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04 _ 돈키호테 01
돈키호테는 직접 세상을 떠돌며 악을 처단하고 약자를 구원하는 편력기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이 읽은 수많은 기사소설에 기반해서 행동하고 사고한다. 읽었던 내용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답을 하지 않거나 산초의 행동을 따르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우리 역시 돈키호테의 삶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알고 있는 지식과 들은 정보에 기대어 믿고 판단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고 옳다고 여기며 산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어떻게 하지? 알고 있는 내용을 곱씹으며 왜 다르지? 하면서도 ‘나 몰라’라 한다. 그 이상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행동한다. 어느 순간 돈키호테와 같이 독불장군이 되어 자기신념에 따라 살아간다.
제1권을 읽고 있노라면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도 마치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듯 하다. 설령 아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책으로 읽게 되면 몰랐던 내용들이 가감이 되는 법인데, 신기하게도 돈키호테는 책 속의 이야기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돈키호테는 동화, 뮤지컬, 발레, 오페라 등의 여러 장르로 만나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에피소드들은 우리네 인생을 담고 있다.
돈키호테의 기발함이나 이상한 행동은 제2권에서도 이어진다. 제1권보다 정제되고 이유있게 행동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제1권의 돈키호테가 그저 기사소설에 진심인 나머지 ‘현실에서 기사놀이하는 노인네’로 비춰졌다면 제2권의 돈키호테는 ‘사리분별력을 갖춘 호인’이 되어 있었다. 간혹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을 정도로.
산초 역시도 ‘속세의 전형성’이나 ‘종자로서의 복종’은 제1권과 마찬가지로 유지하고 있으나 돈키호테로부터 받은 학습효과랄까 이유있는 행동을 보인다. 그토록 염원하던 섬의 통치자가 되어 현명한 판결을 내리며 자리값을 톡톡히 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제1권에서 보여줬던 산초의 얼토당토 않는 뒤죽박죽 속담의 나열도 제2권에서는 돈키호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우리는 책을 읽을수록 산초의 매력에 빠져든다. 주인의 말이라면 세상 슬피 울 줄도 알고, 편력기사의 종자로서 주인의 행동을 따르는 그였지만 ‘찌그러진 대야는 도저히 투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산초다. 당연히 돈키호테로 대변되는 편력기사의 리그에 끼려고도 행세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옳은 말 척척 하며 자기는 처신을 잘 한다 자처했던 산초였는데, ‘당나귀 세 마리 각서’를 잊었을 땐 독자인 나도 산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도대체 내가 뭘 또 봐야 하지”라고.
그만큼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돈키호테의 곁에서 그나마 그를 붙들어주길 바랬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돈키호테처럼 되어 가는 것을 보며 걱정하는 마음도 커져만 갔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산초는 쫓기는 와중에도 당나귀에 예쁘게 걸터 앉아 ‘먹을 수 있는 이 순간’을 가장 사랑한 현재형 사나이였다. 산초는 죽어가는 돈키호테에게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미친 짓은 우울증과 같이 생각 없이 그냥 죽는 거라며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다시 떠나자고, 돈키호테의 친구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안위(철저하게 돌아 버린 자를 제정신으로 돌려 놓고자 하는 마음)를 걱정하는 신부와 학사 삼손 카라스코의 계략(?)에 말려 결투에서 패배를 맞는다. 이로 인해 더 이상 편력기사의 행세를 하지 못하게 된 그는 고향에 머물며 자기 아닌 자신의 삶을 사느라 우울증에 걸렸고 죽음을 맞이한다.
카라스코의 계획/계략을 듣고 일침을 가한 돈 안토니오의 말을 들어보자. 세르반테스가 전하고자 했던 기사소설의 의미와 우리가 여전히 돈키호테를 찾는 이유가 여기있다.
"그대가 저지른 모욕을 하느님이 용서하시기를 바라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광인을 제정신으로 돌리고자 모든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하다니 말이오.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줄 수 있는 이득이 그가 미친 짓을 함으로써 주는 즐거움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시오? 난 돈키호테의 병이 절대로 고쳐지지 말았으면 하오. 그가 낫게 되면 그로 인한 재미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그의 종자 산초 판사의 재미까지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오. 그 사람의 익살은 무엇이 됐든 우울 그 자체를 기쁨으로 되돌리는 능력이 있으니 말이오." (제2권 P. 807)
"장난을 친 사람이나 우롱을 당한 사람이나 다들 미치광이들이며, 두 바보를 놀리기 위해 그토록 열심을 다하는 공작 부부 또한 바보로 보이는 자들과 두 손가락밖에는 차이가 없다" (제2권 P.848)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정의와 상식을 안고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상식이 다른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고 일치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의 정의와 상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확인하며 살고 살며 확인한다. 그러면서도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돈키호테를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한켠으로 돈키호테처럼 살고자 희망한다. 그런 그들에게 묻는다. 돈키호테처럼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 있느냐고.
#돈키호테1,2(안영옥 옮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