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서울 봉원사] 108초 명상으로 대신해도 돼?

[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열아홉 번째 108배]

by ordinaryclip
2026. 2. 24. @서울 봉원사 [열아홉번째 108배]


"한 군데 더 들를 힘이 남아 있어?"




지도앱을 켜고 다음번 목적지를 가기 위해 봉원사행 버스가 서는 정류소를 찾아 나선다. 점심에 피자 한 조각 먹고 나와 108배를 두 번이나 해서 배가 고플 것 같아 아이에게 물어봤는데 괜찮단다. 배가 고프면 근처에서 요기를 하고 가자고 했는데 버스가 바로 오는 바람에 주전부리도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20분 남짓. 버스가 종점인 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우리를 내려줬다. 절 입구까지 간다는 버스를 갈아탈까 했는데 지도상으로 도보로 15분이 걸리는 거리다. 그 정도면 아이와 내 걸음으로는 십 분 이내로 갈 수 있어서 걷기로 한다.




"엄마, 하숙이 뭐야?"


봉원사로 올라가는 길이 대학가여서 오랜만에 '하숙'이란 글자가 보인다. 아이가 하숙이 뭐냐고 물어보길래 돈을 내면 잠잘 방도 주고 아침이나 저녁도 주는 곳이라고 했더니 호텔 같은 거냐고 묻는다. 뭐 비슷한 거지만 다른 거라고 했다.


평일 오후인데 대학가는 한산하다. 방학이라 그런가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도앱을 켜고 한참 오르막을 걸어 한증막을 지나 봉원사에 다다른다. 그곳까지 걸어가는 이는 우리밖에 없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가 타려 했던 버스에서 내렸는데 다 한증막 손님이었다. 주차장에도 차가 많은 걸 보니 유명한 한증막인가 보다.


한증막을 뒤로한 채 아이와 걷는데 길 너머 언덕 위 체육관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응원을 연습하고 있나 보다. 3월이면 신입생들이 들어올 테니 응원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나 보다. 아마 응원단에게는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일 거다. 합동 응원전에서 만나 서로에게 더 크게 목청을 높이려면 지금이 중요하다. 문득 입학 무렵 새내기 시절이 떠올랐다.




봉원사는 생각보다 큰 절이었다. 날이 흐려서인지, 추워서인지, 아님 구석에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경내는 조용했다. 오히려 옥천암은 산책하며 오가는 이들이 있었는데 봉원사는 지나가는 스님만 보이고 신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와 경내 여기저기 구경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엄마, 나 배고파."

아까부터 배가 고픈지 몇 번이나 물어봤을 때 대답을 않던 아이가 이제야 배가 고프다고 고백한다. 절 근처는 먹을 게 없고, 절 안에는 봉은사처럼 따로 공양을 할 수 있는 식당이 없는데. 엄마가 물었을 때 대답을 안 했으니 참아야지 뭐 했다. 다행히 나올 때 가방에 챙겨 온 사탕이 있어 아이에게 당충전이라도 하라고 건넸다.




봉원사는 889년 신라 말기에 반야사(般若寺)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는데 고려 공민왕 때 크게 중창했다 한다. 태조의 초상이 봉안되기도 했던 봉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단다.


과거에는 연세대학교 자리인 연희궁 터에 있었는데 1748년(영조 24년)에 지금의 터로 이전해, 영조가 친필로 봉원사라는 글씨를 쓴 현판을 내렸다고 한다. 영조의 친필 현판은 안타깝게도 한국 전쟁 때 소실되었단다.



봉원사는 갑신정변의 요람이었다고 한다. 조선말 이동인이 이곳에 머물면서 박영효, 김옥균 등에게 일본을 오가며 보고들은 개화 문물을 전해주었단다. 이곳은 또한 마곡사로 피신했던 백범 김구선생이 마곡사에서 나와 잠시 기거하던 절이기도 하단다.


절 안에 한글학당이 시작된 곳을 기념하는 곳이 있었다. 더 위로 올라가니 평범한 간살과 달리 문짝에 소나무며 꽃이며 화려한 나무 조각이 유리문에 덧대어진 건물이 있었는데 극락전이었다.


봉원사의 건물 대부분은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대웅전도 닫혀 있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오시오'라는 놓인 간판을 보고 나서야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보다 하고 들어갔다.




"108배 대신 108초 명상으로 대신해도 돼?


하루 108배 3번은 힘든지 아이가 이번 절에서는 108초 동안 명상을 하는 것으로 108배를 한 셈으로 쳐주는지 물어봤다. 아까 버스에서 절을 한 군데 더 들러도 되냐고 물었을 때 자신만만하게 좋다고 하더니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아님 다리가 풀려서 그런 건지 꼬리를 내린다.


아이에게 108배는 엄마의 프로젝트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전혀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너만의 방식으로 기도를 하면 된다고 했다. 대웅전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기도를 시작한다.


아이에게 앉아 있으라고 좌복을 꺼내어 나눠 준다. 경내가 너무 추워서 이번엔 좌복을 3개씩 썼다. 경내에 사람이 많으면 혼자 좌복을 몇 개씩 쓰긴 어렵겠지만 아무도 없고, 좌복도 넉넉해서. 전에 종로 조계사에 가니 무릎이 안 좋은 할머니들은 좌복을 8개씩 깔고 절을 했다.




내가 절을 시작하자 아이도 절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힘들다고 안 하겠다고 했는데. 아이에게 별말하지 않고 나대로 108배를 시작했다. 결국 아이는 108배를 완주했다.


매번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아이는 마음을 다 잡고 108배를 해낸다. 108배를 마친 아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이 인중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 손으로 슥슥 닦아주었다.


아이에게 힘들지 않은지 물어봤다. 무리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이미 108배를 두 번이나 한 데다 대중교통으로 여기저기를 다니느라 힘들었을 텐데, 아이는 씩씩하게 괜찮다고 얘기했다. 하다 보니 또 할 수 있게 됐다고. 그런데 배가 고파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고 했다.




"얼른 밥 먹으러 가자"


산 너머로 뉘엿거리는 해를 등지고 서둘러 절에서 내려왔다. 올라가던 길에 봐뒀던 식당에 들어가 오늘의 메뉴를 주문한다.


식사가 나오자 아이가 말없이 먹는 일에 집중한다. 평소라면 밥을 먹으면서도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텐데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숟가락을 떴다. 오늘 하루 세 번이나 108배를 하느라 고생했다며 아이 밥그릇에 내 몫의 밥을 반쯤 퍼 올려준다. 아이가 웃으며 숟가락 가득 푼 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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