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타고난 기본값이 다르다는 것을 꽤 최근에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기본값은 ‘우울’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난하고 자책하는 방법이 왜 더 이상 통하지 않는지 알았다. 나를 몰아붙여 성과를 내던 그 치트키는 진작에 다 소모되었고 더 쓰다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생길 것만 같았다.
올해 나의 우울 극복 치트키는 딱 한 가지였다. 환경을 바꾸기.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빠르게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은 주로 여행의 형태였다. 정말 미친 듯이 여행을 다녔다. 해외가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근교라도 여행을 했다. 이렇게 저축을 안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월급이 들어오면 반은 월세로 스쳐 가고, 남은 것의 반은 생활비와 여행비로 썼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는 참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울에 먹혀 사라지느니 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 대신 현재 존재하는 나에게 집중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마주한 낯선 나의 모습이 다음 여행을 기다리게 했고, 마침내 미래의 나를 기다리게 했다. 절경을 마주할 때면 내 눈이 병상에 누워계시는 할머니의 눈과 연동되기를 바랐다. 반달이라면 이런 마법도 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반달이에게 부탁도 했다.
바이올린을 10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퇴근 후 가는 오케스트라 연습이 정말 즐거웠다. 연령도, 직업도, 사연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게 참 좋았다. 대부분은 나처럼 한참을 악기를 장롱에 두고 살다 다시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공연도 했고 친구들이 감사하게도 보러 와주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걸 되찾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바이올린 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출퇴근하는 내 모습이 꽤나 멋져 보였다.
직장도 옮기게 됐다. 중환자실 전문 약사가 되었다. 4년 정도 일한 익숙한 병원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또 다른 도시로 옮겨가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도 우울에 잡아먹히기 전에 빠르게 환경을 옮겨야 했다. 용기 있게 잘 결정했다고 믿는다.
인간관계가 매우 좁은 나조차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주위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다짐하게 된다. 잘 살아야지, 어떻게든 잘 살아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