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되고 싶음’의 다른 이름

질투는 내가 아직 원한다는 증거다

by 강동민

누군가가 잘되는 장면을 볼 때—

“논문을 통과했다. 졸업을 했다. 자격증을 취득했다. 취업을 했다. 상을 받았다. 차를 바꿨다. 집을 샀다. 승진을 했다.”


그 소식이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면, 내 안에서 아주 짧은 꺼짐이 생긴다.

불쾌함이라기보다… 찌그러짐.

부러움이라기보다… 쿡, 하고 눌리는 느낌.


그 사람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내 자리를 빼앗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질투를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질투는 누군가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내 욕구가 들키는 순간이다.

질투는 “나도 원한다”의 다른 이름이다


질투는 참 정직하다.

내가 아닌 척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춰낸다.


‘나는 별로 그런 거 원하지 않아.’

‘나는 인정 없어도 괜찮아.’

‘나는 조용히 살아도 돼.’


이런 말들이 진심일 때도 있지만,

질투가 올라오는 순간에는 종종 들통난다.


질투는 내 마음을 이렇게 번역한다.

•나도 성취를 원한다.

•나도 인정을 원한다.

•나도 내 이름이 불리는 자리를 원한다.

•나도 내가 쏟아부은 시간이 결실 맺는 순간을 원한다.


그래서 질투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운 건, 그 원함을 내가 끝까지 외면할 때다.


질투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다.

아직 원한다는 뜻이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투는 ‘사람’이 아니라 ‘요소’를 가리킨다


질투는 상대를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특정한 요소를 겨냥한다.

그 사람 전체를 질투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내가 아픈 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반짝이는 한 조각 때문이다.

•꾸준함

•표현력

•실력

•기회

•영향력

•오래 버틴 시간

•누군가가 알아봐준 결과


이 요소를 찾아내는 순간, 질투는 갑자기 얌전해진다.

왜냐하면 이제 질투는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려주는 지도”가 되기 때문이다.

질투는 두 방향으로 흐른다


질투가 올라오면 마음은 습관적으로 흐른다.

대개는 더 쉬운 쪽으로.


하나는 상대를 작게 만드는 쪽이다.

“운이 좋았네.” “환경이 다르잖아.” “저 정도야 뭐.”

“실제로 실력은 없는 것 같은데“

이 말들은 상대를 향한 말 같지만, 사실은 내 마음의 눌림을 잠깐 덜어내는 방법이다.

그 순간은 편하지만, 남는 건 공허다.

그리고 질투는 더 자주 찾아온다. 더 예민해진다.


다른 하나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쪽이다.

“나도 저걸 원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시작해야 하지?”

질투가 욕구로 번역되는 순간, 에너지가 생긴다.

작아도 좋다. 현실적인 만큼만.


질투가 힘이 되는 건, 이 두 번째 방향으로 흐를 때다.

질투를 ‘힘’으로 바꾸는 네 가지 질문


질투는 설명으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설명은 오히려 나를 더 교묘하게 숨기게 한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쓴다. 짧은 질문.


1)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지?

사람 말고 요소로.

“상”이 아니라 “인정”.

“논문”이 아니라 “전문성”.

“잘됨”이 아니라 “내 시간이 결실 맺는 경험”.


2) 그 원함은 내 삶의 어디를 눌렀지?

내가 지쳐 있나?

내가 멈춰 있나?

내가 방향을 놓쳤나?

내가 내 시간을 소중히 못 쓰고 있나?


질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너, 여기 비어 있어.”


3) 지금 내 마음은 줄이는 쪽인가, 키우는 쪽인가?

상대를 줄이면 잠깐 편해지지만, 나는 작아진다.

나를 키우는 쪽은 느리지만, 남는 게 있다.


4) 오늘 할 수 있는 다음 한 걸음은 뭐지?

질투는 거대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결심은 질투를 더 키운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가능한 만큼으로 줄인다.

•오늘 20분 읽기

•오늘 한 페이지 쓰기

•오늘 한 번 시도하기

•오늘 한 사람에게 배우기

•오늘 내 작업을 다시 올려두기


질투를 행동으로 번역하면, 감정은 소음이 아니라 연료가 된다.



질투는 내 안의 나침반이다


질투가 올라오는 날, 나는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그래, 네가 왔다는 건 내가 아직 원한다는 뜻이구나.”

“내가 아직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구나.”


질투는 나를 못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바늘이 된다.


질투는 나의 힘.

나를 무너뜨리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깨우고 움직이게 하는 감정으로.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빠르다는 건 감정을 눌러버리는 속도가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속도다.

혹시 당신도 같은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설명’이 아니라 ‘이해’를 먼저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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