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반대인 사람
이상형이 어떻게 돼?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의 이상형을 묻고 답하곤 했다.
그리고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뭘 가장 참을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사람의 이상형을 들으면서
내 이상형 조건(?)에 추가할게 있는지 또는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항(?)들이 있는지
수정과 보완을 거친다.
“나는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남자가 좋아!“
(물론 대학교 나오고 직장다니면서 자기생활 꾸려나갈줄 아는 건 기본이구!)
배우자 기도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체크리스트 쓰듯 써 놓은걸 보면
나조차 그러지 못하는데,
상대방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참 웃기다는
생각도 들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싶었고,
그럴려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짝을 주시겠지!
나는 왜 많고 많은 이상형 월드컵에서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을 가장 먼저 내세웠을까.
우리집은 부산이다.
자라오면서 아빠와 엄마가 서로에게 살갑게 지내시는걸 본적이 잘 없다.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과 침묵
그시절 여자의 수동적 태도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셨던 날이 많았어서
살가움 보다는 살얼음이었다고 말하는게 맞겠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시면
엄마는 동네주변을 돌아보며 아빠를 찾으러 가시고
돌아오실땐 인사불성인 아빠와
부정적인 말들만 가득한 고성만이 집안을 채운다
언니와 나는 다 들리지만 안들리는척
작은방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무서웠고 불안했다.
중고등학생이나 조금 더 컸을때는
무서움은 서러움이 되었고, 분노가 섞였다.
또... 또... 또... 반복되는 날들
나는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가겠노라
이 집구석을 떠나겠노라 혼자 생각했다.
나 공부하고싶다고하면 어떻게든 시켜주신 엄마,
자기는 아르바이트해도 나는 하지말라는 우리언니
집에서 받을수있는 지원과 배려는 다 받은 나.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보답해야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뒤돌아보지않고 나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에 대한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혔고
나에겐 아빠란 아무 의미가 없다 되뇌인 시절도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때까지만해도
아빠는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에게 제대로 사과해야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난 용서할수 없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아빠를 밀쳐냈었다.
지금은 흔해진 관찰예능이 그땐 없던 시절이라
다른집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수없었다.
있었다면 내가 꿈꾸는 아빠를 찾기 쉬웠을수도..!
내가 원하는 아빠를 구체적으로 그리진 못했어도
나는 아빠같은 남자는 만나지않겠다 다짐했다.
그래서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는 이상형은
아빠에겐 없는 것들로만 만들어진 단어조합이다.
(나중에 이어서 쓰겠지만,
지금 34살이되어 바라보는 아빠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나는 아빠를 너무 몰랐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지금, 과거를 떠올리며 앞에 줄줄이 내뱉어놓은 내 생각이 많이 죄송스럽다.
이걸 글로 남겨놓는거 자체가 아빠한테 상처가 될까봐,불효가 될까봐 다 쓰고 지워버릴까 고민이 된다. )
어쨌든 그렇게 심어진 생각때문이었을까.
20대 내내 나는 연애가 다 쓸데없는 일처럼 보였다.
남자는 다 한심해보이고,
내가 의지할수 있는 대상이 아니어보이고,
하나도 멋있어보이지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적어도 내 기억에
아빠가 나를 이쁘다, 우리딸이 소중하다 라고
(마음은 그러하시더라도) 직접 말씀하신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나한테 친절하게 다가오는 남자가 있을까?
나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까?
나는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있다해도 그 마음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알지?
있다해도 그 마음이 오래가는 마음일까?
금방 변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 자리잡아서
늘 이성관계를 일부러 시시하게 대한것 같다.
이성한테 사랑받는다는게 뭔지 몰라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어떨땐 비참하게 느껴졌다.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라는 반증같아서
예뻐야할까?
여성스러워야할까?
헌신적이어야할까?
내가 뭘해야 사랑받을수있을까?
지금의 남편은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싸구려 구두를 신은 날 발뒤꿈치가 까져서 피가나는 발을 너무나도 숨기고 싶었던 때에...걱정섞인 눈으로편의점에서 데일밴드를 사와서 붙여준 다정한 사람
그리고 진지하다가도 재치있는 말재간으로 늘 나를 웃겨주는, 우리만의 시그널을 만드는 유머러스한 사람
연애 할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지독히 나의 못난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못난모습은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었는데,
예를 들면 주말에 늦잠자는 게으른 나,
미용실에 가지 않아 염색이 정리되지 않은 머리,
입고나온 옷이 예뻐보이지 않을 때,
가족과의 갈등으로 심란한 나의 상태,
피부트러블이 나서 병원을 다니는 나,
낡은 주택인 부산집에서 영상통화를 거부하는 나,
과자와 라면을 먹으며 유튜브를 밤새 보는 나 등등
이런 나말고,
언제나 밝고 가족들한테 사랑받고 회사일도 잘하고
이따금씩 전시나 음악회 같은 취미도 즐기는
그런 나만 보여주고 싶어했었다.
오빠는 다 괜찮다고 했었다.
나의 그런 부분이 나를 사랑하고 말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었다.
나라는 사람을 더 알고 이해하고 싶어했고 그뿐이었다.
그치만 나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한동안 그 말을 잘 못믿었다.
결국 나의 못난모습을 다 보면 떠나갈거라 생각했다.
1년.. 2년.. 3년... 시간이 지나면서 믿게 됐다.
나를 내보이는 과정에서 눈물의 시간들이 있었고
오빠가 날 떠나갈거라 생각했던 적도있었지만
늘 남편은 한결같이 변함없는 마음으로 나를 대해줬다.
그 마음이 너무 귀하고 고마워서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결혼을 결심하는것, 부부란 이런건가보다.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것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것
편안하고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는 것
내가 직접 이상적인 부부로서의 부모님을 보면서 자라진 못했지만, 내가 꾸려나가는 가정은 선택할 수 있는거다 여러번 되뇌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을 만났고
사랑받는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와 오빠를 사랑가득한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부부로서 이상적인 남편과 아내의 모습으로도
기억할수 있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내 아이는 늘 의심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사람에게 편안하게 사랑받고 사랑줄수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