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예민함을 추척하다
제주도에 있는 내내 아들은 그 책 이야기를 했다.
“비밀요원 레너드.”
처음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 알았어.” 라고 대답해 줬다.
아이의 기대는 대체로 단순하고, 그래서 사랑스럽다.
그런데 여행이 며칠 지나고, 그 제목이 계속 반복되자 마음이 조금씩 거슬렸다.
여행을 왔는데.
지금 여기에도 좋은 것들이 많은데.
아들의 마음은 자꾸 ‘그 책’으로 달려가 있었다.
나는 그걸 “아이답다”라고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마치 함께 하는 시간들이 옆으로 밀리는 느낌.
아내는 미리 신청해뒀다. 무인대출.
오늘 책이 도착했고, 밤 10시 전에만 가면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시간도 아니고, 가능 여부도 아니었다.
그냥… 그 책이 이미 내 안에서 조금 피곤해진 이름이 되어 있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저녁을 잘 먹었다.
공기밥까지 추가하고 분위기 좋았다.
아들과 딸이 프레즐을 먹고 싶다고 사달라고 했다.
아내는 고민했고, 나는 분명한 아들의 요청에 들어주고 싶었다.
여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며 사주자고 했다.
딸이 손씻으러 화장실에 간 사이, 아들은 프레즐을 절반 먹었다.
딸이 돌아왔고, 나는 남은 프레즐 봉투를 건네줬다.
“그걸 딸이—통째로 떨어뜨렸다.”
“투욱 스르륵”
바닥에 봉투가 닿는 소리가 났고,
딸의 표정이 그 소리보다 먼저 무너졌다.
속상함이 얼굴에 확 번졌다.
나는 딸을 달랬다.
괜찮다고,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딸의 마음은 겨우 붙잡았는데,
내 마음은 그 장면에서 조용히 한 번 꺾였다.
작은 사고 하나.
그런데 이상하게, 그 작은 사고는 ‘하루의 피로’를 한꺼번에 열어젖혔다.
아이 둘 사이에서 균형 잡아야 하는 감각이 뻐근해졌고,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쉽게 예민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택시를 타러 이동하던 길.
아들이 다시 물었다.
“아빠, 그 책 빌릴 수 있어요?”
그 질문은 원래 단순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내 귀에는 ‘책’이 아니라 ‘반복’이 먼저 들어왔다.
제주도에서부터 쌓였던 그 제목.
여행 중에도 계속 나를 따라다녔던 그 말.
나는 짜증을 냈다.
“왜 또 물어. 아까 된다고 했잖아.”
말이 나가고 나서야,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무안함.
기대가 민망해지는 표정.
아이들은 기대를 꾸짖음 당할 때, 표정부터 조용해진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화가 난 건 ‘지금 이 질문’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주에서부터 계속 쌓인 거슬림,
프레즐이 떨어지며 한 번 꺾인 마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괜찮아”로 덮어두고 걸어오던 내 얼굴.
아이의 반복은 안심을 구하는 방식이었을 텐데,
나는 그걸 “또?”로 받아버렸다.
어쩌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책을 찾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떨어진 여유를 주워 담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해주고 싶다.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아까 아빠가 짜증낸 거 미안해.
너는 그 책이 너무 기대돼서 물어본 거지.
아빠는 오늘 마음이 조금 예민했어.
그렇지만 책은 같이 찾자.”
책은 빌려주면 된다.
하지만 아이의 기대는, 빌려주기 전에 먼저 안아줘야 한다.
그리고 그걸 안아주는 법은
대단한 가르침이 아니라, 짧은 사과 한 문장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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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빠르다는 건 감정을 눌러버리는 속도가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속도다.
혹시 당신도 같은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설명’이 아니라 ‘이해’를 먼저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