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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Jun 30. 2019

포틀랜드 힙스터들은 진짜 '힙'할까

포틀랜드 소셜다이닝에서 나눈 매우 시시콜콜한 담론(1)

호스트 Dov(이하 D) : 가끔 잘 모르겠어. 오가닉 푸드 Organic Food가 비싼 것 말이야. 우리는 거기서부터 가난과 부유를 경험하잖아. 먹을거리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 거기서부터 겪는 불평등은 너무 하지 않아?     


게스트 커플 중 여자(이하 W) : 응, 맞아. 유기농이 일반 먹을거리보다 비싸지. 그래서 사실 우리도 가끔은 옆에 있는 싼 가격의 봉지를 집기도 해.      


D : 사실 그런 면에서 어쩔 때는 우리 부부가 고집하는 유기농업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린 분명 자연에도 좋고, 내 몸에도 좋은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려고 유기 농사를 짓는 건데, 여기서 오는 불평등이라. 너무 아이러니하지.     


 인류애에 대한 고민은 지구 어디든 다 똑같구나 싶었다. 사람에게, 자연에게 좋자고 어렵게 일군다는 ‘유기농’ 먹을거리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면 좋으련만, 여유 있는 사람들의 먹을거리라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도 ‘유기농 마케팅’이 꽤 유효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국내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이미 유기농 산업에 뛰어든 지 오래고, 마트에 가면 자연스럽게 유기농 코너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빈부 격차가 심하다는 미국이나 유럽은 이 마트에도 ‘급’이 있는지라, 자주 가는 마트나 선호하는 브랜드를 통해 빈부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아차 가만가만, 여기 지금 포틀랜드 맞아? 뭐지, 이 낯설지 않은 대화.

다시, 여기는 포틀랜드의 Laurelhurst Park. 지금 시간은 오전 아홉 시를 막 지났고, ‘이 푸른 초원 우’에 간신히 서 있는 내 발꾸락 끝이 시리다 못해 아려온다.       

              



호스트 Kathryn(이하 K) : 아멜리아 맞아요? 제가 아까 통화한 Kathryn이에요!      

 : 네, 접니다. 늦어서 너무 미안해요. 이 공원까지는 왔는데, 정작 만날 스폿을 찾는 게 영 쉽지 않네요.

K : 대중교통으로는 찾아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괜찮으니까 어서 가요!       

   

공원 주위를 빙빙 돌던 나를 위해 호스트인 Kathryn이 결국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왔다. 차에 올라타던 순간, 코끝에 갑자기 익숙한 냄새가 스쳤다. 흙과 땀과 사람 냄새가 한데 뒤섞인, 그러니까 약 5년 전 생산자를 만나 숱하게 타던 그 트럭에서 맡은 냄새와 같았다. 정말이지 이 냄새를 아주 오랜만에, 게다가 지구 반대편인 이곳에서 조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분은 이 냄새를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여하튼 나에겐 향수를 부르는 냄새랄까. 그때였나. 삼일 동안 포틀랜드에 있으면서 경직돼 있던 마음이 이 정겨운 냄새로 녹아내리는 듯한 순간이. 두근두근. 내 심장에게 제발 나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Kathryn과 Dov 부부가 운영하는 소셜다이닝 [Farm to Table]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두 눈은 Kathryn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랐다. 엥? 좀 생뚱맞다 싶을 정도로 초원 위에 어색하게 놓인 테이블과 얼핏 세 사람이 보였다. 분명 홈페이지에서 본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기대와는 다른 모습에(사실은 열악한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와 Kathryn을 발견한 초원 위 일행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커피와 맥주를 사랑하고 어쩌고 하면 상대는 신기해했고, 매우 환영한다고도 했다(이 뻔한 레퍼토리는 전 편 참조). 이 자리엔 오늘 프로그램의 호스트 부부인 Kathryn과 Dov 부부, 그리고 포틀랜드에 거주하는 커플이 함께 했다. 오늘은 포틀랜드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무려 두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빡빡한 대화를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외국어인지라 대화에 더 집중해야 했고, 무엇보다 이때만큼은 내가 한국의 생각을 대변하는 유일한 자, 즉 국가대표와 다름없던 터라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한 마디로 ‘기가 다 빨린’ 시간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이날 나눈 대화는 쉽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해 높임말이 없는 반말로 기록하기로 한다.


열심히 요리(?) 중인 Kathryn. 그녀가 말할 때마다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D : 그리고 먹을거리에 이어 또 하나의 최악은 건강 케어 불평등이야. 아플 때에는 누구 하나 차별 없이 케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최근 미국의 메티컬 케어 시스템은…. 아, 이젠 정말 말도 하기 싫다.   

   

다소 흥분한 말투였다.     


응! 완전!


나를 제외한 일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유일하게 국적이 다른 나는 순간 괜한 자부심에 만취했다. 아무래도 내가 오기 전의 토픽은 ‘불평등’이었나 보다.           


이 채소는 비료하나 없이 그들이 직접 기른 것이라고 했다

새로 온 나를 의식했는지, 부부의 다른 호스트 Dov가 테이블 위에 있는 모든 것은 ‘네 것’이라며, 자르고 맛보고 여하간 맘껏 이용하라고 했다. 당초 기대했던 대접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형형색색의 식재료가 테이블 위에 예쁘게 늘어져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것부터 다소 생소한 모양의 채소, 그리고 제각각 병에 담긴 소스 등 그래도 한 번쯤은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은 부부가 직접 키우고 손수 만든 것이라고 했다.     


 : 혹시 너희 부부는 vegan(완전 채식주의자)이야? 테이블 위에는 육류가 하나 없네. 모든 식재료가 정말 건강해 보여.     

K : 음, 엄밀히 vegan은 아냐. 하지만 우리는 직접 키운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거든. 우리가 주로 키우는 건 채소나 과일, 그리고 마당엔 닭이 있어. 소나 돼지를 키울 여건은 되지 않아. 그렇다 보니 육류를 먹을 일이 거의 없어. 간간히 닭이 낳는 알을 먹긴 하지만, 그것도 아주 가끔이라. 이걸 과연 vegan이나 veganism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슨 주의 같은 건 좀 그렇고 그냥 우리에겐 이게 자연스러워.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페이스트부터 후무스까지, 모두 부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세히 보면 글씨를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보인다. 정말 허투루 쓰는 게 없구만.

사실 나도 약 2년 간 채식을 한 적이 있었다. 구제역으로 생매장당하는 돼지의 절규를 담은 영상을 본 것이 계기였다. 영상을 본 그 순간 이후로 갑작스럽게, 다소 극단적으로 채식을 선언한 것이다. 분명 몸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었지만,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 지금은 그냥 육류를 최소화해서 먹는 Flexitarian(플렉시테리언)으로 지내고 있다. 어느 하나를 특정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경험이 있어 그런지 그녀의 말이 더욱더 와 닿았다.     


게스트 커플 중 남자(이하 M) : 이런 오가닉 푸드를 먹으면 확실히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아.


조용히 지켜보던 커플 중 남자가 말했다.     


D : 맞아. 전혀 아니라곤 할 수 없지.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건강을 위해 오가닉 푸드를 찾지만, 사실 우리는 그 반대야. 땅에서 자라고 나는 건강한 식재료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 건강한 식재료를 먹으니까 내 몸이 건강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 같은 거고. 이게 같은 것 같은데, 인과가 전혀 달라.

오로지 자신 혹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만 오가닉 푸드를 찾는다면 머지않아 흙 하나 없는 식물공장에서 난 것도 ‘유기 농산물’이라고 할 날이 올 거야. 과연 그것이 진짜 유기 농산물일까? 물론 결과로만 보면 비료나 농약을 넣지 않아서 유기농산물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걸 유기농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유기농이라는 타이틀에만 의존해서 속고 속이는 일도 비일비재할 거고. 그걸 쥐고 있는 기업의 횡포, 에이! 너무 갔다.



직접 만든 소스도 있었고, 구입한 것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김치도 있었다.

 : 사실 이미 한국에서는 ‘스마트팜’에 대한 투자도 꽤 있고, 최근엔 관련 업체도 늘고 있다고 들었어. 흙이 아닌 물에서만 채소를 키우고, 리모컨으로 온도를 조절하고 비를 뿌리기도 하는 그런 거.      

W : 어머, 스마트팜. 그야말로 정말 weird 한데? 마치 자연으로 리모컨을 조절하는 거랑 같잖아? 한국은 정말 기술이 발달한 나라구나! 그럼 유기농업을 하는 곳은 많아?


여자가 놀란 눈으로 물어왔다.     


 : 응. 꽤 있지! 유기농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고, 대기업도 하나둘 ‘프리미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자체 유기농 브랜드를 만든 지 꽤 오래야. 나는 사실 직업 때문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생산자를 가까이 만나 뵐 일이 있는데, 가끔은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짓인가 싶기도 해. 작년 여름 한국은 폭염 때문에 정말 헬이었거든. 정말이지 폭염 때문에 엄청 고생하시는 걸 보고 도시의 소비자는 과연 이 맘을 알까 싶었지.

참, 너희 부부도 유기 농사짓는 거 힘들지 않아?      


D : 어휴, 말도 마. 솔직히 정말 힘들어. 그런데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 작년엔가 아이들이랑 모종이 크는 과정을 더 자세히 보려고 작은 화분에 토마토 모종을 심었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밭에 심고. 분명 같은 씨앗인데 맛이 미세하게 다르더라고?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맛의 깊이랄까. 그리고 또 심은 땅이나 시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 너무 신기하잖아. 그래서 힘들다 해도 여적 포기를 못하고 있지.      


이 빵 정체가 뭐죠?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맛있어요? 기분 탓인가요?
Dov가 콜리플라워 이파리(?) 같은 것을 볶기 시작했다. 근데 저건 또 왜 맛있죠?

 : 혹시 너희들 GMO(유전자 조작 물체, 여기서는 유전자 먹을거리라는 의미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사실 포틀랜드에 오기 직전, 미국산 GM 감자 수입 승인 건으로 우리나라 식품 업계가 떠들썩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혹시 이런 기회가 생기면 꼭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벼르고 벼르었다.


D : GMO?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어. 우리 부부는 농사를 짓긴 하지만, 워낙 소규모라 우리가 직접 채종까지 하니까. 그런데 그게 대규모 농사를 짓는 곳에선 난리인 것 같더라. 왜? 한국은 어떻길래?    

 : 우리는 공식적으로 GM작물 재배를 금지하는 국가야. 물론 콩이나 면화, 토마토 등 수입되는 원재료로 만드는 가공식품을 통해 GMO에 노출되어 있긴 해. 그런데 GM작물 원료 그대로를 수입하진 않아. 그런데 얼마 전에 GM작물이 수입될 뻔했던 아찔한 적이 있었지 뭐야. GMO에 대한 찬반 의견은 차치하고서라도, 최소 안전성이나 완전 표기만큼은 보장해야 할 것이 아냐. 그런 절차나 약속 하나 없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M : 한국이 수입을 승인하기로 한 거야?     

 : 음, 국가 기관(식품의약처)에서는 그러려고 한 모양인데, 시민들의 반대로 승인이 계속 미뤄지고 있어(3월 당시, 6월 현재는 수입 ‘보류’ 상태). 그런데 뭘 수입하려고 했는 줄 알아? 바로 미국에서 개발한 GM 감자였어. 내가 알기론 정작 미국에서도 먹을 수 없다면서 반대한 건데, 그게 한국으로….   


GMO 수출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모른다고?!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지만, 이들과 감정적으로 대치할 필요가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K : Oh, my gosh! 그건 내가 사과할게! 도무지 요새 미국은 뭐. 하하하하하.


일동 나만 어색하게 웃었다.     


버섯파티 볶음. 이거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한국에서 맛을 재연해보려고 했지만, 실패.

D : 아, 이거 한 번 먹어봐! 이게 그 유명한 Mushroom Hunting 머시룸헌팅에서 따 온 그 머시룸(정확한 버섯명은 놓쳤습니다)인데, 여기다가 카옌페퍼를 살짝 넣고, 소금과 후추.

(현란한 스냅으로 팬을 돌리며) 이렇게 강한 열을 골고루 휙-해서 짠! 완성!     


조리하랴,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답하랴, 거기에 돌아다니는 반려견을 돌보기까지. 가장 정신없어 보였던 Dov가 순식간에 먹음직스러운 버섯볶음을 완성했다. 한 입 베어 무니 버섯버섯한 향과 기분 좋게 매콤한 카옌페퍼 향이 어우러져 입안에 가득 퍼졌다.

      

 : 아하하하, 그 머시룸 헌팅? 와, 정말 그거 대단하다고 들었어. 혹시 너희도 머시룸 헌팅해?     

K : 오! 너도 그걸 알아? 하하하하.        






  


   이 글은 제가 포틀랜드로 떠나기 전 제일 먼저 계획하고, 가장 기대했던 <Farm to Table>이라는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에서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포틀랜드에 다녀온 지 벌써 삼 개월. 사실 띄엄띄엄 글을 써 두고는 정작 ‘발행’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기록하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더 완성도 있게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거든요.    


이건 어디까지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이므로 간혹 사실과는 다르거나, 세 달이 지난 당시 상황과는 달라진 사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당시의 대화를 그대로 싣고 싶었습니다. 여하간 이런 글이라면 응당 팩트 체크, 거기에 크로스 체크까지 해야 하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렇다고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혹시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면 피드백 주셔도 좋습니다!      

2편은 먹을거리 대신 더 다양한 주제로 나눈 대화를 싣습니다. 먹을거리 말고도 제가 궁금해하던 포틀랜드의 지역 커뮤니티와 그들의 생활 철학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요새(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포틀랜드 농가에서 꽤 핫한 '머시룸 헌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두 시간 반이 짧아서 당일 묻지 못한 못 궁금한 점은 이메일을 보내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풀어볼게요.



딱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사실은 '맥글(맥주 마시며 글쓰기)'는 정말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참... 아직 제 이야기보따리는 이제 고작 반 밖에 풀지 못했네요. 그 사이 숲은 더 울창해지고, 옷은 얇아졌습니다. 드디어 ‘옥수수가 맛있는 계절’이 왔다는 자연의 사인이죠. 그리고 지금 나는 햇양파는 더 단단하고, 단맛이 강하대요. 올해는 유독 수확량에 비해 소비량이 적다죠. 양파로도 충분히 몸보신 가능하다고 하니 부디 많이 드시고, 서늘한 여름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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