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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Mar 07. 2019

토요일엔 파머스마켓으로!

괴짜들의 도시, 포틀랜드의 파머스마켓


포틀랜드 NorthWest 지역, 식당에 들어선 남녀는 사랑을 속삭인다. 점원이 다가온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미드 <포틀랜디아> 말도안되게 웃고 싶은 분들은 백 번 보세요.jpg


- 메뉴판에 있는 이 치킨은 어떤 건가요?

- 아, 이건 가슴 부위인데 지방이 적고 좋은 사료를 먹고 자라서 퍽퍽하지 않고 맛이 좋아요.

- 로컬인가요? 유기농 인증을 받은 건가요? 받았다면 오리건 안에서의 인증인가요, 아니면 미국 전역에서 받은 건가요? 이 닭은 생애(?)에 알을 몇 개나 낳았나요? 다른 닭과의 관계는요? 그가 행복한 생애를 보냈나요?


순식간에 밀려든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직원은 닭의 프로필이 담긴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온다. 페이퍼를 본 그들의 질문은 한층 더 깊어졌다. ‘콜린’이라는 이름의 닭이 자란 농장 환경, 다른 닭들과의 관계, 그의 행복 여부 등을 물었다. 급기야 그들은 식당에서 30마일 떨어진 농장에 직접 다녀와서 주문하겠다고 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포틀랜드 사람들의 삶을 다룬 풍자한 미국 드라마 <포틀랜디아>의 한 장면이다. 사뭇 진지한 그 커플의 얼굴이 가히 압권이다. 드라마이긴 하지만 ‘괴짜들의 도시’가 맞는 모양이다.




- 망고 페퍼? 이건 어디서 ‘정확히’ 난 거죠?

- 아, 좀 익숙하진 않죠. 이거는 노스트웨스트 지역(포틀랜드 내에 있는)에서 난 거고,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잘 알겠지만 여기 들어간 모든 재료가 다 그렇죠.

- 그럴 줄 알았어요! 이거 한 병 주세요. 정말 맛있어요. 독특하고!          


‘정확히’라는 말이 유독 크게 들렸다. 이들이 평소에 아무리 자주 쓰는 ‘exactly'라고 해도 의미가 아예 없는 건 아닐 터. 제법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포틀랜드 주립대학 앞에 모였다. 장터의 분위기와 다소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라이브 록 음악과 크고 작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장터는 시끌벅적했다.

대답도 쿨했고, 뭣보다 옷차림이 너무나 쿨해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슨생님ㅠㅜ

매주 토요일, 이곳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는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이 열린다. 1992년 13군데의 농가가 모여 시작된 이 마켓은 올해로 28년째, 지금은 무려 200개가 넘는 농가가 함께 하고 있다, 포틀랜드 주립대학 외에도 계절, 요일별로 총 6개의 장소에서 장터가 열린다.     

신선한 채소부터 꿀, 잼, 빵, 해산물과 고기류, 가공품, 꽃과 화분 등 마치 작은 마트 하나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 마냥 오히려 없는 것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종류가 다양했다.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는 미국답게 세계 각국의 요리가 있었고, 역시나 독특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느 중년의 여성이 판매하는 쿠키형 스콘(?)인지 스콘형 쿠키인지로 간단히 배를 채웠다. 버터 향 가득하고 꾸덕한 것이 역시 장소 상황 모든 것을 불문하고 스콘은 옳다!     


장터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금방 둘러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장터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니, Heather는 나를 위해 작은 의자를 내주었다.   

바쁜 시간 내주어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Heather님!

- 어머, 한국? 어쩌다 그 멀리서 오게 된 거야? 원래 여름엔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랑 음식이 있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볼거리가 적을지도 몰라. 아쉽다!

- 안 그래도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해보니까 빈 부스가 많더라고. 그래도 괜찮아! 충분히 만족스러워.     


내가 속물인 건지, 사실 나는 이런 일엔 늘 금전적인 부분이 제일 궁금하다. 그래서 첫 질문으로 마켓 운영을 위한 정부 차원의 보조금이나 어떤 지원을 받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다만, 2~3년에 한 번씩 정부로부터 장소를 제공받고, 그에 대한 약간의 대가(5%)를 환원한다고 했다. 정부와 장터가 열리는 장소(이를테면 포틀랜드 대학 등)와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팀을 운영한다. 이 파머스마켓 외에도 오리건 주엔 약 50여 개의 다양한 장터가 열리며, 이곳 파머스마켓에서는 6개의 장터만 관리한다고 했다. 파머스마켓 팀은 비영리단체(Nonprofit organization) 형태로 운영하며, 그녀는 자원봉사자(Volunteer)가 아닌 정식 직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그녀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셀러(seller)의 자격에 대해서도 물었다. 몇 가지 원칙에 충족하면 되지만, 다소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마켓에서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은 생산자가 직접 재배하거나 가공한 것이어야 하며, 가공품의 경우 최소 25%는 오리건 주에서 난 식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친환경 재배 방식으로 생산된 것이어야 하며, 식품 안전(Non-GMO, 동물복지, 첨가물, 과도하게 가공되거나 튀긴 것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셀러가 될 수 있으며, 반응이 좋은 것들은 일부 오리건 주 마트에도 종종 납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만큼 까다로운 이유는 이런 것들을 선호하는 소비자와 농가의 신념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원하니까 파는 거고, 파니까 원하는 거다. 그러면서 Hather는 우리가 먹는 것이 대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오게 되었는지 구매자나 농가가 당연히 가져야 할 태도라고 했다. 그리고 그건 매우 재미난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망고 페퍼를 ‘정확히’ 알고 싶은 소비자는 까다롭고 귀찮게 구는 것이 아니며, ‘정확히’ 대답하는 생산자는 마치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마냥 즐겁게 여기는 셈이다.  


- 지자체와의 협업 같은 건 전혀 없는 거야? 포틀랜드 정부는 이런 단체와의 협업을 엄청 잘한다고 들었어. 이를테면, 지자체 차원에서 공동체 커뮤니티를 지원한다거나, 시민들은 주요 법안이나 공공 정책 결정 절차에도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들었어.     

생산자에게는 판로를, 소비자에겐 건강한 식재료를, 그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이렇게 근 삼십 년을 이어오며, 포틀랜드의 명소가 되기까지는 분명 다른 비결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정부 지원에 집착을 버리지 못했

좌) EBT카드/ 가운데,우)이 단체 말고도 다양한 단체에서 파머스마켓을 연다

그러다 그녀 앞에 놓여있던 EBT(Electronic benefit transfer) Card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멤버십 카드 쯤으로 생각하고 이건 뭐냐고 물었다.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ETB카드는 이 파머스마켓과 또 다른 파머스마켓(여기 말고 다른 단체에서도 운영하는)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 카드로 10달러만큼의 허락된 식재료를 사면, 10달러를 다시 돌려주는데 이때 페이백은 정부가 제공한다고 했다.  


'먹을거리 평등'이라는 가치를 주요하게 생각하는 오리건 주(우 출처;오리건푸드뱅크 홈페이지)

이 부분은 추가로 자료를 찾아보았다.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의 먹을거리를 지원하는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이하 SNAP)을 운영하고 있고, 대상자는 EBT카드를 사용하면서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이 카드로 소득, 상황 등에 따라 일정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고 허락된 식품(기호 식품 등은 제외)을 이 카드로 살 수 있다. 이 외에도 오리건 주는 푸드뱅크 시스템을 통해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금전이나 식품을 지원받아서 저소득층에게 음식을 나누어준다. 푸드뱅크는 정부차원의 SNAP예산이 줄어드는 것에 반대하고, 오리건 주의 식품 복지 관련한 주요 정책에 목소리를 낸다. 지자체와 단체의 협업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혹시 곡물빵 부스는 오늘 안 왔나요? 지난주엔 분명히 봤는데, 오늘은 없네요!      

작은 부스에 단골 가게의 행방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나와 이야기하면서도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주시했다. 이 마켓 안에서는 언제든 도움을 주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빨리 일어나야겠     



장터를 빠져나오는 길에 No Pets이라는 푯말이 눈에 띄었다. 읭? 사람 반, 개 반 All Pets이었는데.

참.. 알다가도 모를 포틀랜드다.      

     

*오역이 있을 수 있고, 추가로 자료를 찾아본 것도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는 답글로 바로 잡아주시면 너무너무 좋아요!     





한국에서도 마르쉐@, 문호리마켓 등 이곳의 파머스마켓과 유사한 장터가 있습니다. 시스템도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더 많이 생겨나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포틀랜드에서 지낸 지 어느덧 5일이 지났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은 경유지 정도로 생각한다는 이곳 포틀랜드는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시입니다. 맛집 리스트가 빼곡한 다운타운엔 프로그램 참여 때문에 한 번 간 것 말고는 줄곧 집 근처에서 지냈습니다. 어제는 골동품 가게에서 무려 네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이래저래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참 미안하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도 이제 곧..      

여긴 참 평화롭습니다. 미세먼지가 없어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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