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03
한 편의 긴 시를 읽은 느낌이랄까? 칠레 바닷가 작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라 해야겠다.
칠레의 시골마을에 시인 네루다가 살고 있다. 네루다는 노벨문학상과 칠레 대통령 후보자로 거론되는 등 유명한 존재이다.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그의 유일한 고객인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해주며 연을 맺게 되고, 그를 통해서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는지 알아간다.
시의 재료 ‘메타포’를 연상하기 위해 해변을 따라 걷고,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종이 위에 동그라미만 그리는 마리오는 누가 봐도 벌써 시인이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일상적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메타포가 묻어나고, 시를 모른다는 마리오는 파리에 있는 네루다에게 시로써 그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를 인용하여 사랑을 고백하고, 여자친구 엄마는 네루다를 찾아가 그 시를 읊으며 마리오가 딸의 벌거벗은 몸을 묘사했다며 씩씩대고, 괜한 폭풍을 맞은 네루다는 당신 딸을 위한 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연인 마틸데를 노래한 시라고 항변한다.
자신의 시를 표절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냐며 네루다가 말하자 마리오는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 맞받아친다.
주인공 마리오는 1952년 생으로 1969년 그의 나이 열일곱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된다. 네루다는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로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마을의 여느 사내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방인이다.
마리오와 네루다가 함께 한 시간(1969-1973)은 20세기 칠레 역사 상 정치 갈등이 심하고 불안했다던 시기로 대통령 탄핵과 군사 쿠데타 등 연일 끊이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시기였다. 1973년 군부 쿠데타로 네루다의 친구인 아옌데 대통령이 축출되고 네루다도 죽음을 맞이한다. 네루다의 친구 마리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피아트에 실려 사라진다.
바닷가 작은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칠레 민중 시인 네루다와 함께 그 빛을 잃었다.
실제로 파블로 네루다는 정치적 해외 도피생활을 하다가 이슬라 네그라에 정착했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1970년 칠레의 최초 좌파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이듬해 1971년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를 역임하던 중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체 게바라(1928-1967)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두고 ‘적절한 비유, 우아한 단순함’이라며 그의 시를 사랑했으며, 1961년 네루다로부터 받은 시집 ‘모두를 위한 노래’에 대하여 아메리카 대륙 최고의 책이라며 칭송했다고 한다. 볼리비아 마지막 격전지에서 나온 그의 배낭 속에는 ‘모두를 위한 노래’의 시들이 빼곡히 적힌 노트가 발견되었다고 할 정도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우석균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