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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Mar 04. 2019

포틀랜드에 도착한 지 하루만에 겪은 일

나는 어디, 여긴 누구?


- 우리 집엔 엄마가 직접 만든 와인이 있어. 그만큼 우리 엄마는 와인을 정말 좋아해.

- 오, 정말? 엄마가 그쪽 분야에서 일하시는 거야?

- 아니, 그냥 그녀의 취미야. 그런데 맛이 상당해.     


버스 안에 들어서자마자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한 여자가 ‘와인을 담는 커~다란 통’을 자랑하면서 뻗은 두 팔이 앞에 앉아 있던 나를 건들기까지 했다. 어머, 미안해! 손이 닿을 줄은 몰랐어. 이내 그녀는 다시 뒷좌석의 여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몇 정거장이 지났을까, 이야기를 듣던 다른 여자가 곧 내린다면서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황급히 통성명을 마친 ‘커~다란 와인통’의 그녀는 그제야 앞으로 돌아앉았다.

- 너네 뭘 그렇게 쓰고 있니?

- 아, 생애(?)요. 힘들거나 기쁜 순간을 쓰는 거예요. 숙제거든요.

이번엔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이 간 모양이다.                




이런 생경한 장면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버스 기사와 승객, 마트 점원과 손님, 같은 매대 앞에 나란히 선 사람들끼리도 시간과 장소와 관계없이 안부와 저녁 메뉴, 최근의 스트레스, 정치 등 상황이나 소재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 나 지금 뭘 얻었는지 아니? 완전 탱글한 만다린이야. 너도 아까 그 옆에서 엄청 고민하던 거 같던데. 그래서 널 기억해. 혹시 원하면 가져다줄까?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다 말고 부랴부랴 귤을 가져온 어떤 사람이 옆줄에 있던 다른 이에게 말을 건넸다. 순간 긴가민가했지만, 역시 친구나 이웃 사이는 아니었다. 사실 그렇다 해도 놀라운 일이다. 우리 동네에서 버스를 타거나 장을 보면서 반갑게 이야기 나눌 이웃이나 친구를 만날 확률을 따져보면 말이다.



좌측의 그들도 친구가 아니다.jpg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삼 년간 한국에서 본 개를 하루에 몰아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다란 개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급기야는 개가 없는 내 존재의 이유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토요일 아침엔 부부와 유모차 속 아기가 함께(?) 뛰는 모습도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유모차를 밀면서 달리고 있으니 아기도 뛰고 있는 셈이다. 동네방네 마라토너가 여럿이다. 누가 나이키의 도시가 아니랄까 말이다(이곳은 나이키가 탄생한 도시다). 빨강노랑파랑의 머리색, 세모네모동그라미 모양의 안경테, 저게 뭐지(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싶을 정도의 옷차림, 피어싱과 문신이 가득한 사람들을 보면서 알려진 대로 이곳이 진정 ‘힙스터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엄 안에서는 해설사와 관람객은 작품 하나를 앞에 두고 미국의 사실주의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펼치고 있다. 미국에 흔하다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프랜차이즈를 찾아보기가 어렵고, 가게 안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버튼(배지)에서 이 도시를 향한 사람들의 지독한 사랑과 특별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주택은 물론이고 교회나 성당 대문에서는 성조기 보다  무지개 깃발이 더 힘차게 펄렁인다.  


이들의 버튼 사랑은 정말 대단한듯. 그치만 저 작은 게 2~3달러다
아트뮤지엄_모든 젠터F, M 그리고 X)를 위한 화장실이 있다 /교회맞다_무지개깃발.jpg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여긴 미국 서부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Portland)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매일 버스 두 대를 채우는 수의 미국 사람들이 이곳 포틀랜드로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반려견을 키우기 좋은 도시(2013년), 채식주의자에게 우호적인 도시(2016년), 최고의 녹색 도시 1위(2013년)로 꼽힌 포틀랜드. 힙스터를 위한 도시(2013년) 순위로 샌프란시스코와 뉴올리언스에 이어 3위에 올랐고, 이상한 사람이 가장 많은 도시(2013년)로 1위인 뉴올리언스에 이어 2위에 랭크됐다(출처 Sparefoot/매거진 B). 2017년에는 미국 최초로 운전면허증에 여성(F), 남성(M) 그리고 성별을 규정할 수 없는 경우엔 세 번째 성별(X)을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신기한 건, IT 기업인 ‘인텔’을 중심으로 구글, 애플 등과 함께 함께 약 5,000개의 반도체 회사와 IT업체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IT와 힙스터라니.

내가 도착한 지 하루 만에 겪은 저 광경들은 이곳에선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이렇게만 들어보면 이 넓은 미국 땅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규모의 도시가 아닌가 싶지만, 이곳의 인구는 미국 내 26위, 약 64만 명이 살고 있다. 거머쥔 타이틀에 비하면 소박한 도시인 셈이다.      


포틀랜드 젊은이들의 고민은 집값, 그다음이 트럼프란다.jpg

사실 삼사 년 전, 매거진 <Kinfolk>로 포틀랜드라는 도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놓인 소박한 음식과 마주한 사람들이 담긴 사진과 페이지를 보며 흠모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Kinfolk 사진스타일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던 적이 있었다. 여하간 어딘가 물이 빠진 듯한 특유의 색감이 가득한 이 매거진의 고향이 바로 포틀랜드다(지금은 코펜하겐으로 본사를 옮겼다). 한편, 재밌는 사실은 Kinfolk를 연상하고 포틀랜드에 오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라는 것이다. 정작 이 매거진은 현지인 사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서점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그런데 어제 파웰 서점에서 찾긴 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애초에 킨포크가 지향하는 ‘친척처럼 가까운 친구들’과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삶의 방식을 ‘ooo 스타일’이라고 한정 짓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미국 내에서 마이크로 브루어리(소규모 양조장) 수가 가장 많다는 사실 또한 내게 ‘힙’한 도시로 다가왔다. 게다가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로컬 브랜드숍과 커피숍이 넘쳐나고, 환경을 위해 자전거를 타며, 정책 기관과 협력하는 다양한 지역 공동체가 넘쳐난다는 이곳 포틀랜드에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 여행은 차가 없으면 어렵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마저 예외다. 포틀랜드의 도심과 교외를 연결하는 이곳의 주요 수단인 Max Light Rail과 버스 시스템이 촘촘히 연결되어있다. 알고 보니 환경을 위해 차보다 대중교통을,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자는 취지로 정부와 시민이 손잡고 벌인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2012년까지 이 모든 게 공짜였다. 지금은 예산 문제로 중단됐지만, 패스를 끊으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장롱면허를 가진 나에게 이곳 포틀랜드에 와야 할 이유가 또 한 가지 생긴 셈이다.        

   

    

Buy Local!

2006년부터 시작된 이곳의 캠페인은 지역을 기반으로 경제를 성장시키자는 목표로 진행됐다. 따라서 가게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와 재료는 포틀랜드 산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지역경제 성장 외에도 이 캠페인은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먼 곳에서 오는 식자재나 원료를 운반하는 데 드는 자원과 비용 등을 고려한 것이다.

               


내 캐리어만 안 나왔어요ㅠㅜ

17시간이라는 시차를 합쳐 약 40여 시간 만에 도착한 포틀랜드.

시작부터 여섯 시간 연착에,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새에 일방적으로 취소된 트랜스퍼 스케줄,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밴쿠버 체류, 랜덤 스크리닝에 걸린 내 캐리어, 덕분에 미국 입국 수속하면서 공포의 세컨더리로 끌려(?) 간 사연과 그 와중에 포틀랜드로 가는 캐네디언 언니를 만나 여행 이야기로 수놓은 밤까지. 마치 '네가 어떤 딥빡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하는 신의 장난인 건지 여하간 오기로라도 이 곳을 즐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인천에서부터 겪은 이 지난한 과정을 잊은 걸 보면 어지간히도 이곳에 마음을 뺏겼나 싶다.      


약 열흘 동안 우리집이다_여행은살아보는거야.jpg


지금은 이곳 시간으로 새벽 네 시 반, 열일곱 시간의 벽을 넘기엔 무리인가 보다. 이틀 연속으로 눈이 떠진다. 오늘은 Third Wave coffee Tour가 계획된 날이다. 가뜩이나 시차 적응이 안 돼서 걱정인데,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아무렴 어떨까. 커피의 도시에 왔는데!







정말 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앞으로 포틀랜드 여행기를 나눌까 합니다. 여전히 굉장하고 특별한 것은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사실 언제부턴가 여행에 대해 기록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첫 여행 기념으로 간직한 버스표와 햄버거 영수증, 시시콜콜한 감정까지 한 자 한자 꾹 눌러 담은 다이어리가 새삼 그리워졌습니다. 결혼 이후로는 남편과 다녔지만, 이번엔 혼자입니다. 매 순간이 분에 넘치게 행복했지만, 한편으론 연중행사로 치르는 ‘소모적’인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느끼고 싶었지만, 저의 본래 스타일대로 세세한 ‘일정’을 짜지 않았습니다. 그저 숙소를 정하고 커피와 맥주 시음 투어, Farm to Table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이 다입니다. 그래서 다소 밋밋하지만 포틀랜드 투어의 일정이나 방법이 아닌 이곳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나 생각을 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잠시 지내는 이 집의 부엌에서 해보는 아주 소박한 요리 이야기도 계속됩니다.   


다음은 포틀랜드의 파머스마켓에 관한 글입니다

다음 글도 곧 올릴게요 >_<

https://brunch.co.kr/@organicsea/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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