없어서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나온 그대로라고 감히 맹세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이러한 무어인과 눈을 마주치고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여성이다. 이들 관계를 통해 굳이 사회적 위계를 따지자면 남자 > 여자 = 무어인 으로 이른바 여성과 마찬가지로 무어인의 굴욕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 참고로 책 곳곳에서 모욕과 굴욕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세르반테스는 모욕굴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교하였다.


"굴욕을 당할 수 없는 자는 아무도 모욕할 수 없지요. 여자들이나 어린애들이나 성직자들은 모욕을 당해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굴욕 당할 수가 없다. 모욕은 모욕을 줄 수 있고 모욕을 주며 모욕을 견딜 수 있는 자로부터 온다. 굴욕은 모욕을 주는 일 없이 어디서나 올 수 있다.

한 사람이 길에서 딴 데 정신이 팔려 서 있는데, 무기를 든 사람 열 명이 와서 그를 두들겨 팼다고 하자. 그 사람이 칼을 뽑아 들어 자기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자. 하지만 상대방의 수가 많아서 복수하겠다는 자기의 뜻을 이룰 수 없을 때 이런 경우 굴욕스럽기는 해도 모욕당한 것은 아니다.

한 남자가 등을 돌리고 서 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때렸다고 하자. 그러고는 기다리지 않고 도망을 가고 맞은 사람이 그 사람을 쫓아가지만 붙들지 못할 때, 이 맞은 사람은 굴욕스럽기는 해도 모욕을 당한 건 아니다.

왜냐하면 모욕은 그에 맞서는 것이 있을 때 성립되기 때문이다. 굴욕스러운 건 기습적으로 맞은 것 때문이며 모욕적인 것은 자기를 때린 사람이 등을 돌려 달아나는 대신 스스로의 행동을 지지하며 그대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2권 P. 407-408)



세 번째, 왕권 하락의 시기였다지만 왕을 대놓고 풍자하며 강압과 모욕에 맞선다.


책의 머리말부터 책 출간에 필요한 규정 가격, 정정에 대한 증명, 특허장, 베하르 공작에게 바치는 헌사 등 당시 관례라지만 제국, 왕권집중의 기운이 느껴진다.


저건 왕의 강요로 배에서 노를 저으러 가는 죄인들입니다요.

어떻게 강요당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왕이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결론적으로 이유야 어떻든 간에 자기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억지로 가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왕 자체가 법인데, 법은 저런 사람들을 이유 없이 강압하거나 모욕을 주지 않는단 말씀입니다요, 저 사람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주는 것뿐입니다요. (제2권 p. 306-307)


1492년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닌 세계제국이 되었다.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1588년을 전후해 가톨릭체제의 붕괴,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이 시작되었으며 1604년에 영국과 스페인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영국-스페인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 참고로 돈키호테 제1권은 1604년 12월 20일 왕실로부터 판매 허가증을 받아서 1605년 출간되었다.


#돈키호테1,2(안영옥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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