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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Apr 19. 2023

뜨겁고 붉은 대지

현욱의 모습 #3

  마침 현욱은 얼마전부터 전시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는 작업실에서 나와 삼청로에 있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서교동의(지금은 연희동으로 이주한) 의식주는 아주 작은 주택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그가 지닌 스케일을 온전히 담지 못했다. 미술관에 들어서고 그의 작품이 걸린 4층공간은 그의 드넓은 풍경을 보여주기에 매우 충분한 공간이었다. 하나의 공간을 온전히 다 사용하면서 최근 작업한 작품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충분이 여유로운 공간에서 동선의 제약없이 설치된 그의 그림은 한편의 시리즈물처럼 각각의 시공간이 개연성을 유지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지닌 서사로 읽힌다. 그렇기에 한 작품, 한 장면에 담긴 이야기를 정독하며 나의 걸음을 조금씩 늦추기 시작했다. 



  세가지 층, 레이어, 멀리서도 보이는 표면의 질감은 포슬포슬한 한지의 결이다. 은은하게 깔려있는 표면에 바람과 공기, 혹은 어떤 흐름으로 보이는 모양, 자국들이 있다. 손으로 꼭꼭 눌러쓴 편지처럼 간결하지만 명료한 자연의 언어들이 경계를 만들어 다양한 시점으로 만들어진 풍경에 일렁이는 사건을 만들어낸다. 이 분위기를 즐기면서 시선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가다보면 최초의 시선을 발견한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 이야기가 처음 시작된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가 있다. 끝과 시작은 관객의 선택에 달려 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아니라 장막과 장막의 순서를 바꿀 수 있고 시작과 결말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이야기다.


현욱의 모습

  현욱은 화면 속에서 드넓은 공간을 소개하는 스토리텔러를 자처한다. 그와 함께 작업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속도는 여유롭고 어휘들은 잔잔하다. 그가 지닌 특유의 미소와 표정은 상대방을 안락하게한다. 현욱이 그려낸 화면 속 풍경처럼 변화에 관대하고 지금의 시간을 면밀히 관찰하게 한다. 


기록하는 사람 _ 박소호


현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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