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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안녕 Oct 04. 2023

평범해지고 싶어
두 번이나 결혼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 두 번의 결혼은 모두 나를 파멸시켰다

지난 추석 남편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정말 결혼이라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던 건가... 

이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나는 2번의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렇다.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 엄청난 사건들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나를 더 충격에 빠뜨렸고 왜 이런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는지

그 사실만으로도 나를 더 고통으로 몰아갔었다.


나는 이 반복되는 불행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고

결국 나를 잘 알고 올바르게 세워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문제를 살펴봤고 나와 연결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당연한 것이 아닌데 

당연히 여겨지는 인식의 문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을 어떻게 일으켜서 주체적으로 살 것인지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을 했다.


지금 과거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나는 과거의 슬픔이나 상처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마음의 동요나 자기 연민에 빠지기보다는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내 생각을 정리할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동안 가슴에만 담아왔던 해묵은 상처가 배출되어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 기분을 느낀다.




나는 정확하게 나이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른 하나 즈음, 첫 번째 결혼에서 이혼을 했었다.


그때는 2010년 정도 되는 시기였다.


지금은  '참고 사느니 이혼해 버린다'라며 이혼을 하고 새 삶을 사는 게 쿨하다고 

인식하는 분위기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혼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회사나 주변 사람, 그리고 친구들 중에 그 누구도 이혼한 사람은 없었었다. 

내가 유일하게 거론될 사람이 된다는 것이 이혼보다 더 무서웠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 더 추가되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망치듯이 신혼집을 나와 부모님 집으로 향했었다.


나는 약 2년도 안 되는 결혼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사실 그 결혼을 다시 되돌아보면 결혼 전부터 큰 사건이 있었고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을 

억지로 이어서 했었다. 그렇게 이어간 결혼은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파탄이 나버렸다.


당연히 부모님은 자식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이혼을 한다는 것이 내 자식이 될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도 못했던 부모님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화도 내 보시고 달래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첫 번째 결혼 생활 중에도 나는 건강이 크게 악화가 되었었다.

그때는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회사에 병가를 내고 집으로 와서 짐을 쌌고 부모님 집에 머물다가 수술을 위해 병원을 갔다.


한 달간 병가를 냈었고 부모님 댁에서 회복을 하는 중에 X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연락을 했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통보는 당연히 아니었다. 

결혼생활 중 지속적으로 갈등이 발생하면서 이혼이야기가 나왔었고 

나는 스트레스로 45킬로였던 몸무게가 수술을 할 시기가 되었을 때는 37킬로가 될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그래도 결혼생활 유지를 하기 위해 부부상담도 고려했었지만 갈등의 원인이 부부 두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었기에 부부상담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누워서도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그런 애매한 상황에도  X남편은 매일 병문안을 왔다.

하지만 수술을 마친 뒤, 부모님 집으로 갔고 나는 처음 생각대로 이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첫 번째 결혼이 마무리가 되었다.


다시 회사로 복귀를 했을 때 나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일을 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아이도 없었기 때문에 이혼 후의 삶이 표면적으로는 

나에게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작은 오피스텔에서 혼자서 사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혼을 결심하면서 이 사실을 어떻게 주변에 알리고 

그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다. 


회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사실 나에게는 가장 큰 걱정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많은 회사 사람들 중에 이혼을 했다는 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슈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지냈었다. 

아무에게도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나름대로 결심을 했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따위 소문이 뭐라고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런 생각까지 했는지 참 한심하다. 

하지만 그때는 어렸고 지금과 같이 인식이 없던 시기였기에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으면서까지도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남편을 '잘 지내는 것처럼' 둘러대는 일은 정말 힘들었었다.


특히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결혼생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게

늘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점점 개인적인 모임이나 친구들, 지인과의 만남을 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나를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속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약 5년이라는 시간을 살았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 올려 보면 나에게 진심을 이야기한 이들에게 

진실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


그저 나의 이기심 때문에 나는 사람들과의 진실된 관계를 맺지 못했었다.




최근에 대학 선배에게 톡이 왔다.

마지막으로 선배를 만났던 때가 아이가 걸음마할 때였는데  지금 중학생이 되었다고 하니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세월이 이렇게 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와의 만남도 내가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모임에서도

나는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는 선배의 첫 말은 '혹시 나 차단한 거니'였다.

혼자서 오랫동안 집에서만 지내는 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메시지였다.


두 번째 결혼에 문제가 생기고 '이제는 더 이상 숨어서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제 숨어서 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혼 소송부터 투병, 그리고 상간녀 문제까지 최근 일을 모두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첫 번째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처음으로 그때 연락을 끊었던 일에 대해

사죄를 구했다. 

그때 내가 너무 어리석었고 무서웠었다며 그렇게 연락을 끊은 나에게 

연락을 다시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선배는 누구나 사는 동안 모두 말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모두 괜찮다고 나를 위로를 해줬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마음속의 무거운 죄책감이 한순간에 사라져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가족들은 서른 초반의 어린 나이에 이혼을 하고 숨어서 사는 나를 보면 답답해했다.

꽤 오랜 시간을 숨어서 사는 나를 보며 이제는 그만 이혼했다고 말하고 사람을 만나라고 했지만

난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다시 하라고 했지만 나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난 그냥 혼자만의 동굴에 들어가서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 조차를 하지 못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것을 

실천이라도 하려는 듯이 열심히 일했고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다시 공부도 했다.

직장과 학교를 오갔을 뿐이었고 대학에 강의도 나가며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았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며 결혼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했지만 

결국 나는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었다.


이혼이라는 큰 고난이 전화위복이 되어 나를 더 발전시키는 계기로 

만드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 성장이 표면적으로 커리어의 발전만으로 생각을 했었고 

나의 정신적, 내면의 성장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도 못했었다.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조차도 없이 커리어 성장을 위해서만 살았다.


그때 내가 내 마음을 깊이 바라보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잘 생각을 했다면 

나는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살고 있는 나에게 

'제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라'는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때 남편을 소개받게 되었다.


놀랍게도 남편도 나와 같이 이혼사실을 숨기며 살고 있다는 것을 

첫 만남에서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만남이 이어졌고 그저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기 위해 

나는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평범한 삶은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남들처럼 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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