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으면 리더도 외면 받는다

억울함 하나가 내 중심을 흔든 날

by 강동민

나는 억울하다. 그런데 이유가 너무 합리적이다


"센터장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왜 저한테 미리 안 하셨죠? 이건 일반적이지 않아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언제, 뭘, 누구한테?
나는 갑자기 ‘무언가 잘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시작은 나였고, 끝은 내가 아니었다.


내가 억울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해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서운함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며칠 전, 퇴사를 앞둔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센터에 계속 기여하고 싶어요. 파트타임으로 잠깐이라도 도와드릴까요?”

나는 그 제안이 고마웠고, ‘현장 공백 최소화’라는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느꼈다.
윗선에 직접 보고했고, 논의 끝에 현재 체제로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걸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실행도 되지 않았고, 정식 논의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새로 온 직원은 이 내용을 전혀 공유받지 못한 채 불쾌해진 걸까?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사람의 분노


며칠 뒤, 회의가 끝나고 신규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그 아르바이트 얘기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왜 저한테는 아무 말도 없었나요?”
“이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순간, 나는 당황했고,

머릿속엔 ‘이게 무슨 얘기지?’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은 제안이었고, 절차적으로도 정당했으며, 결국 하지 않기로 결정된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상의 없이 일을 처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리더였다. 하지만 설명하지 않았다


그 제안은 퇴사를 앞둔 직원과 나, 둘의 이야기로 여겼다.

보고는 했지만, 그게 누구에게 영향을 줄 거란 생각까진 미치지 못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뭘 놓친 걸까?’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숨긴 것도 없고, 정식 보고도 했고, 결론도 명확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배제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억울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다.
이건 단순히 억울함이 아니었다.
‘나는 조직 안에서 존중받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누가 잘못한 걸까?


퇴사 직원: 현장을 배려한 제안이었지만, 공식 권한은 없었다.

신규 직원: 본인의 업무와 관련된 논의가 배제되었다는 데서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 센터장: 윗선에 보고했고, 실행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공유되지 않은 것, 그게 문제였다.


결국 이 일은 누가 맞고 틀렸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 안에서 절차와 소통의 끈이 단 하나만 끊겨도, 감정은 쉽게 왜곡된다.

핵심은 이것이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속감을 놓친 것.


억울함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억울했던 진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선의로 판단한 결정’이 오해로 돌아오는 상황이 억울했다.

‘설명할 기회조차 없이’ 잘못한 사람이 되는 구조가 화가 났다.

‘나를 무시한 게 아닐까’ 하는 감정에 휩싸인 내 자신이 싫었다.


결국, 이 감정은 내 권위와 신뢰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절차 없는 대화는, 가장 선한 제안도 독이 된다


그날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선의라도 절차가 생략되면, 누군가는 배제된 느낌을 받는다.

그 직원은 ‘자신과 무관하게 결정된 이야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불쾌했다.
나는 오히려 ‘책임지고 마무리한 일’을 왜 지금 와서 지적당해야 하느냐는 억울함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면,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방식’이었다.
제안은 보고되었지만, 공유는 의사결정 라인에만 머물렀다.
현장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던 것이다.


다시, 리더십의 본질로 돌아가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① 사람은 '결정'보다 '참여'에 민감하다.
② 오해는 설명이 없을 때 생기고, 신뢰는 설명을 반복할 때 생긴다.


그리고 나는 다음 세 가지를 원칙으로 정리했다.

→ 어떤 제안이든, 실행 여부와 무관하게 당사자와 공유해야 한다.

→ 인수인계 중 논의된 모든 사항은 새 담당자에게 공식 메모로 전달한다.

→ 억울함을 방어가 아닌 성찰의 언어로 바꾼다.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저의 실수였네요. 다음엔 더 투명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억울함 속에는 진짜 마음이 숨어 있다.


그게 그날의 나였다.

실행 안 한 일

보고는 했던 일

의도는 선했던 일

하지만, 설명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감정,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렇다.

“나는 틀린 판단을 한 게 아니야.”
“나는 조직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야.”
“나는, 존중받고 싶었어.”

결국, 내가 바랐던 건 존중이었다.

그날의 질문은 단지 업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 존재감에 대한 확인처럼 들렸다.


억울함을 기록하는 이유


이 글은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다.
심지어 내 편을 들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날 느꼈던 마음의 떨림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왜냐하면
그 떨림이, 내가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지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은 ‘직장 내 오해’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조직에서 흔히 있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내 감정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억울함은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자기 확신에서 나오지만,
회복은 ‘다음엔 더 투명하게 소통하자’는 자기 성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질문을 바꾼다.

“그때 왜 말 안 했지?”가 아니라
“그때 말했으면 어땠을까?”로.


이 사건은 내가 리더로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 묻는

'내 인생의 모르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매일 억울하다.


작은 회의, 짧은 이메일, 사소한 대화 속에서 ‘왜 나만 몰랐지?’라는 감정은 스며든다.

하지만 그 감정을 글로 붙잡을 수 있다면, 그 억울함은 회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리더십 일기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이자, 내가 흔들리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신앙과 관계, 일과 가족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해석하려는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 감정과 리더십 사이에서 고민 중이시라면, 구독으로 함께 읽어보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