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버로우마켓에서 진짜 '인증'을 보다
식품 공포와 식품 안전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매번 반복이다. 일일이 따지고 들면 세상에 먹을 것 하나 없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개중에 그나마 나은(안전한) 걸 찾거나,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먹는다는 것이 정확하다. 식품 공포는 곧 안전 문제로 번지고, 속된 말로 누구 하나를 족쳐야(?) 원성이 잦아든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둔감해지는 것이 무한 반복 레퍼토리다. 이제 바뀔 때도 되었는데, 어째 더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유기농, 친환경의 진짜 의미
나도 관련 업계에 종사하면서 어쩌면 진짜 ‘유기농’과 ‘친환경’적인 농사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렇다면 유기농과 친환경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책 쳐다볼 정성까지는 없어서 위키백과 인용) 종 다양성을 확보하고 건강한 작물체 재배를 도모하는 (중략) 영농 방법을 유기농(법)이라 하고, 친환경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환경에 친화적인(찾아보지 않아도 알겠...) 뭐 그런 거 아닌가. 결국 약 치지 않아서 땅에도 좋고, 약 닿지 않아서 생산자에게 좋고, 약 먹지 않아서 소비자에게도 좋은, 그러니까 모두에게 좋은 그런 것.
인증이 뭐길래, 인증 앞에 날 선 관계
우리가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 ‘유기농’, ‘친환경’적으로 백날 농사 지어봐야 땅과 공기, 물이 오염되어 있다면 안타깝게도 진짜 유기농 인증이라는 것이 소용없을 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무분별한 개발 정책으로 각종 농약이나 폐·오수로 오염된 땅심이 회복하는 데에 노력이나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결국 기다리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회복된 땅에서 ‘친환경’,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일 차 조건이 주어지고, 비로소 유기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쭉 이어가면 좋으련만, 과거에 뿌려댄 맹독성 농약성분이 토양의 상태 변화로 오늘 생산한 농산물에서 검출되는 경우도 있다. 옆집 희선이 아버지가 뿌린 미세한 농약 성분이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스며들면서 일시적으로 검출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뿐이랴, 여름엔 무더위와 벌레, 겨울엔 손끝이 갈라지는 추위와 싸우느라 생고생을 한다. 인증이라는 딱지 한 장 붙는 것에 비해 어마한 노고가 따른다. 약 한 번 치면 좀 나아질 것을, 오죽하면 유기농사를 '무릎 꿇고 짓는 농사'라고 했을까.
그렇다고 해서 농약 잔뜩 친 농산물에는 생산자의 수고와 노력이 들지 않은 '대충'의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친환경 인증 여부로 좋고 나쁨을 따지는 건 친환경적이기보다, 친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과 앞에 과정은 사라진다
친환경(이라는 인증이 붙은) 농산물 사고가 경우, 검출 수치와 검출 여부 등의 검사 결과만을 보고 인증을 받기 위한 그간의 과정과 노력, 시간 등은 완전히 무시되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엄연히 약속(법)이고, 이를 감안하고 구매한 것이라 당연한 처사 일지 모르지만, 그나마 인증 농산물 즉, 관리 범위 내의 농산물이기 때문에 검사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결과를 축소나 은폐 없이 공개하고, 보상 여부와 절차를 따지는 것. 이후에는 생산자와의 관계를 무작정 끊지 않는 것. 정밀한 역학 조사를 실시하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까지. 나는 이 정도가 우리나라에서 친환경, 유기농업을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생산자의 양심과 이런 상황을 방지하는 체계적인 관리가 선행된다는 전제 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이 노력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끊임없이 해낸다 치자. 하지만 이미 오염된 자원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더 나빠지지 않도록 우리가 다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환경보호를 주제로 표어를 쓴 게 헛수고는 아니란 말이다. 결국 자연과 사람 모두가 협조해야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유기농업이라는 게 가능하지 싶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묵묵히 이런 노력을 하는 곳이 있어 건강한 먹을거리, 땅과 사람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본다.
동네에서 미친놈 소리 들어가며 화학 비료 한 번 쓰지 않고, 오롯이 땅심만으로 몇십 년 유기 농사 지어봐야 돌아오는 건 사람들의 냉소뿐. 이렇게 무너지는 생산자들 앞에 나는 그저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 극단적인 나쁜 예가 있지만, 적어도 내가 그동안 만난 생산자는 양심을 팔지 않았다. 흔한 일은 아니라고 장담한다. 제발 이런 말 쉽게하지 말자
오늘도 비에 울고 웃으며 땅과 한 바탕 겨루었을 이 땅의 모든 농부님들께 감사를 전하며.
딱지 말고 진짜 '인증'
런던의 버로우마켓(Borough Market)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식 시장으로 로컬푸드 운동을 바탕으로 다양한 식자재와 농산물, 관련 워크숍 등을 여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죠.
| 로컬푸드 운동이란
가까운 인근 지역에서 난 재료로 복잡한 유통 과정 없이 그 지역에서 직접 판매하고 소비하고자 하는 움직임
유기농 인증이요?
제가 만들었으니 제가 인증하죠
활짝 웃는 그녀가 말했습니다.
organic이라 쓰인 팻말을 보고 인증에 대해 묻는 내 말에 대한 대답이 놀라웠습니다.
이 장터에서는 아주 특이한 식재료를 제외하고는 런던 외곽에 위치한 목장에서 생산된 치즈와 우유, 가까운 소도시에서 재배한 각종 과일과 채소를 판매합니다. 그리고 이런 재료로 상인이 직접 만든 잼이나 소스, 피클 같은 저장 음식, 수제 소시지 등의 육가공품, 베이커리 등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시장에서는 organic이라는 단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유기농도 유기농이지만 신선한 식재료를 얻기 위해 들른다고 해요. 마치 ‘맛있어서 구입해보니 유기농이기까지 하더라’일까요.
그만큼 판매하는 상인들의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유기농 '인증’ 이전에 정직하게 직접 기른(만든) 신선한 식재료를 중간 유통과정 없이 빠르게 장터에 가지고 오는 것, 그리고 이것을 축복이라 여기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의 장터인 거죠. 장터의 매대에, 나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중요시합니다.
버로우마켓에 들르면 꼭 먹으라는 굴(Oyster). 눈이 번쩍 뜨이는 바다를 호로록-하는 맛이랄까.
그렇지만 우리나라 굴도 제철인 9월에 먹으면 참 맛있죠(얼마 남지 않았...)
시장하면 빠질 수 없는 즉석 음식.
큰 빠에야 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빠에야. 아 또 먹고 싶다.
형형색색인 채소를 매대에 올린 방식도 다양합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안에 있는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들고 와서 직접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영국 교육과정에는 텃밭 수업과 이런 관련 체험 과정이 있다고 해요. 아이들은 채소 봉투에 직접 만든 스티커를 붙이고,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합니다. 참여한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매우 들떠 보입니다. 꽤 진지한 아이들의 표정도 재미있습니다.
그 옆에는 두 명이 아이와 셰프 선생님이 바질 뇨끼를 만들고 있었어요. 셰프 선생님은 설명과 시연을 해 보이면 아이들이 따라 하는 방식입니다.
오, 그래요? 좋아요!
그럼 이 깜빠뉴랑 치아바타 주세요.
내가 곧 인증이라는 그녀의 대답에 '그래서 인증 마크는 받은 거라고?’라고 되묻는 대신 빵을 주문했습니다.
버로우마켓에서는 자부심과 믿음, 그리고 이들끼리의 끈끈한 관계가 진정한 의미의 인증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글과 사진 | 오가닉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