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너무 오래 버텼다

리더·아버지·상담사로 버텨온 내가 ‘회복’이라는 단어를 배우는 중이다.

by 강동민

나는 꽤 오랫동안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왔다.
일은 굴러갔고, 약속은 지켰고, 맡은 역할은 해냈다.


리더로서 흔들리면 안 됐고,
아버지로서 무너지면 안 됐고,
상담심리사로서 누군가에게 기대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괜찮은 척을 했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복되지도 않았다.


심리검사를 받았을 때, 결과는 담백했다.

눈에 띄는 위험 신호는 없고, 전반적으로 정상 범위..

위험한 수치도 없었고,
극적으로 높게 치솟은 척도도 없었다.
보고서는 내게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정상 범위입니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큰 문제가 없는데, 왜 이렇게 지칠까.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우울한 것도, 불안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소진되어 있었다.


소진은 무너짐처럼 드라마틱하게 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온다.

겉으로는 멀쩡하다.
회의도 하고, 상담도 하고, 아이들 밥도 챙긴다.
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소한 일에 쉽게 지치고,
사람이 부담스러워지고,
집에 오면 말이 줄어든다.


누군가 묻는다. “괜찮아?”
나는 익숙하게 대답한다. “응, 괜찮아.”, "나는 잘지내"


그 대답이 거짓은 아니다.
다만 그 말은
내가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를 숨긴다.


검사 결과에서 내게 가장 남았던 건

‘문제 없음’이라는 문장이 아니라

내가 소진되는 방식이었다.


나는 분노가 높은 사람은 아니었다.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불안이나 우울도 극단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안정은

평온이 아니라 억제에 가까운 안정이었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화를 늦게 알아차리는 사람.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


리더로서 나는 감정을 관리했고,
아버지로서 나는 감정을 숨겼고,
상담사로서 나는 감정을 해석했다.


그 세 가지가 결국 한 문장으로 묶였다.


결국 나는

느끼지 않는 연습에는 능숙했지만

회복하는 연습은 하지 못했다.


소진은 몸보다 마음을 먼저 닳게 만든다.
특히, 기준이 높은 사람에게서 그렇다.


나는 나를 미워하진 않는다.
다만 나에게 관대하지 않다.


잘해도 당연하고, 좋은 결과로 인한 미소는 잠시 였고,
조금 부족하면 오래 곱씹는다.


‘아버지니까’, ‘센터장이니까’, ‘상담사니까’
나는 늘 괜찮아야 했다.


그 괜찮아야 한다는 마음이
사실은 나를 지켜준 게 아니라
나를 더 소진시켰다는 걸
나는 늦게 배웠다


그래서 요즘 나는
“괜찮다”는 말 대신
다른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나는 지금 회복되고 있는가?”

정상이라는 말은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지,
마음이 쉬고 있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일수록

회복의 필요를 가장 늦게 알아차린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회복은 거창하지 않았다.
감정을 분석하지 않아도 됐다.


하루에 한 번이면 충분했다.


오늘 나를 조금 살린 건 뭐였지.
오늘 나를 조금 갉아먹은 건 뭐였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

그게 내게는

오랜 ‘기능’의 삶에서

‘살아 있음’으로 돌아오는 첫 걸음이었다.


나는 여전히 리더로 살고,
아버지로 살고,

상담사로 산다.


다만 예전처럼
‘괜찮은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회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는 보통
무너졌을 때만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 버텨왔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요즘, 당신은
버티고 있나요
아니면 조금씩 회복되고 있나요?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빠르다는 건 감정을 눌러버리는 속도가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속도다.

혹시 당신도
정상이라는 말 뒤에서
조용히 닳아가고 있다면,
이번에는 버티지 말고
회복되는 쪽으로 한 발만 옮겨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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