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가닉씨 Nov 07. 2019

시작이 밤이다

비록 그 끝이 야밤이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보늬밤조림

 

“이거 얼른 넣어둬. 반가우니까 주는 거야!”

“아이, 정말.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요! 참.”

 양평 생산자님들을 뵌 지도 벌써 7년 째다. 해마다 ‘가을을 걷는’ 이쯤이 되어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묻는 것조차 잊고 막걸리부터 기울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업무가 바뀌어서 그때처럼 수시로 뵐 일은 없지만, 마치 어제 만난 사이같이 살갑다. 이날도 기껏 버섯 한 봉지를 사는데 그 옆에 있던 잎채소며 고구마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시던 탓에 어깨에 멘 가방이 무거울 정도였다. 특히 이날은 햇밤 몇 개를 더 얹으시려는 걸 거절하느라 고생깨나 했다. 매번 송구할 따름이다.

 얼결에 손에 들린 봉지 안의 밤을 보니 ‘밤조림’이 떠올랐다. 사실 언젠가 이런 결심이 설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그것도 당장 오늘 저녁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괜스레 밤이 담긴 봉지를 덜렁덜렁 흔들어 보았다. 묵직하게 흔들리는 크고 작은 밤을 조몰락거렸다.

에이, 이깟 게 뭐라고 결심까지 필요해? 어차피 그냥 쪄먹는 것도 일인 마당에!     




 ‘와, 대체 저걸 언제 하고 앉았냐. 정성이다 정말.’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등장하는 밤조림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딱딱하고 반질한 껍질을 벗고 말랑해진 밤이 유리병에 들어가기까지 아무리 편집이라는 눈속임이 있어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본 것이다. 그래도 햇밤이 나오는 이 즈음에는 밤조림에 대한 호기심이 물밀듯 몰려든다. 시중의 기성품과 같은 맛일까, 럼을 넣는데 무슨 향이 나려나, 껍질째 절이는데 입안에서 거끌거리진 않을까 하는 등 하여간 밤 한 알을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게다가 한국판이나 일본판 모두 달달한 것이 당길 때 밤조림 두어 알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얼마나 달고 맛있길래 고작 밤 두어 알 가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쨌든 나는 올해 ‘번잡스럽지만 언젠가는 만들어보고 싶고 또 막상은 주저하게 되는 밤조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거 뭐 얼마나 대단한 요리라고 올해네 내년이네 마음을 먹네마네 하나 싶겠지만, 직접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대체 왜 이런 굳건한 결심까지 필요한 일인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 시작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참 쉽다. 밤알과 껍질이 쉽게 떨어지도록 하룻저녁 물에 담가 두는 것이 그 헬게이트의시작이다. 요리법을 찾아보면 밤조림이 완성되기까지는 하루하고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이거 하나 만들자고 출근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삼 일이 걸렸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 밤이 퉁퉁 불어서 칼질 한 번으로 껍질이 톡 하고 떨어질 것으로 기대한 내가 바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밤조림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던지고 싶어 던지고 싶었...

 밤을 까는 과정은 매우 고됐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밤 껍데기를 까고 앉아있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살이 보이는 깐 밤과 맛밤이 위대해 보였다. 그러다 별안간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밤 껍질까는 기계’를 검색하던 나를 발견했다. 여하간 싹 다 갖다 버릴까 하는 마음도 밤 껍질과 함께 겨우 도려내 마침내 거칠한 속껍질이 보이는 과정까지 왔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아직이다.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베이킹소다를 넣고 또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이때부터였나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 것이. 퇴근길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 밤을 끓이고 또 끓여서 절이기까지의 남은 과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정체된 상황을 극복하려면 어떻게든 새로운 시작이 필요했고 일을 무턱대고 벌인 것이 죄라면 죄였다. 일요일마다 제빵 아카데미를 다닌 것도 벌써 삼 개월이 지났다. 얼마 전부터는 전문가 과정이 시작되어 직접 효모종을 키우는 터라 하루에 꼬박 두 번씩 종이 더 튼튼해지도록 밥(밀가루)을 주고 있다. 게다가 지난여름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이 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마감도 힘겹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와중에 그냥 쪄 먹고나 말 것이지 대체 왜 이렇게 감당하지도 못할 시작을 했는지 싶었다. 완성된 밤조림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 기대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비록 번거롭지만 일단 완성된 밤조림을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밤조림 선배(?)들의 후기조차 원망스러웠다. 급기야는 이 밤을 준 생산자님께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이 좋은 가을에 대체 밤은 왜 나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베이킹소다에 재워둔 밤

 다시 다음 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무렇게 벗어둔 재킷과 가방을 정리하고 도시락을 겨우 싸고 나서야 나는 다시 이 밤들과 마주했다. 이대로 냄비에 직행하면 좋겠지만, 섬유질과 잔털을 제거하는 작업이 남아 있었다. 한 알 한 알 섬세히 다듬다간 밤조림이고 뭐고 다 버리고 싶은 충동이 또다시 일어날까 봐 나는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적당히 긁어냈다.

그리고 드디어 냄비에 넣고 끓이는 차례가 왔다. 서너 번을. 다음은 밤을 끓이고 붓고 다시 끓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겪은 번뇌의 기록이다.

 

첫 번째 끓이기. 아직 와인을 넣지도 않았는데 마치 한 병 전부를 들이부은 것처럼 냄비 안이 든 물의 색이 붉고 진했다.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약 삼십 분을 끓인다. 중간중간 떠오르는 거품을 거둬야 해서 다른 짓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과연 진짜일까? 한참을 달려와도(그것도 무려 이틀이나) 이렇게 끝이 안 보이는데!

두 번째 끓이기. 밤을 익히는 것도 익히는 것이지만 이들을 반복적으로 끓이는 목적은 붉게 물든 밤 국물이 옅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떠오르는 거품을 계속 걷었다. 또다시 딴짓을 해볼까 싶었지만 내 신경은 온통 이 냄비 속에 든 밤뿐이라.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싫었다.

세 번째 끓이기. 사실 원고를 쓰던 중이었다. 어쩌자고 이 바쁜 통에 이 짓을 시작한 걸까. 순간, 원망하는 이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더 싫은 건 시작 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이 애매하게 헐벗은 밤들이었다. 뭐든 시작은 기똥찼다. 없는 동기도 만들어 일을 벌이는 나였다. 이렇게 시작은 요란할 정도로 창대한 것에 비해 그 끝은 심히 미약했다. 나는 왜 항상 이런 식일까. 그 사이 냄비 안에 든 물의 색이 약간 옅어지고 있었다. 그래, 시작을 했으면 끝은 봐야지.

그리고 드디어 네 번째 끓이기. 이 짓도 세 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지 얼추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비로소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문장 네다섯 줄을 쓰고 나면 거품이 올라왔다. 밤이 슬쩍 비치는 것이 국물이 옅어진 것도 같다. 거품을 걷어내고 다시 글을 쓰기를 반복, 이제 진짜 끝이 보였다.     

 

다른 그림찾기.jpg

 이렇게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 과정이 더 남았다. 그래도 이때부터는 고지가 눈앞인 것 같아서인지 갖다 버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 이 순간을 다 예상하고 감당 못할 일을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고 갑자기 스스로 대견해했다. 겨우 나아진 것 같던 내 맘은 냄비 안에 든 물을 버리고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또다시 내면의 갈등을 겪었다. 밤조림과 마찬가지로 벌여놓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대체 무얼 하자고, 무얼 얻자고 이렇게 달려들었을까.

 그 사이 밤조림은 마지막 과정을 앞두고 있었다. 설탕은 넣고 졸일 차례다. 늘 그렇듯 건강 상의 이유로 마지막 한 스푼을 두고 고민하는 척했지만, 고장 두어 알로 기분전환이 될 정도면 꽤 달아야 할 거다. 게다가 오래 두고 먹으려면 넉넉한 양의 설탕이 필요했다. 마지막 한 스푼까지 알뜰히 냄비에 털어 넣고 다시 가스불을 켰다. 이십 분이 지났을 즈음, 맑은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밤알을 따라 끈적하고 투명한 거품이 보글보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제법 걸쭉해진 것이 아마 십 분 후면 약 삼 일간의 대장정이 끝날 것 같았다.

 과연 완성된 이 밤조림은 영화 속 주인공이 감탄한 것처럼 정말 맛있을까? 맛이야 어떻든 형체가 달라진 밤은 이미 그 시작으로부터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그러니까 성과든 똥이든 무언가는 되어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드디어 설탕을 넣고 졸이면 끝이다. 과연?!

 이제 진짜 마지막 과정이 남았다. 풍미를 위한 과정으로 영화에서는 럼을 넣었지만, 나는 워낙 갑자기 시작한 탓에 준비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중도에 포기할 것을 의식해서 준비하지 않았다는 편이 정확하다. 급한 대로 마시다 남은 와인을 꺼내 한 바퀴 휘이 둘렀다. 그리고 가스불을 껐다. 이내 보글보글 끓던 냄비 속이 잠잠해졌고 알코올 향도 날아갔다. 이제 유리병에 넣으면 모시면 끝이다.


이제 정말 끝이라고 해줘... 참 징글징글한 서타일.jpg

 하아. 정말 이렇게 끝이면 참 좋으련만, 제일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밤조림은 한두어 달 간 두고 숙성을 시켜야 맛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눈앞에 이것들이 징글징글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간의 노력이 가상하여 일단 한 알만 먹어보기로 했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밤알을 후후 불어 식히고 입에 넣었다. 아직은 마냥 달기만 하고 밤과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와인향은 겉돌았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신 눈에 띄지 말라고 냉장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두 시 반. 죽네 사네 하면서 글을 마저 쓰고 이번에도 가까스로 원고를 넘겼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후부터 막상 벌이긴 했지만 그게 의지만큼 되지 않아 좌절의 순간을 겪는 중이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만 초조해질 뿐 진전이 더딘 것 같아 갑갑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마치 '단단한 껍질을 까고 하룻저녁 불려둔 밤'과 같아서 시작 전으로 되돌릴 수 조차 없었다. 게다가 오도가도 못했다. 하지만 이 지독한 밤조림의 삼 일을 겪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밤조림과 마찬가지로 지난한 과정을 숙성을 앞두는 중이 아닐까 싶었다. 두 달 뒤 그 맛을 보면 확신이 설까, 진짜 마지막 과정은 숙성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결국 속는 셈치고 뜻대로 써지지 않는 문장도, 저만치 앞서기만 한 욕심도 언젠가 숙성된 끝을 볼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두어 달 뒤에 만날 맛있는 밤조림을 기다리는 설렘과 함께 말이다.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시작이 밤이다
포기하지 마세요
보늬밤조림

 밤조림을 찾다가 연관 검색어에 ‘보늬밤조림’이 있어서 이 ‘보늬’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속껍질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보늬밤조림은 '속껍질을 살린 밤조림’인 셈입니다. 이름도 어감도 너무 예뻐서 입 밖으로 되뇌어보았습니다. 보늬. 어감만큼 과정도 예뻐야 할 텐데 사실 제게는 매우 고된 요리였습니다.


밤조림에 빠질 수 없는 햇밤을 준비합니다. 밤은 그대로 물에 24시간 동안 담가 둡니다. 시작은 정말 쉽습니다. 아, 그리고 넉넉한 시간과 인내도 함께 준비합니다.

밤의 겉껍질을 벗겨냅니다. 이 과정에서 속껍질은 최대한 건들지 않아야 합니다. 속살이 보이면 밤을 삶을 때 터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실 이 과정을 잘못해서 듬성듬성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다 깐 밤은 물과 베이킹소다를 넣어 다시 하루를 둡니다(반나절도 무방).

이대로 물에 직행하면 좋겠지만, 속껍질의 굵은 섬유질과 까끌한 잔털을 제거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분들은 주름 하나하나 이쑤시개로 긁던데, 저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만 정리했습니다.

20~30분간 끓이다가 물을 버리고 다시 채워서 또 끓입니다. 서너 번을 반복합니다. 붉게 물든 냄비 속 밤 국물의 색이 옅어질 때까지 입니다. 중간중간 거품을 거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위의 과정이 끝나면 이제야 본 게임입니다. 밤 양의 40~50%의 설탕을 넣고 파글파글 끓입니다. 졸아들 때까지 끓이면 됩니다. 인내하면 졸아듭니다.

마지막으로 럼(혹은 와인)을 한 바퀴 두르고 휘휘 저어줍니다.

소독된 유리병에 넣어 밀봉한 뒤 냉장고에 넣어주세요.

그리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을 기다립니다. 이 미친 과정을 거치고도 당장 먹지 못하는 게 한이긴 합니다만, 숙성하고 보면 그 맛이 기막히다니 참아봅니다. 물론 아직 저도 그 맛은 못 봤습니다만.

시작이 밤이었고 그 끝도 야밤, 그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하기 좋은 요리 같습니다. 바로 자고 싶을 것 같거든요.                         






 하늘이 예쁘고 날이 좋은 가을께 올리려고 준비한 글인데 벌써 ‘입동’입니다. 본문에 쓴 것처럼 좋은 기회가 닿아 업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빵과 글을 짓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올릴 때를 놓치거나 글이 완성되지 않아 브런치 활동이 뜸했습니다. 아마도 올리지 못한 글들은 내년 3월쯤에 책으로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브런치도 열심히 할 겁니다!


이제 진짜 겨울, 지금부터는 매웠던 무가 달큼해진다고 해요. 얼마 전에는 무생채에 갓 짠 참기름을 비벼 먹었는데요, 그 묘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꼭! 그 맛을 느껴보시길 바랄 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김치를 오래도록 먹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