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by 오레오

교차로엔 검은 지문이 동공처럼 고여있다. 잘바닥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이방인 무리. 횡단보도 옆 주저앉아 있는 검은 염소. 하수구가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고 나는 사각형에 칼을 쑤셔넣는다. 언제 그렇게 커진 걸까. 손틈 사이로 칠흙같이 까마득한 머리칼이 잔뜩 흘러내린다. 배를 갈라 꺼낸 심장이 펄떡거린다. 부패의 뭉근한 온기는 안의 것일까 밖의 것일까. 종말의 순간마저 너는 국적을 따지고 있구나. 염소가 조소한다. 텅 빈 동공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기후. 끈적한 오염수의 유속이 느려지다 마침내 응고하면 우리는 심판을 받는 것이다. 잿더미 안에서 전설 속 고대 신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배기구로 검은 실뱀 떼가 폭우처럼 쏟아져내린다. 반지하 창틈으로 불에 그을린 가래침이 흘러내린다. 도시가 온통 검게 범람한다.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 일제히 눈을 가리고 절을 올린다. 검게 무릎 꿇는 사람들. 검게 구역질하는 사람들. 검게 물드는 사람들. 검게 춤추는 사람들. 검게 노래하는 사람들. 사람들 틈으로 검게 흘러내리는 사람 글. 눈과 코와 입마저 새까맣게 흘러내리면 고대해온 대재앙의 날을 기념하며 서로 입을 맞추고 배를 가른다. 상처를 비집고 다시 검은 사람들이 흘러나오고 다시 입을 맞추고 배를 가르고......


누군가 기록한 창세기의 일부분이다. 이후의 내용은 검게 물든 종이 위에 검은 글자로 쓰인 내용이므로 누구도 읽을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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