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꼬치 하나에 무너진 밤

그건 그냥 야식이 아니었다. 그건 "나 좀 알아줘"라는 말이었다.

by 강동민

사소한 일이었다.


그날 나는 너무 바빴다.
출근도, 마감도, 회의도, 강의 준비도 쉴 틈 없이 이어졌고,
이제 곧 떠날 사이판 가족 여행까지 준비해야 했다.


나는 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지만,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새벽 2시까지 일할 참이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책상 앞에 앉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나 일하면서 족발 먹을까 하는데, 같이 먹을래?”

오랜만에 함께 야식이라도 먹으며 고된 나의 수고에 대해 위로받고 싶었다.


아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조금 비싸지 않아? 집에 있는 걸로 먹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여보, 닭꼬치 좀 데워줄 수 있어?”

그런데 그 순간, 아내가 짜증을 냈다.
“나도 하루 종일 힘들었어. 나도 쉬고 싶어.”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무너졌다.

그런 상황에서 닭꼬치 하나 부탁한 게 뭐가 큰일인가 싶었다.



“그래? 그럼 됐어. 안 먹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날 새벽 2시까지 하려던 일을 접고 그냥 잠들었다.

감정을 수습할 겨를도 없었다.

아침이 되어 아내가 이것저것 챙겨주려 했지만,

“됐어.”

그 한마디로 끝냈다.

그냥 나와버렸다.

인사도 하기 싫었다.

얼굴도 보기 싫었다.

말을 섞는 것도 버거웠다. 마음이 닫혀버린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걸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야식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단지 ‘방아쇠’였을 뿐이다.

그날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거다.

“나도 너무 지쳤어.
누가 나 좀 챙겨줬으면 좋겠어.
오늘은 나를 위해 뭔가 하나쯤 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 작은 요청조차 거절당한 기분이 들었고,
그건 단순한 ‘음식’의 거절이 아니라
‘나 자체가 무시당한 것 같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내가 참고 버틴 하루, 내가 조심스럽게 건넨 감정의 손길이, 너무 쉽게 외면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외면이 오래된 무언가를 건드렸다.

나는 아내가 정말로 밉지 않았다. 다만, 내가 너무 외로웠던 것 같다.



감정이 끊어질 때, 나는 나를 지키려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

이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감정 패턴이라는 것을.


나는 정서적으로 민감한 사람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많은 것을 느끼고,

그 감정이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순간

분노와 단절로 자신을 지켜내는 방식을 택해왔다.


이런 내 반응은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다.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를 먼저 끊어내는 사람이다.

화해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말하고 싶지 않고, 인사도 하기 싫고, 심지어 얼굴도 보기 싫은 이중적 감정.

상담심리학적으로 보자면, 나는 회피형 애착과 감정과민형 반응을 동시에 갖고 있다.

애정을 갈망하지만,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조심스럽고, 감정이 외면당하면 분노로 단절한다.



이 반응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어릴 때 나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한 기억이 많지 않다.

칭찬을 받기 위해선 뭔가를 잘해야 했고, 억울하거나 속상해도 말해봤자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은 ‘약한 사람’의 언어처럼 여겨졌다.

돌봄은 있었지만, 무조건적인 수용은 드물었다.

나는 ‘표현하면 다칠 수 있다’는 감정을 배웠고, 자꾸 눌렀고, 참았고, 견뎠다.


그리고 어떤 순간, 아주 작은 거절에도 “또 무시당하는 거야?” 하는 감정적 기억이 재연된다.

닭꼬치 하나가 그런 트리거가 되었던 거다.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이 눌린 상징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숨기고 참는 방식으로 살아왔고,

결국 쌓이고 쌓인 감정은 사소한 계기 하나로 폭발하게 되었다. 이번엔 닭꼬치였다.



그때 필요한 건 화해가 아니라 감정의 회복

지금의 나는 안다.

화해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내도 힘들었다는 것도,

내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 거라는 것도.

아내와 말로 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내 감정을 다시 받아주는 일이다.

내 감정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억울함, 외로움, 수고가 무시당한 느낌. 그 모든 감정을 내가 먼저 안아줘야 한다.


"나는 지쳤다."

"나도 기대고 싶다."

“나는 억울했다.”

“나는 외로웠다.”

“나는 정말 사랑받고 싶었다.”

그걸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 화해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외롭다.



감정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감정을 이해할 때, 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

요즘 나는 배우고 있다.
감정을 표현한다고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화를 느낀다고 사랑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
상처받아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게 된다는 것.



나를 회복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나는 지금도 회복 중이다. 감정이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단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조금 더 정리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닭꼬치를 말했던 건, 그냥 뭐라도 같이 먹으면서 '수고했어'라는 감정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야.”



닭꼬치 하나에 화를 냈지만, 그건 단지 나의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내 오랜 외로움, 서운함,
그리고 사랑받고 싶었던 내 마음이 숨어 있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날의 너,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사랑받고 싶었던 거잖아.”
“그걸 이제는 너 자신이 이해해주자.”




아내도 분명 이해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내가 이해받고 싶었던 것처럼

아내도 분명, 이해받고 싶었을 것이다.

나만 힘든 줄 알았던 그 순간,
아내도 아내대로 하루를 견디고 있었겠지.

생각해보면
닭꼬치를 돌릴 힘조차 없던 아내의 피곤한 표정,
그게 다 말해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보지 못하고
내 감정 안에만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말없이 하루를 견디고,
말없이 가족을 챙기고,
말없이 나를 기다려준
당신에게.


지금는 말할 수 있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리고 다음번엔,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볼게.

“나 오늘 좀 힘들었어. 같이 있어줘.”
그렇게.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이자,
내 안에 오래 묻어둔 마음이 말을 거는 방식입니다.

이 글은,
닭꼬치 하나에서 시작된 오해였지만
사실은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만약 당신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친 적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짧은 이야기가,
그날의 당신을 조금은 이해해주는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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