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을 아끼고, 하루를 잃는 아침
아들의 표정이 아른거린다.
놀란 표정, 당황스러운 눈빛.
나는 왜 딸을 안고 계단을 먼저 내려왔을까.
아들은 계단 입구에서 멈춰 서 있었다. 아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딸을 안고 내려가는 장면이,
그 아이의 몸을 잠깐 얼려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눈에 고여 있었다.
나는 킥보드를 두고 내려오라고 외쳤다.
아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킥보드를 놓고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평소의 나는 계단에서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조심히. 천천히.”
그 말을 가장 많이 해온 사람이, 정작 스트레스 앞에서는 말투도, 표정도, 태도도 정반대가 된다.
내 모습은 아들과 딸의 눈을 통해 반사되어 돌아왔고,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눈은 거울이다. 내가 오늘 어떤 사람인지, 너무 선명하게 보여준다.
셔틀버스를 놓친다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버스를 타야만 한다.
놓치면 안 된다.
늦으면 안 된다.
이 문장들이 사실은 ‘상황’이 아니라 ‘감정’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버스를 놓치고 덩그러니 남겨진 내 모습이 떠오른다.
처량해 보일까 봐, 어딘가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까 봐, 부끄럽고 수치스러울까 봐.
그래서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이 내 안에서 경보처럼 울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두 비이성적인 생각이다.
버스를 놓칠 것 같으면 자가용으로 데려다주면 된다.
아이들을 보낸 뒤 정해진 스케줄이 없기 때문이다.
운전하고 내리는 수고와 귀찮음을 감수하면 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하면 된다는 걸.
그런데도 버스가 떠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불안과 조급함이 먼저 핸들을 잡는다.
머리는 “괜찮아, 방법 있어”라고 말하는데, 몸은 “빨리!”를 외친다.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불안’을 전이한다.
나도 모르게, 나의 긴장이 아이들의 호흡을 흔든다.
그리고 더 아픈 질문이 뒤따른다.
그전에 우리 아이들은, 나의 이런 모순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아빠는 늘 조심하라더니, 급하면 소리치는 사람이구나.
아빠는 안전을 말하면서, 불안해지면 우리를 밀어붙이는 사람이구나.
아이들은 판단보다 먼저 감각으로 배운다.
“아빠가 지금 무섭다.”
“아빠의 마음이 나에게로 넘어온다.”
그 감각이 쌓이면, 언젠가는 ‘아침’이라는 시간 자체가 긴장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게 두렵다.
셔틀버스를 태운 대가로, 나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 20분을 세이브했다.
그런데 그 2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무기력과 죄책감이 함께 앉아 있다.
아이들이 올 때까지, 미안함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루의 바닥을 닦는다.
이상하다.
시간은 아꼈는데 마음은 더 빚이 졌다.
아마 내가 진짜로 아끼고 싶었던 건 시간이 아니라 ‘내가 처량해 보이지 않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버스를 놓친 뒤 멈춰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아이들을 몰아붙였다.
그 순간의 나는 ‘아빠’라기보다 ‘불안’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불안은 늘 같은 길을 돈다.
반복적으로 겪는 이 감정의 수레바퀴가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쩌면 매일 아침, 아이들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하루’를 마주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연습이 서툴러서, 자꾸 아이들에게 내 불안을 들려준다.
육아를 하며 겪는 비이성적인 생각과 행동,
그로 인해 생겨나는 여러 감정들을 글을 통해 정리해보려 한다.
특히 아빠로서 두 번째 육아휴직을 통해 경험하는
기쁨과 죄책감, 희망과 좌절감을 담백하고 솔직하게 남겨보려 한다.
여기서 내가 얻고 싶은 결론은 “나는 나쁜 아빠다”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그래서 더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나는 내 마음의 작동 방식을 기록해보려 한다.
다음번에는, 버스가 떠날 것 같은 순간이 와도
아들에게 먼저 말해보고 싶다.
“아들아, 아빠가 지금 좀 급해졌어. 근데 괜찮아. 우리 천천히 내려가도 돼.”
아이들은 완벽한 아빠를 원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어른을 원한다.
그 어른이 내 옆에 있어주는 경험이, 아이에게는 ‘세상은 안전하다’는 감각이 된다.
오늘 아침, 아들의 당황한 눈빛은 내가 놓친 버스가 아니라
내가 놓치고 있었던 마음의 속도를 보여줬다.
다음번에는 20분을 아끼지 못해도 좋다.
대신 아이들의 얼굴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아휴직 아빠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빠르다는 건 시간을 아끼는 기술이 아니다.
불안을 아이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혹시 당신도 아침마다 같은 후회를 반복하고 있다면,
오늘은 ‘속도’보다 ‘목소리’를 먼저 아이에게 건네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