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07
누가 보아도 가녀리고 힘 없는 엄마는 평생 오빠의 흔적을 찾아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엄마의 기억과 과거를 알지 못하는 딸은 모정에 대한 아쉬움과 반항을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함께 한다.
공권력 앞에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힘 없는 자는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목소리를 높여 더 이상 당하지만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관련 동영상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힘 없는 자들, 우리들을 외면해 온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들의 죽음과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 너무 가슴 아파서, 나 자신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하고 거부했다.
가슴 속에 기억으로 남아 그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죽은자에 대한 예의이고, 그들을 더 이상 짓밟지 않는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충분한 애도를 통해서 죽은 자를 보냈을 때, 산 자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떠나간 이들을 내 안에서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주 4.3 시건과 광주민주화 항쟁에서 죽어간 이들, 그리고 살아도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하는 남겨진 자들의 선택이 오늘의 우리를 최소한 그런 비참한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떠나간 이들과 작별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뜻을 기리며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다.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선조들을 향해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고, 그 멀리로 찾아가서 그 뜻을 잊지 않으려 하는 우리들인데, 하물며 바로 옆에서 죽어간 이들을 홀대하고 외면하면 되겠는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 순간의 그 아픔을 그 고통을 그 뜻을 기려야 할 것이다.
인간이기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 잘못을 숨기려는 욕심을 품고, 용서를 구하지 못한 채 더 큰 변명과 악행으로 치닫는다. 또한, 인간이기에 보고 듣고 느낀 바가 잊히지 않아 괴로워하며,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아픔을 품고 사는데, 누군가는 외면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내가 제주 북촌리에 살았더라면, 내가 광주 금남로에 있었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가,
그 선택으로 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