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합법적으로 조금 더 처지고 게을러질 명분, 혼자 있어도 된다는 명분이 생기는 것 같다.
비 때문에 다들 실내에 조용히 머물테니까.
비오는 날의 그런 면이 좋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는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없을 때 비가 오면 집구석(집이 아니라 ‘집구석’)에 있는 내가 덜 초라해지는 느낌이 든다.
나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제약된 활동을 하니까, 나만 혼자 있는 게 아니니까. 나만 외로운 게 아닐 테니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는 그런 어리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조금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집안을 쓸고 닦고 침구류를 정리하고 옷들을 개키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술을 곁들이고… 그 ‘집구석’에서도 나는 부지런히 외로움을 외면해본다.
그렇지만 자려고 눈을 감으면
‘너 오늘 뭐했어?’라는 질문이 눈꺼풀에 따라붙겠지
그냥 사실대로 말해야지 뭐.
오늘 외로워서, 심심해서, 그냥 청소하고 영화보고 술마시고 졸았어.
외롭고 심심한 나를 그렇게 놀아줬다고.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무심하게 말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