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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안녕 Sep 01. 2023

나는 투병을 하고
남편은 외도를 했다

나는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눈을 감아야만 했다

가끔씩 직감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진실의 시그널을 보내기도 한다.

소름 끼치는 직감이 느껴지는 그날을 아직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작년 5월이었다. 늘 그래왔듯이 남편은 늦은 밤에 퇴근을 했다. 

일하고 온 남편에게 뭐라도 챙겨주기 위해 과일을 먹겠냐고 물었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과일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벌써 여름 과일이 나왔다며 진짜 여름이 된 것 같다고 떠드는 내게 

남편은 눈치를 보며 자신의 출장 일정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원래 남편은 출장이 잦은 편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국내임에도 불구하고 

호텔비가 지원되면 꼭 호텔에서 머물다 오는 편이었다.

굳이 자고 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지만 시설 좋은 호텔에서 보내는 것을 좋아해 

출장을 가면 외박으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있던 지극히 개인적인 남편의 취향을 나는 존중해 왔다. 

결혼 초반부터 지금까지 출장이 잦은 남편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날은 남편이 내 눈치를 보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었다.


나는 '거기에 계집애라도 하나 있는 거야? 왜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건데?'라고 

별 의미 없이 농담을 던졌다.


다른 부부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사이에는 이런 식의 농담은 가끔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서로가 심각하게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다툼으로 번진 일은 없었다.

남편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란 것을 믿었기에 할 수 있는 가벼운 말장난 같은 거였다.


하지만 이번 남편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만들 정도로 달랐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어지던 중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지금까지 비슷한 장난을 쳤지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때 난 알았다. 남편이 내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때 같았다면 '왜 소리를 지르냐고' 뭐라고 한마디 하며 

나도 지지 않으려고 화를 냈을 텐데... 본능적으로 아무 말이 나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상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에 남편은 수위가 높은 성적인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나 

직장 내에서 이성문제로 이슈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했었다.

그런 문제에서 만큼은 도덕적으로 무결하다고 늘 생각을 해왔기에 

나의 예민한 성격을 탓하며 의심을 지우려 애를 썼다.


그러나 남편에게서는 가끔 어울리지 않는 낯선 물건이 발견되기 시작하며 

나의 신경을 자꾸만 곤두서게 만들었다.

남편을 처음 만나고 함께 산 세월이 8년 가까이 되었다. 

생각보다 더 배우자가 달라진 것은 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


퇴근을 하면 언제나 바로 거실로 와서 옷을 벗어던지며 

돌아다니는 남편에게 줄곧 잔소리를 해왔지만 그동안 고쳐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남편에게서 그 습관이 사라졌다.

퇴근을 하면 마치 사춘기 아들처럼 자신의 서재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고

시간이 꽤 지난 뒤 나와서는 바로 샤워를 하러 들어가 버렸다. 


이때 우리 부부의 모습은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의 장면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먼저 퇴근한 이선균(남편역)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시선은 TV를 향하고 있지만 신경이 곤두서서 늦어지는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에서

어두운 거실 안에 TV 불빛과 예민해진 이선균(남편역)의 표정이 클로즈업되고 있다.

늦은 밤까지 상간남과 있던 이지아(아내역)는 집에 들어오면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나.. 왔어'라는 말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빠르게 갈아입고는 바로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물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 모두 한숨을 쉬었다.


공교롭게도 드라마의 이 부분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되었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예전에도 봤었지만 당시 나에게는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은 장면이라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없었다.

그날 나는 마치 드라마를 처음 보듯이 그 장면을 보게 되었고 우리 부부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이라도 

하는 듯이 연출은 아주 섬세했고  배우들의 호흡과 연기는 그 상황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게 우리 집 상황을 들킨 기분이었다.

갑자기 사춘기 아들처럼 변해버린 남편의 모습과 '나의 아저씨'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남편을 향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결혼식을 하지 않았기에 결혼기념일이 따로 없다.

결혼기념일이 없는 대신 지금까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해오고 있었다.

다른 부부들도 그렇겠지만 거창하게 선물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저녁을 같이 먹으며

살아온 시간을 이야기하는 간소하지만 의미 있는 날로 시간을 보내왔었다.

결혼 후 줄 곧 현관 비밀번호는 우리의 기념일이었고 이사를 한 뒤에도

비밀번호는 동일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내 생일이었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번호, 매일 하루에 서너 번은 누르고 들락날락하기에

기념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과 나에게 딱 맞는 비밀번호였다.


작년에 처음으로 남편은 기념일을 가볍게 무시를 하고 넘어갔고 내 생일도 잊었다.

내 생일을 잊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나에게 도리어 자신이 더 화를 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뒤늦은 생일 선물도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전부였다.


멀티가 안 되는 남편의 머리에서 나라는 존재는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5월 이후 마약성 진통제 용량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약의 영향인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게 누워 있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침에는 온몸이 굳어 몸을 스스로 일으킬 수가 없게 되었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기에 정말 두려웠었다.

남편에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고 호소를 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원래 류머티즘 관련 질환은 아침에 몸이 굳는 증상이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내 증상이 악화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워하는 나를 위한 위로는 없었다.




작년 7월의 주말, 남편이 점심을 함께 먹으러 나가자고 제안을 했다.


차를 타러 주차장에 내려가는데 남편이 계속해서 내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함께 외출을 할 때는 내 차를 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날따라 이상할 만큼 남편은 내 차를 타고 나가겠다고 했었다. 

내차는 경차인 '레이'이며 심지어는 렌터카이다. 나는 싫다고 하면서 기어이 남편의 차를 타러 갔다.


남편이 왜 자신의 차에 나를 태우지 않으려고 했는지 차를 타는 순간 금방 알 수 있었다.

차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낯선 캐릭터 방향제가 시선에 가장 먼저 잡혔다.

이거 뭐냐고 당연히 나는 물었고 남편은 자신이 샀다고 했다.

어울리지 않게 웬 캐릭터냐고 물으니, 자신이 귀여운 걸 좋아한다고 한다.


거짓말이다.


남편은 내가 차를 사주자마자 벤츠 관련 액세서리를 구입했었다. 그중 하나가 벤츠 전용 방향제였다.

실제로 방향제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로 디자인부터 마감이나 재질, 컬러가 모두 차량과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었고 싸구려 방향제와는 달리 은은한 향기가 났다.

리필을 해서 사용하는 것이 있는데  차의 컬러와 다르게 지나치게 튀는 그런 캐릭터 방향제를 

스스로 구입했을 리가 없었다. 

벤츠 전용 방향제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산 것은 분명했다.


나도 남편과 연애 초기에 차량용 방향제를 똑같은 걸 사서 남편과 내가 나눠서 차에 꽂고 다녔었다. 

차량을 이용해서 데이트를 하는 남녀가 아주 가볍게 할 수 있는 선물이 차량용 방향제이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차에서 계속 시끄러운 소리가 날 거슬리게 했다.

블랙박스에서는 반복해서 SD카드가 없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반복해서 들리는 소리를 남편은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나는 왜 SD카드를 빼놨냐고 물었다. 남편은 대답을 회피했다.


그때 나는 남편의 외도를 확신했다. 




고기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씹기만 하는 내게 눈치가 없는 남편은 

자꾸 맛있지 않냐며 말을 걸었다.

이 정도까지 되었는데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 더 신기할 뿐이었다.


밥을 모두 먹고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사람이 유난히 많은 카페 안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으면서 남편은 나의 건강을 걱정하며 나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요가나 필라테스 학원에 가서 운동을 하라고 하며 

규칙적인 시간에 밥을 먹어야지 건강해진다고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소리다.


남편의 말을 듣고 참다 참다 감정이 격해지고 기가 막혀서 울면서 

스타벅스를 뛰쳐나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예쁜 운동복을 입고 요가를 하고 집에 와서 

샐러드를 먹는 그런 멋진 생활, 나도 늘 꿈꾸고 있다.

하지만 내 몸은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굳어 있고 

약을 먹고 한참을 누워 있어야만 몸이 풀려 겨우 걸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난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도 못했다.


나는 남편이 출근한 뒤에는 약에 취했는지 아니면 내 몸이 이상한 것인지도 모르게

하루종일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7월부터는  몸을 일으키지 못해 이불에 소변을 보는 실수도 여러 번 했었다. 

나에게는 너무 수치스러운 사건이었고 정말 이러다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꼴이 될까 봐 너무 두려웠었다.


서러워서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었다.

얼마나 내 상태를 모르고 있으면 거동도 못해서 소변실수까지 하는 사람에게

요가라니... 남편은 여자를 만나느라 정신이 팔려 내 상태가 어느 정도까지

악화되었는지 아예 모르고 있었고 관심도 없었다.


가사조사에서 이때 사건에 대해서 남편이 진술하기를

나를 가리켜 이상행동을 자주 한다고 표현했다. 예를 들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이 나를 위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뛰쳐나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첫 가사조사에서 난 남편의 외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었고 

나는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남편은 연애를 하고 있다.

함께 고생하며 살아왔던 아내가 아픈데 어떻게 저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있는지...

배신감과 분노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약을 먹고 잠이 들면 다음날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며 잠에 들었지만 

다음 날 늦은 오후에 겨우 눈을 뜨면 내가 고통에 빠져서 살아있는지, 혹은 죽은 것인지도 모르게

지난여름을 보냈다.


남편의 외도를 마주하고 어이없게도 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외도를 확신하면서도 남편의 외도 증거를 찾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으며 남편이 퇴근 후 숨겨둔 블랙박스의 SD카드를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저 무기력하게 남편의 행동만 지켜보고 있었다.


상간녀를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이 은밀히 즐기는 밀회는 더더욱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걸 보게 되는 순간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장 흔히 다루는 소재인 외도는 가장 신뢰한 사람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표현할 수 있고 외도를 즐기는 당사자들을 금지된 것을 은밀히 

즐기면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극을 전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의 외도를 확인하는 순간,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순간, 가정이 그대로 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함께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고생을 하며 가정을 꾸려왔다.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던 나의 가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투병을 하며 남편의 간호를 받지는 않았지만

내 몸이 모두 무너진 와중에 가정까지 깨지면.. 

내가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움과 공포는 오히려 내가 느끼고 있었다.


작년 여름 8월의 나는 매일을 누워서 죽음을 생각하고 또 죽음을 생각했다.

왜 하필 죽지도 않는 병에 걸린 것인지...

온몸을 쥐어짜는 통증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경험하고 있는 나의 현실은 

너무나 잔인해서 나는 분노할 힘조차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죽기를 기도했다.


그때 나는 살아있지만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정황이 남편의 외도를 나에게 지속해서 알리고 있지만

어리석게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쩌면 내가 오해하는 것일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있기도 했었다.


지난여름,

내 몸은 극한 통증으로 무너져 버렸고

내 영혼은 살해되었다.





*

제가 작성한 모든 글은 소설이 아닌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을 중심으로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거짓이나 과장 또한 없는 모두 실제 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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