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보다 먼저 공감이 필요하다.
사소한 말이었다.
그날 아내는 하루 종일 아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아들은 말을 잘 듣지 않고, 떼를 쓰고 있었다.
아내는 훈육해야 하는 무게와, 마음으로 받아내야 하는 피로에 지쳐 있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지쳐 있었다.
센터장 업무, 강의 준비, 논문까지 이어지며 하루가 파도처럼 몰아쳤다.
퇴근하고 집에 와도 책상 위에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무심코 말했다.
“집을 팔고 경기 쪽으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내겐 숨 좀 쉬고 싶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겐 지금 간신히 버티고 있는 삶의 터전을 흔드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다투었다.
요즘 나는 일에 파묻혀 살았다.
센터 일, 강의, 자문, 논문까지 이어지니 하루가 빠듯했다.
아내는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고단함을 견뎠다.
우리 둘 다 지쳐 있었지만, 방식이 달랐다.
나는 불안을 해결책으로 줄이려 했고, 아내는 안정감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는 공감보다 먼저 대안을 꺼냈다.
“이사”라는 말이, 내겐 계산이었지만
아내에겐 위협처럼 들린 것이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대화의 순서 오류라 부른다.
감정을 먼저 확인하고, 공감이 오간 뒤에야
해결책이 안전하게 닿을 수 있다.
순서를 건너뛰면,
“나도 힘들다”는 말이
“네가 힘든 건 중요하지 않다”는 상처로 변한다.
그날의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여보, 나 요즘 많이 지쳐. 당신도 혼자 육아하느라 힘들지?
우리 둘 다 조금 여유를 찾을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
그 후에야, “집을 옮기는 것도 한 방법일까?” 하고 묻는 게 순서였을 것이다.
사람의 갈등은 결국 ‘나 먼저 이해받고 싶다’는 갈망에서 시작된다.
그 갈망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신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은 마음을 낮출 수 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버텨온 우리였지만, 사실은 같은 목마름 속에 있었다.
오늘 나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보, 사실 그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나도 힘들어. 그런데 먼저, 당신도 힘들었지?’였어.”
이 말을 배우는 것이,
결국 우리가 같은 편임을 확인하는 길이다.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감정은 문제보다 먼저 풀어야 할 숙제다.
문제를 풀려는 말이 때로는 상처가 되고,
상처를 돌보는 말이 곧 문제의 해답이 되기도 한다.
혹시 당신도 무심코 던진 말이
큰 싸움으로 번진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서툼이 아니라,
그만큼 서로가 간절히 이해받고 싶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짧은 기록이,
오늘의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