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끼니 걱정
나는 외동딸이다. 이 세상에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단 하나의 사람이다. 사실 나는 아직 애가 없어서 나라는 존재가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시집 간 딸내미의 끼니 걱정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엄마는 그냥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 엄마는 내게 잔소리를 밥 먹듯하셨지만, 진짜로 밥을 잘 차려주기도 했다. 엄마라면 누구나 그런 거고,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한편, 잔소리로는 이 세상 일 등인 우리 엄마는 정작 굵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겠다는 스무 살의 내게, 여행을 하겠다며 수강신청 대신 휴학계 버튼을 누른 즉흥적인 내 손모가지에, 밑도 끝도 없이 일을 때려치우겠다는 내 철딱서니에, 마이클잭슨이 고인이 된 날 술에 취해 문워크를 추는 잔망스럽기 짝이 없는 내 다리에도 정작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아, 딱 한 마디 하셨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밥 잘 차려주는 예쁜 엄마
나는 어렸을 때 식은 밥을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운 밥은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느껴져서 입에 대지 않았다. 반찬통 째로 반찬을 먹은 적도 없었다. 라면 하나를 끓여도 우리 엄마는 꼭 예쁜 대접에 옮겨주었다. 그 사이에 다 불어 터지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숙취에도 배를 부여잡고 라면을 옮길 대접을 찾는다. 유난이다 야자를 한답시고 신나게 놀다 온 밤 열한 시에도 우리 집 식탁엔 속이 다 갖춰지지 않은 따끈한 김밥이 올려져 있었다. 힘들고 바쁜 날엔 김치와 밥 정도로 차려줄 법도 한데, 엄마는 항상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을 골고루 만들어 밥상에 올려주셨다. 그것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손도 많이 가고 쉽게 쉬어빠지는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이뿐이랴, 전라도가 고향인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젓갈이 든 김치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김장을 두 번하셨다. 젓갈 든 엄마 김치와 젓갈이 들지 않은 나의 김치를 따로 담근 것이다. 콩밥을 먹지 않는 나를 타박하면서도 결국 내 밥은 따로 안쳤다. 밥콩인지 콩밥인지 모를 엄마밥과 내가 좋아하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밥을 말이다. 팔자에도 없는 시집살이를 딸내미 때문에 하게 됐다며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기왕 먹는 밥은 제대로, 아주 맛있게, 귀하게 여기면서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어쩌면 남들이 유난하다고 여길만한 밥상을 차리는 엄마만의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으면 너 좀 사는 집 아이구나 하는 눈치였는데, 쥐뿔. 엄마는 나를 홀로 키운,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외벌이 워킹맘이었다. 일하랴, 살림하랴, 나를 돌보랴 홀로 나를 키우는 우리 엄마가 감당해내야 할 아득한 현실을 말 그대로 초월한 것이다. 내가 어렸던 삽십 년 전만 해도 일하는 여성의 위상이 지금 만큼이 아니었을 거다. 게다가 지금과는 다르게 혼자 사는 애 키우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눈총을 받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험한 세상을 살아내면서도 내 끼니만큼은 거르지 않고 챙겨주었다. 정작 당신의 끼니는 거르지 않고 잘 챙기셨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엄마의 끼니 걱정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먼 곳에 있을 때도 오랜만에 전화를 걸면 제일 먼저 ‘밥은 먹었냐’고 물으셨다. 한 번쯤은 잘 지내냐, 아픈 데는 없냐 하셨을 법도 한데, 엄마는 내가 밥을 잘 챙겨먹으면 아픈 데 없이 잘 지내는 것으로 여기시나 보다 싶었다.
밥 한 끼의 무게
어느덧 내 나이 삼십 대 중반. 일과 살림을 병행하는 나와 남편은 늘 버겁다, 귀찮다, 힘들다고 투덜댄다. 나에게 살림이란, 아직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놀이쯤으로 여겨진다. 그 시절 엄마에 비해선 풍족하게 잘 지내고 있다. 든든한 남편도 있고, 어떤 희생이나 큰 압박 없이 오롯이 내 꿈을 위해서 살고 있다. 하지만 내 나이 때의 엄마에겐 나를 위한 밥 한 끼가 당신을 옥죄고 가능하다면 벗어나고픈, 아주 무거운 돌덩이가 아니었을까.
지금의 나는 월요일 아침마다 시달리는 월요병에, 간간이 오는 생리통에, 하고 싶은 것 투성인 내 욕구에, 이런저런 감정 소모에 지친 하루를 보낸다. 엄마도 똑같은 시간을, 아니 나보다 더 한 시간을 감내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많았겠지.
그런 엄마 덕분인지 나는 요새 사람들 치고는 집밥을 자주해 먹는다. 살림에 대한 애착도 있는 편이다. 엄마가 길러준(?) 습관대로 전기밥솥을 사용하지 않고 밥을 짓는다(이제 데운 밥은 먹는다).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반찬은 따로 덜어 먹고, 나 혼자 먹는 한 끼라도 정성을 다해 예쁜 밥상을 차린다. 밥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먹을거리의 정의가 바로 설 세상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급기야 그런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인이 박이게 겪은 엄마의 끼니 걱정 덕분인 것 같다.
이제 나를 향한 엄마의 끼니 걱정은 예전만 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묻는 게 더 잦아졌다. 그리고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물을 남편이 생겼다. 아무래도 이제 엄마에게는 나의 끼니보다 자신의 삶이 먼저인 것 같다. 반갑기도 하고, 가끔은 그 말이 그립기도 하다. 그래도 여느 장모와는 달리 사위 보다 내 딸이 먼저라고, 엄마는 늘 네 편이라고 말해준다. 생각할수록 엄마가 고맙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앞으론 내가 더 자주 물어야겠다. 엄마 식사는 하셨느냐고.
지난주에 우리 엄마, 그리고 엄마와 함께 지내는 아저씨가 우리 집에 다녀가셨어요. 딸내미 새 공간이 생겼다며, 저보다 더 좋아해 하시면서 선물이라고 김치를 잔뜩 들고. 갓김치, 파김치, 얼갈이, 백김치, 오이소박이까지 그 많은 종류의 김치를 가지고 오셨어요. 일주일 동안 김치만 담그셨다고 하니 알만하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엄마가 이 김치를 담그셨을지 떠올려보면 마음이 너무 따뜻해져요.
집에서든 도시락이든 매 끼니에 엄마의 김치가 오릅니다. 덕분에 부족한 음식 솜씨가 가려져요. 메인은 아니지만, 항상 밥상 위에서 입맛을 돋워주는 우리 엄마의 마법 김치.
어쩌면 이 김치처럼 엄마는 내 옆에서 나를 북돋아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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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김치가 이렇게 있으니까 되게 든든해. 이런 기분 처음이야.”
남편이 냉장고를 열어보며 말합니다. 나도 마찬가지라며 깔깔깔.
엄마의 사랑이 냉장고에 그득그득 차 있습니다.
엄마 덕에 풍성해진 밥상에 감사하며,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