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오락실에서만 살아있던 시절

공부보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던 곳

by 강동민

시험과 불안의 끝없는 순환

시험 때마다 나는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일주일 전까지는 게임, 오락, 야구.
그렇게 놀다가 시험이 다가오면 늦은 밤, 새벽까지 교과서를 붙잡았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100점을 맞았을 텐데…”
그 후회는 늘 시험이 끝난 다음 날에 찾아왔다.

성적은 대개 60점대.
불안은 성적표보다 먼저 찾아왔다.
시험이 끝나면 해방감을 핑계로 다시 놀았다.
비디오, 오락실, 야구.
그리고 또 시험이 다가왔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만든 거리감

1학년 초, 나는 반장과 일진 옆에 서 있었다.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의 대화 밖에 서 있었다.
관심과 주목,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그때도 내 안에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였을까, 친구들과 오히려 멀어졌다.

나를 하잖은 존재로 대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그 이후 학교는 점점 가기 싫은 곳이 되었다.


꿈속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밤마다 같은 꿈을 꿨다.
동네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꿈에서라도 멀리 가고 싶었다.


TV와 웃음으로 버틴 일상

집은 TV 소리로 가득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발소에서 함께 일하셨다.
손님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지만, 집에서는 대화가 적었다.
TV를 켜놓고 개그 프로그램, 농구대잔치, 프로야구를 보며 웃는 게 내 하루의 작은 행복이었다.


학원보다 오락실이 준 자신감

그러다 아버지가 말했다. “학원 좀 다녀라.”
돈을 내주셨으니 성적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학원 숙제와 학교 숙제는 나를 짓눌렀다.

‘나는 안 되나 봐.’
불안과 스트레스는 커졌고, 공부는 여전히 어려웠다.

그때 오락실이 있었다. 거기서만은 달랐다.
나는 버블버블, 너구리, 원더보이, 마계촌, 아소, 황금도끼, 더블드래곤, 소림사, 스트리트파이터…

그 모든 게임의 ‘왕’을 깨고, 예술 같은 플레이를 했다.
누군가는 내 뒤에서 감탄했다. 점점 여러명이 내 뒤에서 내가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와, 너 진짜 잘한다.”

그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집도, 학교도, 학원도 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오락실에서는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심리학이 말하는 ‘살아있음’의 다른 이름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성적표보다 ‘살아있다고 느낄 순간’을 찾고 있었다.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기쁨보다, 오락실에서 “대단하다”라는 말 한마디가 더 간절했다.
그게 내 자존감을 지켜주는 유일한 장치였으니까.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대체 보상’이라고 부른다.
주요 영역(공부, 관계)에서의 실패를 다른 영역(게임, 스포츠)에서 메우려는 심리다.
그 보상이 없었다면, 나는 더 쉽게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오락실은 어디인가

혹시 당신도 지금, 오락실 같은 공간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남들이 보기엔 ‘의미 없어 보이는’ 그곳이,
당신이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그 자리에서 느낀 생존의 감각은, 허무한 것이 아니다.
그건 여전히 살아 있는 가능성의 불씨다.

다음 글에서 나는, 오락실 이후 어디에서 그 불씨를 다시 피웠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아마 당신의 자리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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