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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Jul 05. 2019

엄마의 김치를 오래도록 먹고 싶다

엄마가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3mm가 더 자랐어요. 이건 다시 내시경 초음파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해요.      

    

엄마를 쳐다보기도 전에 내 얼굴이 먼저 일그러졌다. 물론 이 어질한 상황도 몇 가지 예상지 중 하나였다.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되든 보호자로서 의연하게 행동하라던 남편의 신신당부는 잊은 지 오래다. 역시 예습은 실전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머릿속은 마치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왠지 모르게 고요했지만 처참했다. 한 이 년 뒤에나 보자고 하면서 이번에도 걱정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오후엔 엄마와 쇼핑도 하고 카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그리고 엄마만 못 본, 남들은 다 봤다던 그 영화를 보려고도 했었다. 그 날 하루의 꿈이 깨져버렸다.      


     


2년 전에 엄마는 종합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러다 췌장에 붙은 혹이 발견되었고,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하면서 치른 검사 끝에 ‘낭종(일종의 물혹)’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몸속의 모든 혹이 그렇지만 특히 췌장은 다른 장기에 비해 의학적으로 특수한 부위라 더 예민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 이후로 처음엔 육 개월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추적검사를 했다. 다행히 혹엔 변화가 없어서 주기가 늘어나는 듯싶더니 세 번째 검사에서 기어코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속이 바싹 타있는 내게 남들은 왜 그렇게까지 걱정이냐고 했다. 만에 하나 경과가 좋지 않으면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될 것이지 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단둘이 지내면서 나는 유난히도 엄마의 부재를 두려워했다. 아직도 가끔 정읍 할머니 집에 어린 나를 맡기고 홀연히 빗속으로 사라진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자고 있는 엄마를 확인하고 나서야 맘을 놓는 밤은 예삿일이었다. 그러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더 큰 세상을 경험하겠다고 떠나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과 각오가 필요했는지 이 유별난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별 탈 없이 지냈다는 안도와 동시에 이제야 비로소 엄마와의 ‘정상적인’ 애착 관계가 형성됐다는 묘한 성취감에 젖어있기도 했다. 그렇게 결혼도 하고 지금껏 잘 지내고 있지만, 2년 전 엄마의 검진 날 이후부터는 다시 엄마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엄마를 떠올리면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느새 재 검진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아름다웠다  @Nha Trang, Vietnam, 2019

동시에 결혼 기념 여행 둘째 날도 밝아 왔다. 사실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설마’하며 덜컥 여행 날짜를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선택만이 필요했다. 갈까 말까. 처음엔 가지 않기로 했다가 진짜 무슨 일이 난 것도 아닌데 괜한 기운이 닿을까 예정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맘도 편치 않은데 설상가상으로 리조트 음식도 영 별로였다. 음식은 입에 거의 대지 않았다. 그나마 맛없는 맥주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지 싶었다.

파란 하늘과 물, 새하얀 모래가 부딪히는 소리. 그래도 참 아름답다.

아, 엄마 김치 딱 한 점만 먹고 싶다.          



엄마 보내드리고 집에 가니까 냉장고에 엄마가 담근 고추장아찌가 있더라고. 근데 그걸 차마 먹을 수가 없었어. 참 맛있었는데. 그걸 먹어서 없애버리면 왠지 엄마가 이 세상에 흔적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게 허연 곰팡이가 피고 곰삭을 때까지 뒀어.

그 고추장아찌? 결국 그냥 버렸지 뭐. 왜 그때 그걸 먹지 않았는지 십 년이 지난 지금은 그게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다. 아마 하늘에 계신 엄마도 내가 그걸로 맛있는 한 끼를 먹길 바라셨을 텐데. 참 부질없어. 그치?  



끈적한 바람 밑에 잠과 술기운 사이 어딘가에서 내 의식은 지인이 들려준 엄마의 마지막 고추장아찌를 떠올렸다. 아, 엄마 김치. 맥주 한 모금, 두 모금에 더 취기가 돈다.


어느 날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현관에서부터 매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엄마는 눈이 벌게지도록 소금으로 배추를 벅벅 문지르다가 매운 냄새가 진동하는 김칫소를 만들었다. 그러다 맛을 보라고 꼭 내 입에 넣어주었는데 내가 짜다 달다 싱겁다는 둥의 대답을 하면, 엄마는 그래? 에이 아냐. 딱 좋아! 라면서 장갑을 벗었다. 그럴 거면 대체 왜 물어봤냐고 엄마를 타박하면서도 갓 지은 밥과 기름기 좔좔 흐르는 수육 그리고 새 김치가 오를 그날의 밥상을 애타게 기다렸다. 오늘따라 왜 이리 그 밥상이 그리운 건지. 여하간 꿈인지 술기운인지 모를 상태에서 엄마의 김치 담그던 모습은 점차 흐려졌다.

눈을 떠보니 바닷바람은 더 끈적해졌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시 간다면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Nha Trang, Vietnam, 2019


ooo님 보호자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배oo님 보호자분? 이쪽으로….

방금 호명하는 '배oo님의 보호자'가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몸뚱이만 컸지 이런 일엔 말도 안되는 떼를 쓰는 자신을 마주하면 그냥 웃음이 나는 거구나 싶었다. 엄마보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이미 호명된 것 같은데 또 아주 잠깐은 미칠 노릇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손끝이 점점 흐려지는 것만 같다. 온도가 색이라면 내 손가락은 아마 투명하게 타서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이 oo 님 보호자분? 이쪽으로 오세요.     

자동문이 열리더니 검사를 막 끝내고 비몽사몽 하는 엄마가 보였다. 그리고 간호사가 다시 우리를 불렀다. 이제 진료실로 들어가서 결과를 들을 차례다.



사랑해요 이여사님

엄마, 정말 걱정 하나도 안 했어? 나는 솔직히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에이, 아예 안 했다는 건 거짓말이지! 하긴 했는데 뭐랄까 그냥 괜찮았어. 아픈데 하나 없는데 뭘. 엄마를 믿었지 뭐.          


갑자기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믿었다는 한 마디에 엄마의 모진 세월이 스쳤다. 시선을 아래로 떨궈 눈물을 겨우 감췄다. 나이에 비해 풍파를 일찍이 자주 겪은 우리 엄마의 원동력이 바로 ‘자신을 믿은 힘’이었다니. 자기 계발서에서 봤으면 뻔한 레퍼토리라고 비웃기 바빴을 텐데, 그게 엄마의 삶 자체라고 생각하니 감동과 안도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눈에 그득그득 들어찬 것이다.

별안간 엄마가 김치를 담그던 그 날이 더 진하게 떠올랐다. 매운 고춧가루 냄새에 쏟아지는 눈물콧물을 닦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힘을 다해 배추를 벅벅 문질렀다. 마치 무언가를 잊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엄마의 근심이 버무려진 김치 어느 해는 열무, 얼갈이, 달랑무, 순무, 갓, 배추 등 유독 다양하게 밥상에 올랐고, 또 어느 해는 그냥 배추김치만 오르기도 했다.

김치가 엄마의 일상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엄마의 신념이 나를 지켜주었다. 엄마를 향한 안도와 존경으로 눈물이 찬찬히 말라갔다. 이제 나도 엄마처럼 당신을 그리고 나를 믿으면 될 일이다.


다행히 엄마의 혹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물성의 혹이라고 했다. 지금으로선 다른 장기의 기능을 방해하거나 나쁜 변화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도 했다. 혹시 너무 많이 먹어서 혹이 커진 건가요? 하는 의사를 향한 엄마의 엉뚱한 질문에 한 달간 경직돼 있던 나의 입가에 비로소 웃음이 번졌다.           



이번 갓김치도 정말 맛있어요

이거 집에 가자마자 냉장고에 넣어. 어디 들르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 응? 김치 쉰다.     

제법 의연해 보였던 엄마는 이번에도 김치를 담그셨다. 검진을 마치고 김치까지 바리바리 싸서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엄마 말대로 곧장 집으로 왔다. 신발을 던지다시피 하고는 부엌으로 직행했다. 여행 내내 그토록 그리워하던 갓 한 줄기를 꺼내어 입에 넣었다. 알싸한 갓향이 입 안에 퍼졌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엄마가 틈틈이 담가준 김치가 잔뜩이다. 또 웃음이 났다. 고춧가루에 당신의 근심과 걱정을 몽땅 넣어 버무리는 것이 엄마가 살아온 방식이라면, 냉장고가 터져나가도 나는 엄마의 김치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남편이 장모님께 김치 담그는 방법을 물어 직접 담가보자고 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엄마가 담가주는 김치를 오래도록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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