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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하루 Jan 13. 2024

해피뉴이어 말고 그냥 뉴이어는 안될까?

    


     어쩌다 보니 8주의 무급 병가를 받게 되었다. 열을 포함한 온몸이 아픈 증상이 계속 이어지니 더 이상 회사에 금쪽이로도 근무를 할 수가 없었다. 죄책감은 둘째치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진단이 없으니 그 누구에게도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오피스 맘 (라인 매니저 / 직속 상사)가 처음으로 쓴소리를 했다. 내가 뭐가 힘든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표현을 해야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말이다. 그 말이 그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처음이고, 진단명조차 나오지 않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저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엄청나게 작은 영국병원 약사 사회에서 내가 무능한 사람으로 소문이 퍼지는 것이다. 자의던 타의던 지금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이상, 꾀병으로 병가를 얻었다는 소문은 퍼질 수밖에 없다. 어느 직장군이고 마찬가지이겠지만 인력이 미친 듯이 딸리는 NHS의 경우에는 더욱더 모든 것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근무를 빠지게 되면, 남은 이들이 그 자리를 메꿔야 하기 때문에 그 상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서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의 무능함이 된다. 결국 꼬리표가 붙어 소문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주변에서 정말 많이 봤다. 거기에 비자가 필요한 외노자이다? 더욱이 아무리 인력이 부족하더라도 대우가 나쁜 것을 참던, 돈을 적게 받는 것을 참던, 본인을 좋은 상황으로 데려다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니, 앞으로 잘 뛰어가다가도 늘 3년 혹은 4년마다 갑자기 넘어지는 패턴이 있어왔다. 고등학교 때도 수능을 6주 정도 앞둔 시점, 어린 나이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다 보니 위에 구멍이 나서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4학년으로 올라가는 진급 시험을 보던 와중 공황이 와 강제 휴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무급 휴가를 받고 일상이 멈춰 버린 나를 보니 '마의 4년'이란 너무도 크리티컬 한 징크스가 되어버렸다. 무엇이 문제일까,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금방 방전이 되어버리는 걸까? 고민을 하면 할수록 모든 게 내 탓이었다. 에너지를 잘 분산해서 사용하지 못한 내 잘못. 마음이 약한 내 잘못.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는 내 잘못.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삐용삐용. 너 지금 이런 생각 드는 거 위험해. 그럼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에게 최선일까? 그러기에는 이곳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주말에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 나가서 아이스 바닐라 라테나 카푸치노를 마시며 뜨개질도 하고, 책도 읽는 그 소중한 루틴을 놓아버릴 자신이 없었다. 현재 대학원에서 코스를 밟고 있는 것도 있어서, 조금만 더 버티면, 조금만 더 이겨내면, 뭔가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게 있어 이 나라를 떠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나 스스로 정신력이 약하다는 걸 인정해 버리는 것 같아서 더욱이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마음도 있었다.


    무급 휴가를 받고 난 후 일주일 동안은 집에만 있었다. 집에만 있다 보니 누워만 있고 위험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여전히 몸이 아픈데 누가 봐도 내 피검사 결과는 그렇게 건강할 수가 없다 한다. 내가 스스로에게 아프다고 세뇌를 하는 걸까? 이제 의심할 건 나 자신 밖에 없었다. 생일날 아침, 가지고 있는 온갖 약들을 충동적으로 다 털어 먹었다. 차라리 약 과다 복용으로라도 피검사에서 뭐가 나오면 원인이 생기는 게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와중에 약사라고 치사량까지 먹지는 않았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이렇게 혼자 있으면 큰일 나겠구나, 한국에 가야겠다. 그렇게 바로 한국 비행기를 사서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서 좋았다. 한 2주 동안은 사랑하는 반려견 반달이와 산책하기, 먹기, 잠자기가 하루 일과였다. 그렇게 새해가 왔다. 그동안은 매년 새해가 오면 소원을 꼭 빌어왔는데, - '대학가게 해주세요, ' '연말 시험 통과하게 해 주세요, ' '약사 시험 통과하게 해 주세요, ' '취업하게 해 주세요' 등 - 이제는 더 이루고 싶은 게 없는지 떠오르는 소원이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과 다 같이 보내는 새해가 정말 오랜만이라 좋았다.


    정신 건강은 신체 건강과 매우 동일하게 중요해.
네가 네 정신 건강을 잘 챙기고 있어야 앞으로 어떤 진단을 받던
치료를 받을 준비가 되는 거야.

    그동안 내가 아파온 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가장 친한 약사 동료가 해준 말이 있다. 말기 신부전증과 신장병이 있는 환자분이 계셨는데, 정신 건강 문제로 환자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는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동료분이 느낀 건, 정신 건강은 신체 건강과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의 환자였다면, 나 또한 그에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그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료가 그런 태도가 아주 전형적인 '아시안 의료진'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모든 것을 자신 탓하는 아시아 문화 + 타지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삶 +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의료진 등의 특성을 집약한 아이덴티티란다. 한참을 웃었다. 그 말이 참 위로가 됐다.


    2월 1일까지 받은 병가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는 아직도 결정을 하지 못했다. 현지에서 아주 긴 대기로 하지 못했던 검사 및 시술들을 받으며 깊게 생각 중이다. 포기에도, 선택에도, 모두 큰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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