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주 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나로 살아가기. 프롤로그.

by 오디너리정

파혼을 결정하고, 본가로 돌아온 지 어느새 두 달이 다 되었다.

신혼집 입주 전까지, 그러니까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십 년이 훌쩍 넘게 지내온 집인데 이상하게 아직 낯설다.


그와는 햇수로 4년을 함께 했다.

내 나이 서른에 만나 약 2년을 뜨겁게 사랑하고 많이 다투면서 헤어졌고, 1년 채 안 되는 공백기 후 우리는 재회했다. 다시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결혼 적령기에 재회한다는 것은 곧 우리에게 결혼 결심을 의미했다. 3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순리대로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헤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는 말, 재회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결혼 준비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건 기혼자가 주변의 대부분을 이루는 나이가 되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준비는 그냥 나 혼자 한다고 생각하라는 친구들의 조언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했음에도 현실은 예상 보다 더 참담했다.


앞선 2년의 연애에서도 그랬듯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과 달리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사소한 모든 말이 오해가 되고, 매 순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골이 깊어질수록 그는 그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나에게 비난과 질타를 쏟아내고 자리를 피하거나 일방적으로 연락을 차단하기 바빴다. 그런 그를 보며 불안해진 나는 더 이해하고 기다리기보단 당장 대화하자며 붙잡고 매달리기 급급했다.

회피와 불안이 충돌하니 매 끝은 파국이었다.


물론 그도 나도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열이 한 김 식고 나면, 우리가 함께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서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너무 다른 우리였지만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통했다. 그럼에도 늘 같은 상황에 놓였고, 노력을 함에도 달라지지 않는 결론에 지쳐갔다. 그럴수록 갈등은 더 극단적으로 고조되었고, 말미에는 서로 상처 내지 못해 안달 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말라갔고,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머리로 이해하는 순간에 와서야 그를 놓을 수 있었다. 아니,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을 5주 앞둔 주말,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