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As Hope
꽤나 심심할 정도로 편안하다. 지난 세 장의 음반을 거쳐 몰아치던 감정의 격동은 잔잔히 가라앉았고 화려한 음악적 수사도 모습을 감췄다. 공간을 채우는 울림은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컴백을 알리는 지표일 뿐 더는 일종의 경외감이나 공포를 심어주는 미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플로렌스 웰치의 목소리에 서려 있던 무차별적인 광기도 충분히 여과되어 정확한 타이밍에 고개를 내민다. 1집 < Lungs >에서 소포모어 < Ceremonials >로의 도약만큼이나 충격적이다. 호화로운 치장을 거두고 나니 플로렌스 앤 더 머신, 특히 플로렌스 웰치의 매섭게 빛나는 눈이 보인다.
사실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은 데모 버전의 노래와 완성본의 형태가 가장 다른 밴드 중 하나다. 통기타와 드럼으로만 이루어진 얌전한 노래에서 순식간에 'Shake it out'이나 'Queen of peace'처럼 웅장한 대곡이 탄생하는 이유는 아델의 전 세계적인 히트곡 'Rolling in the deep'을 프로듀싱 했던 폴 엡워스와 뷰욕, 콜드플레이 등 웅대한 밴드 사운드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듀서 마커스 드레브스의 터치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통상 네 번째 앨범 < High As Hope >는 날 것에 가깝다. 밴드의 프런트 우먼인 플로렌스 웰치가 프로듀싱에 전면 참여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술을 끊고 온전한 정신으로 전하는 그의 구체적이고도 개인적인 경험은 신학, 신화적 고찰로 확장되어 하나의 자서전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음반은 크게 세 가지 층위에서 즐길 수 있다. 이야기는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을 대신해 맏이 역할을 해왔던 동생에게 바치는 'Grace'와 술과 마약에 취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린 켈틱풍 교외 찬양가 'South London forever'에서 출발하여, 베델 평야를 뛰어다니는 히피들의 모습을 그린 듯한 초창기 펑크의 재해석 'Patricia'의 패트리샤, 패티 스미스를 통해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나답게 존재하는 진정한 단 한 명의 인간(a real man)이라는 실존적 가치를 되묻는다.
인간은 언제나 '비어 있음'에 대한 충족을 갈망한다. 대상을 향한 욕구는 채워지지만 타인을 향한 욕망은 끊임없이 유예된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우리는 '배고파(Hunger)'지는 것이다. 영혼의 허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답을 찾지 못한 플로렌스 웰치는 신에게 분노한다. 피아노 반주와 드럼이 지배하던 'Big god'의 신성한 분위기가 LA 출신의 재즈 아티스트 카마시 워싱턴의 색소폰 연주에 의해 역전된다.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전위적인 몸부림에 그 주도권을 위탁하는 것이다.
“예수는 누군가를 위해 직접 당신을 희생하셨지요. 하지만 그게 저의 죄를 사하기 위함은 아니에요” 패티 스미스가 'Gloria'에서 말했듯, 신에게 아무리 분격(憤激)한들 그는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다. 플로렌스 웰치도 알고 있다. 실존적 물음에 답하기 위한 신학적 고찰을 마치자 그는 다시금 지상으로 눈길을 돌린다. 신의 응답을 갈구하지만, 종래에는 분노하는 자신이 있을 뿐이다. 몇 번이고 다시 소생하는 불사조처럼, 몇백 년(100 years)이 지나도 불꽃 같은 격노로부터 다시 일어서겠노라고 웰치는 소리친다. 이렇게나 강력한 메시지에 어울리는 힘찬 포크송이라니. 민담 내지는 신화적인 표현을 구사하는 데 탁월한 도구를 가져왔다.
“이 앨범은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인지하고 만들었다.”
자신감의 발로인 셈이다. 플로렌스 웰치가 자신의 이야기에 스스로 색을 입히자 밴드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 가장 가볍고 동시에 가장 무거운 작품이 등장했다. 피아노와 드럼으로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고 기본적인 클래식 악기 소리로 간을 맞춰 덜어낸 무게가 선명한 선율과 보컬로 옮겨갔다. 즉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이 혼을 빼놓는 어마 무시한 편곡에 기대지 않고도 진중한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혁명적이고 아름다운 앨범이다.
추천곡 : Hunger, Big god, Patricia, 100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