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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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모락모락 김이 난다. 한 김 식히고 마셔야 한다. 쓴 건 잘 삼켜도 뜨거운 건 쉽사리 삼키질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버린 걸.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결국 참지 못하고 와락 입에 들이부으면, 후두둑 쏟기 일쑤다. 뚜껑을 닫고 마시는 걸 까먹은 탓이다. 당황하던 하루이틀도 지나, 이젠 불상 닦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평온히 닦는다. 그런 매일이다. 마음은 식을 줄을 모르고, 나는 자꾸 갈증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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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면 글이 잘 써진다. 여유가 생기면 글이 잘 써진다. 다만 우울의 원인이 여유의 부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몸의 여유든, 마음의 여유든 머릿속에 문장이 가득한데 쏟아낼 수가 없다. 오늘도 늘 그렇듯 여유는 없지만, 우울한 내 마음의 손을 들어주기로 한다. 활자로 배설하는 마음. 불교에선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 부른다던데, 내 우울도 다 내보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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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배송된 명함에 대해 생각한다. 내 이름, 내 주소, 내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인데, 나에게 배송되어선 안 될 명함이었다. 그 어디에 소명해도 입증되지 않는 사실이란 게 다소 아이러니 하다. 아무리 내가 나의 명함이 아니라 말해도, 나를 구성하는 모든 정보가 나의 명함이라 말한다. 세상은 나에게 증거를 요구한다. 나는 손에 쥔 것이 없다, 잘못 배송된 명함 한 장 뿐. 아무리 구기고 찢어발겨도 지나치게 빳빳하게 나의 신원을 증명하는. 정보가 말보다 힘이 센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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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선형적인 세계를 사랑한다.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이 곧 시작인 역설을 애정한다. 창조적 파괴, 파괴적 창조. 유한적 무한, 무한적 유한. 기러기. 토마토. 역삼역. 우영우. 세상이 지나치게 선형적인 질서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힘껏 되뇌인다. 기러기. 토마토. 역삼역. 우영우. 그리고 덧붙여본다. 지금 나의 세계가 선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내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차안대를 벗는다면, 저 새처럼 날아오른다면, 세상은 선과 선이 둥글게 둥글게 손 맞잡고 돌고 있는 모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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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새가 되고 싶다. 가장 유약하지만 가장 강인한 존재. 너무도 쉽게 부서지지만, 온몸을 창공에 내던지는 존재. 무엇보다도, 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본 적이 있다는 점에서, 나는 새가 되고 싶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데, 알은 세계라는데, 그러니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데. 헷갈린다. 나는 수많은 세계를 깨뜨리며 살아온 건지, 아니면 깨뜨리지 않고 그저 조금씩 넓혀온 것 뿐일지. 나의 고통은 이 세계를 깨뜨리는 데서 오는 건지, 이 세계에 천천히 질식하는 데서 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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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글을 좋아한다. 길고 가쁜 호흡으로 촘촘히 엮는 글. 읽는 건 싫어하는데, 쓰는 건 좋아한다. 이런 글엔 나의 지난 시간, 품은 마음, 숨긴 기분까지 모두 숯검정처럼 묻어나온다. 복잡한 세상은 싫어하지만, 복잡한 글은 좋아하고, 그런 글을 읽는 건 싫어하지만, 쓰는 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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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이런 글 말고 카피도 참 좋아한다. 근데 있지, 카피는 쓰는 것보단 읽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심플한 세상살이를 꿈꾸지만, 그런 삶이 나의 것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몇 글자 혹은 몇 줄로 쓰인 카피 읽는 거 참 좋아하지만, 내가 쓰는 건 잘 모르겠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나는. 그냥 낯가리는 건줄 알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