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사람들은 진짜 '별'날까

포틀랜드 소셜다이닝에서 나눈 매우 시시콜콜한 담론(2)

by 오가닉씨



화두는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당장 1초 뒤 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불과 30초 전까지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다음은 #기술 #발전 #자연을 거쳐 #관계 #공허로 이어졌다.


호스트 Dov(이하 D) : 작년에 스위스로 여행을 갔을 때였어. 어느 작은 마을의 들러 가만히 서서 우리는 아름다운 알프스의 대자연을 만끽했지. 그다음 뭘 했는 줄 알아? 우리 모두 짜기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휴대폰으로 다음 목적지를 검색했어. 세상에! 생각해보니 그곳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거야. 검색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해도 거기서까지 그러고 있을 줄은…. 그때를 곱씹어 볼수록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그때 휴대폰이 없었다면 고생 꽤 했을 거야.


호스트 Kathryn(이하 K) : 당시엔 나도 별생각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가령 포틀랜드도 통신 설비가 정말 잘 되어있는 편이잖아?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됐든 그 빠른 통신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려면 땅 밑이건 하늘 위이건 시설이 들어서야겠지. 그런데 그게 정말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리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땅의 기운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걱정되더라고. 게다가 이런 것들이 우리 삶과 몸, 정신 그리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어.

당연한 것들은 언제부터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 당연함은 편리함을 전제하는 것 같아. 기술이 발달한다는 건 양면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 기술은 인간에겐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자연에게는 무얼 줄 수 있을까?


머리털 나고 자란 이후부터 몇 가지 ‘당연한’ 것들이 존재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해져야'하는 것들은 늘어갔다. 외출 전에는 반드시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알아두어야 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은 빠르게 배송되길 바란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인터넷이 끊어지면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기 일쑤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 번 당연해야 마땅한 것들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 주변 사람에게 피로감을 주거나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내 인생 이십몇 년 동안은 ‘자연’이라는 걸 의식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생각을 달리한 몇 년 전부터는 '쟤 좀 까탈스럽다'는 누명 아닌 누명을 쓴 적도, 반복되는 결심과 포기를 통해 스스로 피로함과 자괴감을 느낀 적도 있다.


자세히 보면 다들 꽁꽁 싸매고 있는 것이 꽤 추워 보인다. 매우 추웠다.


게스트 커플 중 여자(이하 W): 생각해보니 그렇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만큼 자연이나 환경에게도 그 몫이 돌아갈까. 한편으론 그 수혜자가 우리라는 사실도 무시할 순 없어. 커뮤니티가 온라인화 되면서 오히려 사람들과의 교류가 쉽고 편해지고 또 어떤 면에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힘이 강해졌지.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시간, 공간, 주제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잖아? 오늘 우리도 온라인을 통해 만나게 된 거고. 하하.


게스트 커플 중 남자(이하 M) : 사람들과의 관계, 만남, 교류, 커뮤니티 정말 너무 좋지. 하지만 간혹 느껴지는 공허함은 뭘까?


D : 아마 그 온라인 커뮤니티 편리의 최대 수혜자가 우리일걸? 최근엔 에어***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확장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의 가치를 공유해왔어.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왔겠어? 특히 봄에는 프로그램 중의 일부로 머시룸 헌팅 Mushroom Hunting을 진행하는데 정말 많은 사람이 몰리거든?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돼.

테이블 위의 모든 식재료는 부부가 손수 키운 것들이다


W : 나도 포틀랜드 머시룸 헌팅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 굉장히 재밌다던데!?


K : 머시룸 헌팅이라는 게 사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만나서 한 끼를 같이 먹고 단지 버섯을 따는 것뿐이야. 물론 버섯의 모양을 관찰하고 맛보고, 트래킹 하는 것 자체는 정말 재미있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어떤 이들은 이걸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보고 너도나도 관광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몰리고 몰려서 더 다양한 서비스를 원하고 진행자 또한 자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하려고 해. 이게 최근 포틀랜드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해서 아쉬워. 그리고 소비만 되는 현실이 때론…. 뭐가 먼저인 건지 모르겠어.


식재료를 설명 중인 캐서린

음식을 통해 몸을 치유하고, 식재료가 어떻게 밥상에 오르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지역 안에서 해결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우려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비슷한 부분에서 본질은 흐리고 콘텐츠로 소비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휴대폰 하나로 거의 모든 정보를 비교할 수 있는 세상에서의 ‘자극’이란 마치 불쏘시개와 같다.


D : 왜 사람들은 점점 자극적인 걸 찾을까? 혹시 일상을 유지할 힘을 찾는 건가? 이전보다 교류의 기회가 줄어든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아. 그런 면에서 요새 짓는 집들을 보면 참 희한해. 옆집이랑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공유 공간은 없고 개별적인 공간만 있잖아. 사람들은 자기 집 안에만 있게 되고 담장은 높아지고. 그럼 대체 우리 지역은 어떤 경로로, 어떤 방법으로 서로를 돌볼 수 있지?


애써 씁쓸함을 감추고 와인 한 모금을 넘기려는 순간, 아뿔싸! 공은 다시 #공간으로 튀어갔다.

없는 게 없는 소스 컬렉션. 김치와 낫토가 눈에 띈다. 심지어 백김치도 있다.(네가 거기서 왜나와..)

나 : 그래도 포틀랜드는 인구 밀도가 높지 않잖아. 상대적으로 땅이 좁은 우리나라 도시의 인구 밀도는 꽤 높은 편이라 아파트먼트 형태의 주거 시설이 많아. 최근에 지은 아파트는 커뮤니티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긴 하지만 사실 이웃사촌이라는 유대감은 어릴 때 말고는 느껴보질 못한 것 같아. 그런데 아파트가 살기에는 편리하고 사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이만한 주거 형태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M : 이웃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덜한 건 여기도 마찬가지야. 대도시에 높게 솟은 건물들 보면 어휴.. 그리고 제일 답답한 건 우리 지역의 주요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거야. 예전에는 만나서 담판을 짓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그래, 편리하지. 하지만 직접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이 다른 부분은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온라인으로 완벽한 결론을 내는 데엔 한계가 있잖아.


1970년대 초 미국 전역은 급격한 도시 개발로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포틀랜드는 어지러운 도시를 재정비하고자 마련된 테이블에 정치인, 행정가 그리고 시민이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지역의 주요 사안이 공론화되고 결정을 위한 최종 논의까지 시민보다 행정가와 정치인의 목소리가 큰 현실과는 사뭇 다른 출발을 한 셈이다. 게다가 주州 단위의 계획 중 첫 번째 목표로 '시민 참여'를 내세운 도시이기도 하다. 시민과 행정가, 정치인의 정책적 연대는 도시계획의 기반을 만들고 지역 커뮤니티 의식을 높이는 데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자료참조_제주창조경제 혁신센터 지역혁신 아카이브). 하지만 집단주의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미국 내 모든 행정이 포틀랜드와 같진 않을 것이다.


맨 아래는 배를 식초여 절여 말린 것인데 통째로 한입에 넣는 나를 보고 모두가 놀라워했다. 새콤달콤하니 참 맛있었는데.

W : 그래도 어쩌면 지금으로썬 온라인 커뮤니티가 최선의 대안일 지도 몰라. 그나마 온라인 커뮤니티로 대화를 이어가기라도 하니까. 세상은 바뀌어가잖아. 게다가 미국은 워낙 땅덩이가 넓으니까 우리 주州 말고 다른 곳도 궁금하잖아? 다른 주州 사람들의 생각을 보는 것도 좋아.

아, 그리고 나는 온라인으로 물물 교환하는 재미가 쏠쏠해. 온라인 소통이 활발하니까 필요한 것을 꼭 사지 않아도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거든. 참 좋지 않아?


: 맞아! 나도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안 쓰는 냄비를 주고, 답례로 소금을 받은 경험이 있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마다 본인의 물물교환 사례(?)를 읊기 시작했다.

D : 자자, 이제 마무리로 아주 향긋한 머시룸티를 마셔볼까. 너희들 오기 전부터 지금 몇 시간 째 끓고 있는지 몰라. 덕분에 향과 맛이 정말 깊어졌어. 정기적으로 이 머시룸티를 마시면 소화기가 튼튼해지고 항암 효과가 있어. 그리고 몸이 따뜻해지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을 거야.

이게 또 뭐라고 그렇게 맛있냐
호스트 Kathryn과 Dov 부부. 맛있는 음식 고마웠습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에 그제야 발가락의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노루궁뎅이버섯으로 보이는 것과 함께 다양한 모양의 버섯을 넣은 물이 진하게 끓고 있었다. 은은한 버섯 향이 정말 예술이었다. 음식으로 치유하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부부라 그런지 식재료마다 효능과 생산 과정을 설명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Kathryn과 Dov 부부는 의학과 의료 시스템만 의존하지 않고, 음식으로 몸과 정신을 치유하고 이를 지역 전체의 과제로 공론화하기 위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직접 농장을 운영하면서 쿠킹클래스, 식재료 탐방 워크숍, 팝업 키친, 공연 등을 열고 단체나 개인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가 참여한 Farm to Table이라는 주제의 소셜다이닝도 이 중 하나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역 농부와 지역 사회에 촘촘히 포진된 먹을거리 시스템에 관련된 사람 모두가 두터운 신뢰로 서로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역의 요리사, 농부, 의사, 영양사와의 다양한 형태의 협업도 진행한다.

최근엔 지역 전체가 빈부 격차로부터 불거진 먹을거리 차별과 노숙자의 건강을 어떻게 케어할지 논의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포틀랜드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었다. 주저 없이 ‘강한 공동체 의식’이라고 대답한 부부는 포틀랜드가 이전에 비해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작은 마을의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이게 숲이여 공원이여. Laurelhurst Park, Portland, Oregon, US


두 시간을 넘게 떠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번갈아 가며 포옹했다. 다시 데려다줄까 하는 캐서린의 말에 나는 여기 공원을 더 돌아보고 가겠노라고 했다. 시간은 이제 겨우 낮 어떡해 벌써~ 열두 시.

찬찬히 공원을 걷는데 마음에 무언가 그득그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떠오르는 여러 생각에 마음은 분주했다. 그래, 이런 유별남. 나도 다시 까탈스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 갈까 했지만 기가 빠져버린 느낌이라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책 한 권을 들고 다시 나와서 집 근처 컵케이크 가게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싹싹 비우고 간 케이크 접시.jpg


따뜻한 햇살이 들었다. 그제야 꽁꽁 언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노곤 노곤해졌다. 멀리서 느적느적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카페에 들어섰다. 이내 내 옆 자리에 앉은 그가 말을 걸어왔다.


그 케이크 맛있니?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그와 그렇게 삼십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나 보다. 엎드려 잠깐 잠이 들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날은 어둑어둑. 편하게 잠든 무탈한 나의 처지가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 개월 전의 여행기를 다시 써보려고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깨알 같은 기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미 다 끝나버린 줄 알았는데 글을 쓰면서 사진을 보고 있으니 다시 포틀랜드를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왜인지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합리화했습니다

사실 보고 느끼고 온 이야기가 아직 남아서 벌써 지치면 안 되거든요. 하하.


입추가 지났지만 날은 여전히 덥습니다. 새콤달콤 제철 과일과 푸성귀를 먹을 날도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기도 합니다. 부디 이 여름 끝자락의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즐기시길!


느릿느릿, 천천히 포틀랜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못다 한 여름 밥상 이야기도 곧 이어집니다.

이 글을 읽는 분 모두 보송보송한 밤 보내시길 바라요.




전편과 이어집니다.

포틀랜드 소셜다이닝에서 나눈 시시콜콜 담론(1)


포틀랜드 여행기를 담은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