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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작품 속 바타유의 사상

예술 노마드의 향유 #02

by 딸리아

회화에서 표현은 작가의 심리구조가 미적 표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세잔의 무절제하고 나이브하고 어색한 초

기 작품들은 여성에 대한 두려움, 에로틱한 환상, 극도의 폭력성과 맞물린다고 본다.


바타유는 ‘이질성의 철학’에서 동질적인 것에 의해 추방되고 배제된 이질적인 것의 복원을 주장한다. 태양의 이중성은 고대나 원시 종교의식의 신성한 제의와 함께 반드시 등장하는 끔찍한 희생을 뜻한다. 이카루스의 신화에 나오는 상승과 추락, 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의미한다.


이질적인 것을 해방시키는 방식에서 바타유는 프로이드의 승화와 대조되는 탈승화를 제시하였다.


프로이드는 사회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된 성적 충동이 승화를 통해 예술이나 과학 등 수준 높은 문화활동으로 전환되며, 이것이 인간의 에고를 형성하고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다. 프로이드의 리비도 이론에 따르면, 에로스는 문명이 억압한 성 본능이 카타르시스 과정을 거쳐 삶의 본능으로 승화된 상태라 한다.

반면 바타유는 성적 충동을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길은 탈승화를 통해 가능하며, 예술은 승화의 결과가 아니라 ‘파괴적 본능의 발산’이라고 주장하였다. 바타유가 말하는 에로티즘은 ‘황홀한 절망’으로 폭력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열병이다. 폭력적 충동과 엑스터시는 서로 범주를 넘어설 때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잔의 작품 ‘성 안토니의 유혹’에서 성 안토니는 성자 중에서도 성의 유혹으로 고뇌하던 성자다. 그는 여성을 보고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이 자신의 신앙을 수행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뷔를레 컬렉션의 ‘성 안토니의 유혹’에서 성 안토니가 유혹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성을 두려운 듯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성 안토니의 유혹(오르세 미술관)’에서 성 안토니는 자신 앞의 벗은 여성을 밀어내고 악마는 성 안토니를 여성 쪽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두려움은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연결된다. 즉 욕망을 절제할 수 없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세잔은 성 안토니의 유혹을 통해 성의 유혹, 즉 여성의 신체를 보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음을 알려준다.

세잔의 작품 ‘강간’에서 여인의 신체는 지나치게 크고 남성적이다. ‘사랑의 전투’에서는 다듬어지지 않고 나이브한 성적 욕망이 폭력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영원한 여성’, ‘누워 있는 여성 누드’에서는 성적 매력이 넘치는 여성보다는 동물성이 강하게 발현되어 있는 여성을 볼 수 있다. 세잔의 작품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의 몸을 묘사하는 곡선적인 형태와 매끄러운 표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욕망은 줄어들 수 없고 거리는 좁힐 수 없고 폭력은 시각에서 일어난다. 세잔의 작품에서 보이는 시각적인 폭력은 가까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거리감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외면적인 아름다움의 감각이 아니라 흐트러진 비정형적인 몸에 대한 감각임을 느낄 수 있다.


세잔의 ‘레다와 백조’, ‘여성 누드’를 비교하면, 백조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배가 놓인 것을 알 수 있다. 1870년대와 1880년대에 세잔은 사과나 배를 독립된 주제로 다루면서, 과일 정물이 점차 성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세잔은 자신의 대부로 삼았던 카미유 피사로의 영향을 받아 어둡고 무겁게 표현하던 폭력적인 회화를 점차 밝고 부드러운 색채와 완화된 내용으로 바꾸고자 노력하였다. 세잔의 수욕도는 여성과 남성을 분리해 그렸으며 이들 누드에서도 자극적이거나 직접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세잔은 다양한 회화적 위장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탈승화 하였다.


* 위 글은 전영배 '세잔의 사과(2021)'의 프로이드와 세잔의 성 표상(p. 113-169), 바타유의 에로티즘, 세잔의 초기 누드화(p. 171-234)를 읽고 정리한 내용으로 세잔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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