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찾으러 갔다가 마음을 찾았다

아들이 붙여준 감정의 이름: 억울함

by 강동민

택시가 집에 도착 후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내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내와 딸은 그대로 올라갔고 아들과 나는 1층에서 먼저 내렸다.


무인함으로, 무인 도서 대여 기계가 있는 곳으로.


택시 안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나는 가볍게 풀어보려고 몇 마디를 건넸지만, 아들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말은 떠돌고, 마음은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 공기를 알고 있었다.

아까 공항에서 택시를 타러 가던 순간 때문이다.


아들은 책을 한 번 더 물었다.

그 책—

여행 내내 반복되던 제목, 비밀요원 레너드.


나는 피곤했고, 속으로는 ‘여행을 왔는데, 지금 여기에도 좋은 것들이 많은데…’라는 서운함이 쌓여 있었다.


그 감정이 목까지 올라오던 찰나,

나는 짜증을 냈다.

그런데 아이의 질문은 공격이 아니었다.

그건 확인이었다.


“아빠, 진짜 책 빌릴 수 있는 거야?”


기대가 불안으로 바뀔 때 아이는 한 번 더 묻는다.

그 한 번 더를, 나는 ‘또?’로 받아버렸다.


무인함 앞으로 향하는 어두운 밤 길,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아빠… 화난 것 같았어?”

“무서웠어?”

“마음이 어땠어?”


아들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억울했어.”


그 말이 내 발을 멈춰 세웠다.


억울함은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가 있고,

“내 마음이 왜곡됐어”가 있고,

“공정하지 않았어”가 있다.


심리학은 이런 감정을 ‘불공정의 감정’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늘 공정성을 계산한다.

내가 한 만큼 대접받았는지,

내가 한 말이 그 말대로 받아들여졌는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긴장하고,

그 긴장을 줄이기 위해 반응한다는 설명이 있다. 


아까 아들이 느낀 억울함도 그 계산에서 왔을 것이다.

아들의 ‘입력’은 단순했다.

기대가 있는 질문을 한 번 더 한 것.

그런데 돌아온 ‘출력’은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아이 입장에서는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다.

질문은 잘못이 아닌데, 벌을 받은 느낌.

그게 “억울함”이다.


더 중요한 건, 억울함이 “결과”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이 가장 크게 흔들리는 건 종종 “과정”이다.

말투, 표정, 존중, 설명의 유무. 

나는 결과적으로 책을 빌려주려 했지만, 과정에서 아이를 공정하게 다루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미안했다. 그리고 대견했다.

나는 아들의 “억울했어” 그 한마디.

2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자기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화났어”도 아니고 “싫어”도 아니고 “억울했어.”

그건 감정이 뭉개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부모가 감정을 물어봐주지 않으면, 아이는 감정을 쌓아두기 쉽다.

쌓인 감정은 나중에 다른 형태로 나온다—짜증, 울음, “몰라”라는 말, 혹은 이유 없는 반항으로.


그래서 나는 사과했다.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미안해. 억울했겠다.”

“아빠가 예쁘게 말하지 못했어.”

“다음엔 더 예쁘게 말할게.”


억울함을 풀어주는 방법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억울함은 ‘내 마음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러니 그 신호를 꺼주려면, 마음을 제대로 다뤄주면 된다.

내가 잘못한 행동을 인정하고, 상대의 감정이 타당하다고 말하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그날 밤, 아들은 책을 손에 쥐었다.

비밀요원 레너드 4권.

하지만 내 마음에 남은 건 책 제목이 아니라, 감정의 이름이었다.


“억울함.”


나는 그 단어를 오래 품고 싶다.

다시는 아이를 억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혹시 또 억울함이 찾아와도

우리 집에서는 그 감정이 ‘말’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감정을 느낀다.

다만 표현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표현의 첫 선생은 대개 부모다.


비밀요원 레너드의 밤은 그렇게 끝났다.

바다도, 여행도 지나갔지만

그날 우리 집에 남은 건

한 권의 책과,

“억울했어”라고 말해준 아이의 용기였다.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억울함은 유난이 아니라, 공정함을 회복하라는 신호다.

관계는 “맞다/틀리다”를 가르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다루는 방식”을 배우는 곳이다.

오늘 내 아이가 내게 알려준 건 책 제목이 아니라, 감정의 이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비밀요원 레너드와 쁘레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